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최근 안타까운 사건이 보도됐다. 한 50대 의사가 의료기관 이중 개설 금지 위반으로 3년간 면허 취소뿐 아니라 3년치 매출 전액을 환수당했고 이후 면허 재교부가 세 번씩이나 거부되면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다. 의료 관련 직무와 무관한 금고형 이상의 유죄판결을 받으면 의사면허가 취소되는 ‘의사면허취소법’도 판결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법이 2023년 11월부터 시행되면서 의사들은 '다른 직종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반헌법적이고 가혹한 이중처벌법'이라고 격렬하게 반대했다. 결국 모두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 이 사건을 보면서 나를 포함해 많은 의사들은 지난 이십 여년 간 주장해 왔던 '의사면허관리국이 있었다면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계의 오래된 난제인 의사면허관리국 신설을 다시 주장하려 한다.
의사면허관리국 신설은 대한의사협회 차원으로 과거에 몇 차례 시도는 있었으나 끝까지 이루지 못했다. 회장이 바뀔 때 마다 면허국 신설을 향한 동력이 잠깐 반짝하다가 회장이 바뀌면 다시 '올스톱'하는 과정이 반복된 것은 참으로 아쉽다. 2018년 9월 의협 대표단 10명이 인도네시아와 태국을 방문해 이 나라들에서 의사면허관리국이 이미 오래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도네시아는 2006년에, 태국은 1968년에 의사면허관리국이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고 ‘문화충격’을 경험했다는 언론보도도 있었으나 그 후 진행 상황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여년 간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의료계 인사들이 의사면허국 신설을 촉구하는 기고문을 썼고 국회에서 토론회도 여러 번 했으나 정작 정부는 한 번도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 정부가 의사에 대한 징계권을 내려놓고 이를 의사면허국이 담당하도록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앞으로도 매우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모두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정답인 의사면허관리국 신설을 이룰때 까지 반복 주장해야 한다.
2024년 9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의힘 최보윤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
현재 우리나라에서 취소된 의사 면허의 재교부 관련 실상을 살펴본다.
이는 전적으로 복지부 소관으로 면허재교부심의 소위원회의가 결정한다. 이 위원회는 위원장으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의료분쟁조정 전문가 1명, 의료법 전문가 1명, 의료윤리 전문가 1명, 의료정책 전문가 1명, 법조인 1명, 시민단체 추천 1명, 직역 대표 2명으로 모두 9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고 이 중 5명 이상 찬성으로 면허 재교부가 결정된다. 의사단체는 정부에 징계 관련 건의는 할 수 있으나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강제력은 없다.
현행법 상 면허 취소 사유가 소멸하거나 ‘개전의 정’(뉘우치는 태도)이 뚜렷하다고 인정되고 40시간 이수 교육을 받으면 면허가 재교부 된다. 그런데 개별 징계사유 또는 면허 재교부 거부의 기준이 모호하고 공개되지도 않는다.
연도별 의사면허 재교부율은 2020년 85.5%(47/55), 2021년 41.8%(23/55), 2022년 32.9%(25/76), 2023년 11.1%(8/72), 2024년 3월까지 12.5%(4/32)로 재교부신청 의사 수는 증가하는데 비해 재교부율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5년 전에는 86%로 거의 대부분 재교부됐으나 지금은 10%대로 대부분의 경우 재교부가 거부된다.
국민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의사들에 대해 좀 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또한 국민의 의사에 대한 비호감이 최근 더 높아진 것도 이유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든다. 그런데 언론보도에 따르면 불과 몇 년전 까지만 해도 마약사범 의사들까지 버젓이 면허 재교부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자신이 직접 마약을 투약했거나, 의료 목적 외 마약을 환자에게 투여한 의사 29명이 재교부를 신청해 8명(27.5%)이 승인받았다.
선진국의 의사면허관리기구에 대해 알아보겠다. 미국, 영국, 캐나다는 정부로부터 독립된 의사면허관리국이 있어서 우리나라와 매우 다른 방식으로 면허를 관리한다. 아래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며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미국 텍사스 주 의사면허국의 예를 소개한다.
1. 면허 발급부터 추후 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위원회가 결정하는데 의사, 법률가, 일반인, 주 정부 관리 등 십 여명으로 구성되며 각 위원들의 인적사항, 경력, 임기 등 관련 정보를 면허국 홈페이지에 상세히 공개한다.
2. 모든 의사들에게 이 기구 가입이 의무이며 ⓵범죄사실 등 징계사유가 없고 ⓶연회비 납부는 필수이고 ⓷일정 시간의 연수교육 이수(그 중 윤리강의는 필수), 이 세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면 3년마다 면허 갱신을 해준다.
3. 새로 면허를 발급받은 의사들의 학력과 간단한 경력도 공개한다.
4. 일반인들이 의사 대상 민원을 이 기구를 통해 접수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환자들이 보건소, 복지부, 심평원, 경찰, 병원, SNS 등 여러 창구를 통해 민원을 접수한다)
5. 민원, 고발이 접수돼 징계가 결정된 의사들의 이름, 면허번호, 병원소재도시, 민원 내용, 징계 사유와 징계수위 등 모든 사항들이 공개된다. 징계 내용도 다양하고 상세해서 벌금 액수, 면허를 영구 박탈하는지 또는 일시 정지인지, 면허 재발급 조건으로 어떤 종류의 보수교육을 어디에서 몇 시간이나 받아야 하는지, 등 모두 상세히 공개한다.
징계사유라는 것도 우리 눈에는 ‘하찮게’ 보이는 간단한 언어폭력, 품위손상, 수준 미달의 의료서비스에서부터 심각한 마약 복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의사는 치료를 잘 받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면허를 다시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모든 심의 절차가 원칙과 규정에 따라 공정하게 이뤄지고 투명하게 공개된다.
최근 의사들에게 자율징계권을 부여하는 의료법개정안이 발의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김예지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의료단체가 보기에 징계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보건복지부에 면허정지, 면허취소 등 행정처분과 직접 연계되도록 하는 법적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 역시 최종 결정은 복지부 소관이며 의사들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런 개정안 조차도 통과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결국 우리가 끝까지 추진해야 할 목표는 독립기구로써의 보건의료인면허관리국 신설이다. 우리가 주장하는 면허국이 정치인의 입김이 배제된, 정부로부터 독립된, 자율성과 전문성이 보장되고 동시에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임을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
의사 뿐 아니라 나아가서 모든 보건의료인의 면허를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의료인들이 높은 수준의 의료를 펼칠 능력, 도덕성,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갖추고 있는지를 검증함으로써 종국에는 국민건강 보호가 목적임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설립의 당위성을 국민들께 널리 알려야 한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