(왼쪽부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가정의학과 박상민 교수, 상명대학교 이지항 교수, 에버엑스 윤찬 대표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디지털의료제품법 시행으로 디지털치료기기가 제도권에 편입됐지만, 국가보험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료현장 확산과 산업 성장은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9일 강북삼성병원에서 열린 2025 대한디지털치료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 속 디지털 치료가 나아갈 길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디지털치료기기(디지털치료제)는 질병이나 장애의 예방·관리·치료를 목표로 근거 기반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다. 이는 디지털의료제품법이 정의하는 디지털의료기기의 하위 개념으로, 개인 맞춤형 치료와 치료 접근성 확대라는 강점을 지닌다. 다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환자 순응도 저하와 중도 탈락 문제가 주요 과제로 꼽힌다.
서울대 의과대학 가정의학과 박상민 교수는 "디지털치료기기는 헬스케어 앱이나 단순한 의료 인공지능과 달리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기기"라며 "의사 처방을 전제로 하고,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디지털치료기기는 비약물적 치료 옵션으로 임상적 유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이 외에도 환자 중심의 치료 순응도 극대화, 개인 맞춤형 정밀 치료 및 시스템 효율화가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디지털치료기기의 임상적·국가적 의의도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치료기기가 보건의료 시스템을 효율화하고 재정 건전성을 강화할 수 있다"며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혁신 기술 생태계 발전과 디지털헬스 융합을 촉진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어진 발표에서 상명대학교 이지항 교수는 디지털치료기기가 의료기술로 정착하기 위해 넘어야 할 조건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디지털치료기기의 본질은 소프트웨어를 통한 디지털 행동 중재 제공"이라며 "기술 완성도뿐 아니라 순응도와 중도 탈락에 대한 구조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게이미피케이션이나 알림 기능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용자가 '아하' 모먼트를 느껴야 지속적으로 사용한다"며 "딥러닝이 주목받으면서 데이터를 많이 쌓으려는 경향이 있지만, 질환과 연관된 기전 기반 데이터인지에 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어 "사람들은 AI에 대한 기대가 높아 한 번 실망하면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며 보안과 투명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에버엑스 윤찬 대표는 해외 사례를 소개하며, 산업화와 시장 확산에 대해 제언했다. 윤 대표는 "독일은 디지털치료기기 시장을 제도로 열어준 대표적인 국가"라며 "디가(DiGA) 제도를 통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공보험 체계 안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디지털치료기기는 임시등재 제도를 통해 최대 1년간 보험 적용을 받으며 실제 사용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영구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윤 대표는 "독일은 먼저 쓰게 하고, 그 다음에 근거를 요구하는 구조"라며 "현재 60개가 넘는 제품이 디가를 통해 처방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시장 상황은 독일과 많이 달랐다. 윤 대표는 "미국은 독일처럼 공보험이 시장을 열어주는 구조가 아니다"며 "보험보다는 사업 모델로 버텨야 하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여러 디지털치료기기 기업이 시장에서 철수한 사례를 언급하며 "미국에서 디지털치료기기는 망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미국의 디지털치료기기 가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윤 대표는 "미국 시장을 통해 국가 보험이 지원하지 않으면 이 산업이 어렵다는 점은 분명해졌다"며 "최근 디지털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힌지헬스가 높은 기업가치로 상장한 사례처럼, B2B 모델을 통해 의료 전달체계 밖에서 성장하는 경로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대표는 "국내는 허가와 보험 제도 기반은 구축됐지만, 실제 의료현장 확산은 아직 초기 단계"라며 "독일은 정책 주도로 빠르게 확산됐고, 미국은 다양한 비급여 모델이 발달했다. 일본은 신중하지만 안정적인 확산 모델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디지털치료기기 시장 확대는 임상적 유효성 검증, 보험 적용 확대, 의료현장 사용성 개선, EMR 연동 인프라 고도화 등이 함께 해결될 때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