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정부가 행위별 수가제 중심의 일차의료 지불제도를 개편하기 위해 새로운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의료기관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선 보상 수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존 행위별 수가제에 따른 진료나 비급여 진료가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을 경우 새로운 지불제도가 의료기관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수 잇다는 것이다.
22일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예방의학회 학술대회 '일차의료 지불제도 개편 방향' 세션에서는 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의 실효성과 향후 지불제도 개편 방향을 놓고 논의가 이뤄졌다.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은 지난 9월 말부터 전국 120개 의원에서 시행 중인 사업이다. 통합적 건강관리 수요가 높은 50세 이상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동네의원이 질병 치료뿐 아니라 예방, 건강관리, 의료·돌봄 연계 등을 제공하는 게 골자다.
특히 진찰, 검사, 처치 등 진료서비스에 대해서는 기존 행위별 수가제와 환자의 건강위험도에 따른 통합수가제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 상담 등 일차의료서비스에는 별도의 통합수가를 적용하고, 진료서비스 통합수가제를 선택한 의료기관에는 추가 가산을 제공한다. 다학제팀 운영비와 환자 관리 성과에 따른 보상도 지원한다.
의료기관은 다학제팀을 직접 구성하는 단독모형과 거점 지원기관의 지원을 받는 협력모형 중 하나로 참여할 수 있다. 현재 단독모형 20개 의원, 협력모형 100개 의원이 선정돼 있다.
의협 "의료기관은 수익성 고려할 수밖에…의료비 절감 효과도 미지수"
대한의사협회 이봉근 보험이사는 "너무 좋은 모델이고 만드는 과정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깊이 공감한다"면서도 "의협에서 시범사업에 대해 가장 염려하는 점은 보상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이사는 "의료기관이 시범사업에 참여할 때 국민 건강을 위해 열심히 해보겠다는 생각만 하는 건 아니다"라며 "수익이 얼마나 날지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이 시범사업이 환자군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며 "하지만 행위별 수가제와 동시에 운영할 수 있는 의료시장에서 행위별 수가제로 환자를 열심히 보는 쪽의 수익이 더 높고 시범사업을 통한 수익이 적다면 같은 기관에서도 시범사업 비중을 늘리기 어려운 딜레마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범사업 참여를 위해 추가 인력을 고용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이사는 "원장 입장에서는 의료 인력을 추가로 뽑아야 하는데, 보상액이 인건비를 초과해 이익을 낼 수 있는지도 계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최근 위수탁 제도 변화에 따른 수가 하락을 걱정해 참여하는 기관도 있을 것"이라며 "몇 개월 운영해 보면 실제 수익성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에 사업 시행 후 참여기관의 행태가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급여와 실손보험 역시 새로운 지불제도의 정착을 어렵게 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았다. 이 이사는 "우리나라는 비급여와 실손보험이라는 매우 특이한 제도가 있다"며 "아무리 보상을 많이 해도 비급여에서 생기는 수익이 높으면 새로운 지불제도에서 제공하는 보상이 굉장히 작게 보일 수 있다"고 했다.
환자의 자유로운 의료기관 이용도 문제로 지적했다. 등록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건강관리를 강화하더라도 환자가 다른 의료기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기대하는 장기적 의료비 절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환자들이 자신이 시범사업 참여 의료기관에 소속돼 있다는 느낌이 상당히 적다"며 "환자가 내는 비용도 거의 같고 의료기관 이동도 자유롭기 때문에 환자들이 어떻게 의료이용을 줄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했다.
복지부 "막대한 재정 투입되는 사업…의료비 절감보다 의원 기능전환 유도"
반면 복지부는 현행 시범사업이 의료비 절감보다는 일차의료기관의 기능 전환을 유도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범사업 초기부터 의료비 절감을 강하게 요구하기보다는 추가 재정을 투입해 의료기관의 기능 전환을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다.
강 과장은 "이 사업은 지금 재정 중립이 절대 아니다. 재정이 엄청나게 많이 투입되는 사업"이라며 "이런 방향으로 가면 실제 의료기관의 기능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어느 정도 확인한 다음 다음 단계를 설계하겠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현재 사업은 상당히 후하게 설계된 측면이 있다"며 "공모 때 참여기관이 많이 나왔던 것도 그런 부분을 현장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의료비 절감 성과를 의료기관에 환류하는 장치는 향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강 과장은 "재정 절감에 대한 부분은 시작 단계에서 가점 지표 정도만 반영됐지만, 어느 단계에서는 실제 재정 절감분을 환류하는 기전을 넣을 것"이라며 "현행 체계에 비해 너무 파격적인 변화여서 첫해에는 반영하지 못했다"고 했다.
학계 "등록환자 과소진료∙비등록환자 과잉진료 우려…환자 유인책도 필요"
학계에서는 혼합지불제 도입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면밀히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이혜진 교수는 포괄지불 방식이 확대되면 등록환자에게는 과소 진료, 미등록 환자에게는 행위별 수가 진료나 비급여 진료가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비등록 환자의 행위별 진료와 비급여 진료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지 못하면 일부 등록환자는 포괄지불 방식으로 관리하면서 나머지 환자에게는 행위별 진료나 비급여가 늘어나는 현상을 놓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현재 참여기관들은 원래 일차의료에 관심이 많고 사업을 잘 수행할 곳들"이라면서도 "사업이 확대되면 이해도가 낮은 기관들도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초기부터 모니터링과 평가체계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대 의대 윤태호 교수는 환자들이 등록한 일차의료기관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도록 유도하려면 환자에게도 경제적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환자들에게도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본인부담금을 낮춰주거나 아예 없애주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며 "의료기관에 대한 보상만으로는 부족하고 환자들이 일차의료를 이용할 유인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이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강희정 건강보장정책연구실장은 일차의료 지불제도를 개별 의원에 대한 보상 중심에서 지역 의료기관 네트워크의 건강관리 성과까지 책임지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 실장은 등록환자의 의원 진료뿐 아니라 다른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입원, 응급실 이용과 약제비 등을 포함한 전체 의료비를 평가하고, 의료비 절감 성과를 지역 의료기관과 공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지역 의료기관 간 협력체계가 갖춰진 곳에서는 이러한 모델을 조기에 도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