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부터 5일까지 양일간 열린 의료힉신 시민패널 제1차 공론화 숙의토론회 전경. 사진=보건복지부
[메디게이트뉴스] ‘착한 정권’을 표방했던 과거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월, 정부의 ‘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 이른바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신규 원전 건설을 중지하여 ‘원전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설명하면서, 이 과정에서 전기요금은 오를 수 없는 구조라고도 단언했다. 그러나 탈원전 이후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해졌고, 2019년부터 다시 원전 발전을 늘려 전력 구입비를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급조하게 된다.
2017년 당시에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사 중단을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한 후 일정 규모의 시민 배심원단을 선정하여 공론 조사 방식으로 추진했다. 전문가를 배제한 중립적인 인사를 중심으로 10명 이내로 선정했다. 이후 공론화위원회는 시민참여단 500명을 후속으로 선발했다.
공론화위원회는 이들을 대상으로 약 한 달 동안의 숙의 과정을 거친 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에 관해 시민참여단의 뜻에 맞는 정책을 정부에 권고하기로 했다. 지금의 의료 혁신 시민 패널과 매우 유사한 모양새다. 이후 공론화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을 재개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민참여단의 의견은 원전의 비율을 줄이는 것은 찬성하지만 탈원전은 찬성하지 않았다. 10년도 지나지 않은 현재, 과거의 착한 정권은 인공지능 시대의 반도체 호황에 고무돼 전기와 용수가 필수인 국가적 통 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작 착한 정권은 자신들이 반대하던 4대강 사업과 원전 정책이 무색해지는 믿기 힘든 현실을 뻔뻔하게 맞이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됐다.
새 정부는 정권마다 의료 관련 단골 주제인 ‘의료개혁위원회’를 구성한다. 도대체 몇 번째 이름만 바꾼 위원회의 등장이며, 구성인가? 이번에는 의료혁신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했고, 국민 참여를 통한 의료분야 제도 개선과 의료 혁신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과 함께하는 의료 혁신 추진을 위해 국민의 의견을 대변할 ‘의료 혁신 시민 패널’ 300인을 구성했다. 시민 패널은 국민 대표 참여단으로 공정하게 선정했다고 복지부는 밝히고 있다. 국민참여단은 단순한 정책 수요자를 넘어, 대한민국 의료의 최일선에서 필요한 개혁 과제를 발굴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정책 공급자이자 상시적 소통 창구역할을 맡게 된다고 강조한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공론화위원회가 아닌 또 다른 복지부 산하 기구 역할을 하는 ‘관변단체’가 창설되는 느낌이다.
시민 패널 동원한 의료혁신위, 과거 통일주체국민회의 소환 의료주체국민회의 연상
도대체 기존의 수많은 복지부 산하 기구나 전문가들은 그간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 복지부 역량이 안 되어 국민에게 마지막 도움을 요청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권의 의료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기 위한 특수집단의 창설인지, 그 정체성이 매우 혼란스럽다.
시민 패널로 구성된 국민회의는 착한 정권이 혐오하는 군사독재 정권의 산물인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례인 듯 하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7·4 남북 공동 성명 이후 통일에 대한 희망 고문을 지피기 위한 매우 민주적인 국민회의로 둔갑했다. 실제로는 군사독재와 유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였고, 우리나라 체육관 선거의 효시로 작용했다. 하지만, 정작 통일에는 기여한 바가 없다.
착한 정권은 시민 패널을 이용해 “국민이 직접 제안하고 다듬은 의견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의료 혁신을 완수하겠다!”라는 결연한 의지도 표명했다. 정부의 말대로라면 시민 패널은 마치 스파르타의 용맹한 300명 전사 집단같이 무너져 가는 ‘지필공 의료’를 위기에서 구할 것 같은 기세로 보인다.
시민 패널이 이제 ‘의료주체국민회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국민을 대표하여 일하는 중앙 정부 부처인 복지부의 환각과 환청, 망상이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다가온다.
혁신위원회는 늘 다루는 지역 필수 의료와 지역 보건 거버넌스를 공론화 의제로 삼고 있다. 시민 패널은 6월 한 달간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교육을 거친 후 의료혁신을 위한 본격적인 국민 의견수렴의 닻을 올릴 것이라고 복지부는 유려한 표현으로 밝히고 있다. 그 간의 필수, 지방 의료의 붕괴에 대한 정책 실패를 잘 설명하는 교육인지, 아니면 마땅히 해결책이 없는 의료 이데올로기의 선전 교육과 단합대회가 될지 의구심마저 든다.
지난 윤석열 정권도 국민과 언론을 이용한 일방통행 소통의 규범을 훌륭하게 연출해 보인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국민 의사로 포장되는 시민 패널의 운영은 지금까지 국민 의견을 무시한 채 정책을 추진한 것을 정부 스스로 자인하는 정책인지, 정권마다 경험한 개혁 실패의 책임소재를 흐리는 것이 주요 목적인지 의구심이 앞선다.
처음 열린 시민 패널 공론화 토론회에서는 발제자는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의대 정원 확대 등 매우 익숙한 주장을 다시 제안했다. 단기 대안으로는 ‘인력 공유제’와 ‘공동 당직제’가 언급됐다. 서울 대학병원 의사가 지역병원에서도 근무할 수 있도록 두 기관 근무를 인정하는 인력 공유제를 논의했고, 지역 의사들이 함께 당직을 나누는 공동 당직제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공동 당직제도를 위한 예산은 있는가? 그리고 인적자원 공유에 대해 서울대병원은 어떤 생각과 판단을 하는지 궁금하다. 지역 의료 살리기의 핵심은 지역 환자를 확보하기와 진료권역 부활, 그리고 의료전달체계의 재구성이다. 의료 소비 통제나 소비 사회화가 싫고 자유 선택을 원하는 국민과 정치인도 있다. 그렇다면 지역 의료 살리기를 위한 우선 과제는 요양기관 당연 강제 지정제도 폐지 같은데, 이런 부분이 과연 핵심의제가 될지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
환자의 안전은 등한시 오로지 미검증 정책 추진 세력의 안전성 담보 프로펠러 역할
한편, 어느 의사 출신 국회의원은 이런 국민 동원의 의료정책 혁신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다. 대한민국 의료를 살리는 방법은 정치인들이 의료에서 손을 떼는 것이라고 속 시원하게 밝혔다. 국민들은 원하는 게 있으면 최고 지도자에게 직접 호소해야 함을 알고 있어 대통령의 한마디면 안 되던 일도 되고, 되던 일도 안 되는 초법적 지위를 이용하는 것이 학습이 됐다고도 비판했다.
국민의 공론과 대통령의 지원이라는 산지 직거래 같은 매우 효율적인 나라로 보인다. 실제로는 정치와 행정의 정상적 통로를 초월하는 사회적 경험을 축적시킨 것이 됐다.
현재의 의료 관련 다양한 정부 위원회의 운영은 보건의료의 최상위 거버넌스를 담당하는 정치가, 공무원의 정치적 입지와 안위가 정책의 합리성과 전문성을 추월하고 있다. 성과에 대한 면책의 구조도 갖고 있다. 환자의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마도 정책 추진 세력의 안전성인 모양이다. 면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누리던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의 특혜이고 각종 위원회는 갑질과 면책이 허용되는 정책적 자유구역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