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송도세브란스병원, (오른쪽) 서울아산청라병원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시민·소비자단체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의 6500여 병상 확대 계획을 두고 정부가 추진해 온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그동안 지역 필수의료 강화, 일차의료 활성화, 의료전달체계 정상화, 수도권 환자 쏠림 완화를 의료개혁 핵심 과제로 내세워 왔음에도, 실제 현장에서는 수도권 대형병원의 병상 확대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한국YWCA연합회, 의료공동행동은 최근 성명을 통해 “수도권 대형병원의 병상 확장 계획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의료개혁 방향과 정합성이 있는지 국민 앞에 설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최근 수도권 대학병원들이 향후 6500여 병상을 추가 공급할 계획이라는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서울과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앞다퉈 병상을 늘리고 진료권을 확대해 또 한 번 몸집 키우기 경쟁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상 확대가 의료개혁인가…지역완결형 의료체계와 충돌”
단체들은 우리나라 의료의 핵심 문제가 병상 부족이 아니라고 봤다. 오히려 지역에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의료체계의 불균형이 국민이 체감하는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이들은 “응급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하고, 중증환자가 수도권으로 이동해야 하며, 동네에서 믿고 찾을 주치의가 부족하고, 퇴원 후 회복과 돌봄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현실이야말로 국민이 체감하는 의료의 문제”라고 밝혔다.
수도권 대형병원의 병상 확대가 계속될 경우 지역의료 회복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병상이 늘어나면 이를 운영할 의료인력도 필요해지는데, 결국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력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더 집중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단체들은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또다시 병상 확대 경쟁에 나선다면 의료인력은 더욱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지역의료기관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며,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병상 확대는 개별 병원의 투자나 경영 전략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민간 병원이 병원을 짓더라도 병상이 운영되는 순간부터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고, 국민 의료비 부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병상 확대는 특정 병원의 경영 전략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부담해야 할 공공정책의 문제”라고 밝혔다.
“복지부, 수도권 병상 확대 방관해선 안 돼”
단체들은 보건복지부가 병상수급관리계획의 실효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복지부는 지역별 병상 공급을 관리하고 의료자원의 균형 배치를 책임지는 주무부처인 만큼, 수도권 중심의 대규모 병상 공급이 이어지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과거 승인된 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재 추진 중인 병상 확대를 정책적으로 방관해서는 안 된다”며 “의료환경과 의료개혁의 방향이 바뀌었다면 정부 역시 병상 공급 정책의 타당성과 공공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지방자치단체의 보건의료정책도 대형병원 유치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대형병원 유치 공약은 눈에 보이는 성과일 수 있지만, 시민 건강권을 보장하는 정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체들은 “지방자치단체장은 병원 유치 경쟁이 아니라 지역주민의 건강 수준을 높이는 의료정책을 경쟁해야 한다”며 “지역책임의료기관과 지역병원, 의원, 보건소, 돌봄체계를 연결하는 지역보건의료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와 수도권 대형병원에 ▲수도권 대형병원의 병상 확대 경쟁 중단 ▲복지부의 병상수급관리계획 실효성 재검토 ▲지역필수의료와 일차의료 강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 ▲병상 공급과 지역보건의료계획 수립 과정에 의료소비자·시민 참여 보장 등을 요구했다.
단체들은 “의료는 병원의 규모를 키우는 경쟁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공공서비스”라며 “병상이 많을수록 좋은 의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어디에서나 필요한 의료를 적시에 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의료가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