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최근 정부는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을 추진하려는 모양새다. 그 배경은 현행 ‘행위별 수가’에 의한 진료비 지불제도가 의료비 증가의 주원인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보면, 공급과잉이 의료비 폭증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두 원인을 연결해 보면 공급과잉을 유발하는 것이 행위별 수가 제도 탓이라는 논리다.
덧붙여서 우리나라의 진료비 증가 수준이 매우 높아 몇 년 후에 이르면 보험 재정이 고갈될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은 의료서비스를 더 받으려면 돈을 더 내는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실정을 잘 요약해서 표현한 것이다.
정부는 의료비 절감을 내세우며 다른 한편에서는 의료비 증가가 예견되는 필수 의료에 대한 ‘공정한 보상’도 약속한다. 국립대학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예산 투입도 이미 공약했는데, 공급자의 역량 상승과 의료비 상승도 무관하지 않다. 전체 의료비는 절감해야겠고 반면에 원가 이하의 필수 의료 수가는 공정하게 보상해야 할텐데,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 이것이 과연 가능할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적정 보상, 원가 보장 없는 서비스 개선은 한낱 망상적 정책에 불과
우리나라의 의료비 증가는 ‘증가’ 아닌 ‘폭증’으로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우리나라 경상 의료비는 185조 원으로 OECD 평균 경상 의료비를 원화로 환산한 202조 원에도 못미친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경상 의료비는 359만 3899원으로, 이 역시 OECD 평균 이하 수준이다. OECD 가입국의 평균 국민 1인당 경상 의료비는 약 424만 6909원이다. 이런 와중에도 정부의 다양하고 모순된 정책은 여전히 마른 수건을 더 쥐어짜려는 초 저수가를 고수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진료비 지불제도 개선을 시도하는 선진국 사례를 보면, 주로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이 높은 나라들인데 지불제도 개선으로 주목할 만한 의료비 감축 정책은 적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행위별 수가도 우리나라와는 달리 원가 보상을 기초로 책정돼 있는 국가들이다. 다양한 지불제도의 선택 역시 의사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고 의존한다. 즉 인구 집단의 관리 방식인 인두제(Capitation), 행위별 수가 제도, 묶음 지불제도 등을 강제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의료 수가에 관한 공급자의 불만은 지난 반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으나, 그동안 사회 의료보험의 기본 원칙인 ‘원가 보장’이 시도되거나 이루어진 적이 없다. 국민 1인당 소득 4만불 시대를 맞이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과거 군사정권에서 적용한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제도의 틀에서 못 벗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총 의료 경상비가 OECD 이하인데도 의료비용 지출에 비해 의료 성과는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의료의 효율성 면에서 세계 으뜸임을 보여준다. 의료의 성과가 나쁘거나 투입된 예산이 OECD 평균을 능가하면 모를까 현재의 지표가 보여주는 결과를 보면 의료비 인하를 위한 지불제도 개선 정책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의구심이 동반된다.
의료비 증가 원인 공급자인지 과잉 욕구인지 따져봐야 ‘옳은 방향’ 찾아
행위별 수가에 의해 의료비가 올라간다는 공급자 원인 제공이라는 주장은 우리나라의 의료 행위 양이 많아서인데, 의료 공급자의 원인인지 아니면 ‘과잉 소비’가 그 원인인지 냉정하게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행위 양에 대한 수가가 원가 이하로 공급되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다면 수가를 더 낮춰야 하는가? 의료 사회화의 중심인 의료보험제도가 작동하기 위한 원칙은 진료비 지불이 우선 원가를 기반으로 한 보상이고 여기에는 초과 이득을 위한 노력을 상쇄하기 위한 적정분의 이득이 포함돼야 한다. 그리고 의료 소비를 사회화하는, 즉 적절히 통제하는 기전이 함께 작동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현행 복잡한 행위별 수가 지불제도 산정 방식은 GDP의 18% 규모를 의료비로 사용하는 미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와는 매우 다른 특성을 갖는 미국의 의료 수가 산정 방식이 우리나라에서는 저수가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변모된 것이다.
정부가 행위별 수가 문제를 논하기 전에 과연 행위별 수가제도가 의료비 폭증의 원인인지부터 분석할 수 있는 학술적 증거가 필요하다. 현재의 저수가 상태에서 각종 보건의료 지표에서 ‘세계 최우수 성과’를 보이는데 정부는 무엇을 더 원하는 것인지? 현재 우리나라의 총의료비 규모를 들여다보면 ‘의료비 과잉’이라는 표현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다. GDP 대비 의료비 부담 역시 아직 OECD 평균 이하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
초저수가로 인한 필수 의료 붕괴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공공의 복리를 위한 저수가 정책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된 정책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의료 개혁에 대한 진정한 의지는 있는지 의구심만 앞선다.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성과는 아마도 민간 주도 의료의 노력과 결실인데, 만일 우리나라가 공공의료가 주된 의료 형태였다면 현재 어떤 수준의 위치에 와 있을지 되묻고 싶다.
필수 의료 붕괴 현실에서 비용 절감에만 집착하면 상황만 더 악화
행위별 수가가 의료비 증가의 주범이라는 어떤 객관적 증거도 없어 보인다. 지불제도를 바꾼 나라들을 보면 행위별 수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지불제도를 혼합해서 적용한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의 의료비 총액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국가들이다. 그리고 지불제도의 혼합사용이 의료비 감소를 가져왔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도 딱히 없어 보인다.
의료비 지출이 과다할 것이라는 몇 년 후의 추정은 현재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수진 양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판단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현재 기준에서 의료 소비를 적절하게 통제하는 방편이 오히려 더 합리적이고 적정한 방법으로 보인다. 단 원가 보존의 수가는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이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더 내야 한다'라는 주장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보험 재정을 아끼려면 의료비 지불 방식을 입원, 수술 등 중증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도 한 방법인데, 이는 정치적 표심 잡기와는 거리가 있다.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을 공동체나 사회가 지도록 만든 것이 의료사회의 의료보험이다. 그러나 의료보험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가입자들이 의료 이용을 원하는 대로 맘껏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논리가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한다.
정부는 GDP 대비 의료비 지출에 대한 상한선을 어디에 맞추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건강 지표가 세계 최고 수준을 나타내는 의료 선진국인 점을 감안한다면, 최소 GDP 대비 10%는 넘게 책정돼야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개혁도 비로소 실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저수가 제도가 공공의 복리가 아닌 의료제도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보아야 하는 보다 냉철한 비판 의식과 함께 현명한 시각이 요구된다.
진료비 지불제도 개선에 앞서 우리나라의 총의료비에 대한 적절한 목표치 설정이 우선일 것이다. 실패한 포괄수가제도를 보며 저수가 기조의 진료비 지불제도 개선 정책은 정부와 의료계 간의 신뢰를 더욱 악화시키고, 지금보다도 더 처참한 모습으로 의료 붕괴를 가속화할 것으로 걱정만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