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전문의약품 주입은 약침 부수행위 아냐”…유효기간 지난 리도카인 사용도 별도 가중 사유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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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한의사의 리도카인 약침 시술을 둘러싼 논란이 형사처벌을 넘어 행정처분 영역으로 확장됐다. 법원은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면허범위 외 의료행위로 본 데 이어, 복지부의 자격정지 처분과 가중 기준도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 제6부는 한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자격정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A씨는 앞서 형사처벌과 보건소 시정명령을 받은 데 이어, 복지부의 한의사면허 자격정지 4개월 15일 처분도 유지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한의사가 한의학적 치료인 약침요법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실제 사용된 의약품이 서양의학적 기준으로 허가된 전문의약품이고 사용에 서양의학적 전문지식과 기술이 요구된다면 한의사 면허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로 볼 수 있다고 확인했다.
보건소 현지조사서 뉴트리헥스주·리도카인 확인…유효기간 지난 약액도 적발
사건은 2020년 4월 영등포구보건소의 현지조사에서 시작됐다. 당시 보건소는 A씨가 운영하는 서울 영등포구 소재 한의원에서 약침으로 사용 중인 뉴트리헥스주 96.9% 3병을 확인했다.
보건소는 약침 약액으로 사용 중인 리도카인 3바이알도 확인했다. 이 중 2개는 유효기간이 2019년 12월 26일까지였다. 현지조사일이 2020년 4월 21일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유효기간이 약 4개월 가까이 지난 리도카인이 한의원에 보관돼 있었던 셈이다.
이 밖에도 약품별로 십여 개 이상의 주사제가 준비돼 있었고 제조일시가 없었던 사실도 확인됐다. 보건소는 A씨를 고발하고 복지부 등에 자격정지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이후 A씨는 2022년 5월 의료법 위반죄로 벌금 300만원의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 당시 형사판결은 A씨가 리도카인 주사액에 전문의약품 하이코민 주사액을 혼합해 환자들의 요통·관절통 부위에 약침 시술 등을 한 행위를 한의사 면허범위 외 의료행위로 봤고, A씨가 항소하지 않으면서 확정됐다.
복지부는 2025년 2월 A씨에게 한의사면허 자격정지 4개월 15일 처분을 내렸다. 처분 사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리도카인·하이코민·뉴트리헥스주·대한포도당주사액 20% 등 전문의약품을 약침으로 사용한 행위가 면허된 것 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유효기간이 지난 리도카인을 사용한 행위가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법원 “리도카인, 서양의학적 기준으로 허가된 전문의약품…한의사 사용 불가”
A씨는 행정소송에서 리도카인 사용이 침술에 기반한 한의학적 치료인 약침요법에 부수된 행위라고 주장했다. 한의사의 리도카인 사용이 법령상 명시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며, 환자의 통증 완화를 위한 의학적 필요에 따라 사용한 것이므로 면허범위 내 행위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의료법상 의사와 한의사는 각각 의료와 한방 의료를 담당하는 별도 면허체계를 갖고 있고,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
다만 의료법령에 의사와 한의사의 구체적 의료행위를 일일이 구분한 규정이 없는 만큼, 특정 행위가 면허범위 밖 의료행위인지 여부는 이원적 의료체계의 입법 목적, 해당 행위의 학문적 원리, 행위의 경위·목적·태양, 교육과정과 국가시험을 통한 전문성 확보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이 기준에 따라 법원은 A씨의 리도카인 사용을 한의사 면허범위 밖 의료행위로 판단했다.
리도카인 주사액은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돼 있으며, 국소마취와 부정맥 치료에 사용된다. 특히 리도카인은 고열, 떨림, 경련, 졸음, 불안, 흥분, 구역, 구토, 어지러움, 두드러기, 부종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사용 후 혈압저하, 안면창백, 맥박 이상, 호흡억제, 경련 등이 나타나면 의사에게 즉시 알려야 하는 의약품이다.
재판부는 이 같은 효능과 부작용, 주의사항을 고려할 때 리도카인 사용에는 의료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요구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리도카인은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안전성·유효성 심사기준에 따라 품목허가를 받은 의약품이므로, 한의사는 이를 처방·조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투약·사용할 수도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고가 한의학적 원리에 따른 약침술을 사용해 환자를 치료했다고 하더라도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안전성·유효성 심사기준에 따라 품목허가되고 그 사용 시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요구되는 의약품을 환자에게 주입하는 방법으로 사용한 이상, 이 사건 시술행위를 약침요법에 부수된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효기간 지난 리도카인 사용, 별도 위반행위로 봐 자격정지 가중
이번 판결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대목은 법원이 유효기간이 지난 리도카인 사용을 별도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판단했다는 점이다.
A씨는 면허범위 외 의료행위와 유효기간 지난 의약품 사용을 함께 이유로 자격정지 처분을 가중한 것은 하나의 행위에 중복제재를 가하는 것으로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리도카인을 사용한 약침 시술은 의료법상 면허된 것 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고, 유효기간이 지난 리도카인을 보관·사용한 행위는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두 위반행위는 근거 법령과 요건이 달라 별개 위반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관계 행정처분 기준은 의료인이 면허된 것 외의 의료행위를 한 경우 자격정지 3개월, 유효기간이 지난 의약품을 사용해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경우 자격정지 3개월로 정하고 있다. 동시에 둘 이상의 위반사항이 있으면 더 중한 처분기준에 나머지 처분기준의 2분의 1을 더하도록 규정한다.
복지부가 A씨에게 자격정지 4개월 15일을 처분한 것도 이 기준에 따른 것이다. 법원은 이 같은 처분 기준이 헌법이나 법률에 어긋나거나 객관적으로 불합리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복지부 처분을 적법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경우와 유효기한 또는 사용기한이 지난 의약품을 사용해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경우는 근거법령과 요건 등을 달리하는 별개의 위반행위”라며 “동시에 둘 이상의 위반사항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형사처벌·시정명령 받았어도 자격정지는 가능…중복제재 주장 배척
법원은 A씨가 이미 형사처벌을 받고 보건소 시정명령도 받았기 때문에 복지부의 자격정지 처분은 중복제재라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보건소 시정명령은 의료기관인 한의원을 대상으로 한 처분인 반면, 복지부 자격정지 처분은 의료인 개인인 A씨를 대상으로 한 처분이라고 판단했다. 처분의 요건과 근거, 대상이 다른 별개의 처분이라는 것이다.
형사처벌과 자격정지도 성격이 다르다고 봤다. 형사처벌은 국가형벌권 행사인 반면, 자격정지 처분은 의료의 적정이라는 행정목적 실현을 위한 제재처분이므로 병과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결국 법원은 A씨가 주장한 처분사유 부존재, 법률유보원칙 위반, 중복제재, 재량권 일탈·남용 주장을 모두 배척했다.
A씨는 약 35년간 의료사고 없이 성실히 진료해 왔고, 환자의 통증을 완화하고 치료하기 위해 시술했다는 점 등을 들어 처분이 과도하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위반행위의 경중에 비춰 자격정지 4개월 15일 처분이 지나치게 무겁거나 불합리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한의사의 리도카인 약침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기존 판단을 넘어, 면허 자격정지 등 행정처분의 근거로도 인정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