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12.07 07:27최종 업데이트 22.12.0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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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끊길 위기 처한 '예방의학'...젊은 예방의학자의 전망은?

가천의대 정재훈 교수 "예방의학자는 임상의사와 정책 분야 잇는 통역가이자 작가...지원 기피는 시장의 냉정한 선택"

가천대길병원 예방의학과 정재훈 교수.
 
26개 전문과목의 현재와 미래

의료법에서 인정하는 전문의 진료과목은 내과,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성형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비뇨의학과,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병리과, 진단검사의학과, 결핵과, 재활의학과, 예방의학과, 가정의학과, 응급의학과, 핵의학과, 직업환경의학과 총 26가지다. 각 전문과목의 현재, 그리고 미래는 어떨까. 의대생과 젊은 의사들을 위해 해당 전문가들과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①예방의학과 가천의대 정재훈 교수 "임상의사와 정책 분야 잇는 통역가이자 작가"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최근 필수의료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아이들을 치료할 의사가 없다” “분만을 하는 병원이 없다” “전공의 지원율이 추락한다” 등 언론은 붕괴 중인 필수의료 문제를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고, 정부와 국회도 이전에 비해선 필수의료 문제의 심각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대책 마련에 나선 듯 보인다.

이 와중에 한 편에선 ‘필수의료’에 속하지 못했단 이유로 무관심 속에 조용히 고사해가고 있는 전문과목들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던 예방의학과가 대표적이다. 

예방의학과는 사전에 모집 정원을 정하는 대신 선발한 인원 전체를 정원으로 인정하는 사후정원 제도를 택하고 있다. 이에 매년 전공의 충원율이 100%를 기록하고 있지만 실상은 참담한 수준이다. 최근 몇 년간 예방의학과의 신규 전공의는 매해 한자릿 수에 그쳤다. 작년 모집에서는 전체 지원자가 5명에 불과했다. 이대로 예방의학의 대가 끊기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젊은 예방의학자의 행보에서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할 단서를 찾을 순 없을까.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예방의학자로서 종횡무진 활약했던 정재훈 교수(가천의대 예방의학과)는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다만, 학문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예방의학을 통해 세상을 도울 수 있단 점에서 최적의 선택이 될 것이라 추천했다. 정 교수는 예방의학자로서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치명적 요인으론 '실손보험'을 꼽았다.

Q. 예방의학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뭔가.

처음부터 예방의학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다. 의대를 졸업한 후 바로 로스쿨을 진학하려 했었는데, 병원 경험은 해봐야겠단 생각으로 인턴 생활을 마쳤다. 그 뒤엔 로스쿨과 병행이 가능할 것 같은 과를 찾다가 예방의학과를 택했다. 하지만 제도 상의 문제로 로스쿨 진학이 좌절됐고, 당시에 방황을 많이 했다. 원치않던 예방의학과 전공의 생활이다보니 적응이 어려웠고, 교수님들로부터 지적도 많이 받았다. 

Q. 지금은 예방의학자로서 누구보다 열심히 활약하고 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예방의학의 가치에 눈을 뜨면서 마음을 다잡게 된 건 3년간의 군의관 시절이었다. 육군본부 소속으로 감염병 역학 조사 업무를 하면서 나라를 지키러 온 젊은 남성들이 감염병으로 허망하게 사망하는 일들을 접하게 됐다. 2년차에는 전군의 예방의학을 총괄하는 일을 맡아 메르스와 맞닥뜨리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경험하면서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란 생각을 하게됐다.

예방의학과 기피 시장의 냉정한 선택...이념 논란 '불가피'한 측면 있어

Q. 코로나로 예방의학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예방의학과 지원자는 크게 줄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예방의학과의 위기는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이나 영국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예방의료, 헬스 서비스 연구 등의 영역이 보건학 전공자 등의 영역으로 점점 바뀌고 있다. 결국 현실적인 문제가 너무 크다. 시장의 냉정한 선택인 셈이다. 

Q. 예방의학에 대해 의료계 일각에선 반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예방의학이 하는 일이 원래 그런 일이란 점을 말하고 싶다. 의료시스템을 평가하기도 해야 하고, 개선하기도 해야 한다. 지적질로 느껴질 수 있다. 사실 예방의학이 원래 이런 일을 한다고 말하지만, 나도 막상 내가 평가를 받거나 지적질을 당하는 입장에 처해보니 임상의사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더라. 

가끔 현장과 유리된 정책들이 나오는 경우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때 느끼는 임상의사들의 좌절감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그건 예방의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책 사이드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한 정권, 한 장관, 한 당국자, 한 학회장의 임기 내에 유의미한 진전을 이뤄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임상 교수들은 학회에서 몇 년 일을 하다가 또 바뀌고, 예방의학자들도 같은 과제에 오랫동안 집중하지 않는 경우들도 있다. 공무원도 계속 담당 업무가 바뀐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당면한 현안은 해결이 하나도 안 되고, 파트너는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문제가 너무 거시적인 구조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해결도 쉽지 않다. 결국 서로에 대한 효용감이 떨어지게 된다. '예방의학자랑 일해봤더니 별 거 없네, 관료들이랑 일해봐야 별 거 없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부정적 시각이 생기는 것 같다.

Q. 예방의학과 의사들은 이념 논란에 자주 휩싸이기도 한다.

예방의학 학문의 특성상 이념적 성향이 완전히 배제되긴 어렵다. 이념색이 좀 더 강한 사람이 있고, 덜 한 사람이 있을텐데 각각의 장단이 있다. 이념 색깔이 강할 경우엔 정책적으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 반면 반대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힘을 받기가 어렵다. 이는 예방의학이 가진 문제이자 어쩔 수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방의학이 참 애매한 포지션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방의학자가 없으면 더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예방의학자는 임상의사와 정책 파트의 행정가 사이에서 통역가이자 작가로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행정이 쓰는 용어가 있고 임상의들이 쓰는 용어가 있으면 그 사이에서 서로의 언어에 맞게 통역을 해주기도 하고, 작가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순전히 통역가로서 일하거나, 순전히 작가로서 자기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

전공의 지원 제고 대책 마땅치 않아...학문에 즐거움 느낀다면 도전하라

Q. 예방의학 전공의 지원자를 늘릴 수 있는 대책은 없을까.

개인적으론 지금 어떤 대책을 내놔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생각은 접었다. 현실적으로 유인책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거다. 마치 NGO 활동가를 모으는 느낌이랄까. 예방의학자가 없다고 더 잘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지만, 그것과 예방의학을 어떻게 유지하고 후학을 양성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의사로서 예방의학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히 있다.

물론 그게 100명, 200명일 필요는 없고, 적절하게 활동할 정도의 사람만 있으면 되는데 지금은 그보다도 적은 게 문제다. 하지만 장기적인 선택 기전을 생각해보면 개선의 여지는 있다. 지금 우리 세대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진로 측면에서 선택지가 많다는 점이다. 교직을 원하면 교직을 할 수도 있고, 공직을 원하면 공직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예방의학 관련 과제나 사업들도 많아지면서 이제 경제적으로는 어느정도 보상이 돼가고 있다. 

Q.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주목을 받았는데 일종의 젊은 예방의학자로서 ‘롤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운이 좋은, 굉장히 독특한 시기에 독특한 사람일 뿐이고 예방의학을 전공했다고 모두가 나처럼 살 순 없다. 정상적인 경로는 아니고 개인적으론 예외적인 경우라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방송을 많이 나가고, 과제를 많이 하고 정책 관련 일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나를 보고 예방의학을 선택해라’라고 말할 순 없다. 나도 언제 어떤 식으로 날아갈지 모르는 정책의 하루살이 같은 사람이다.

Q. 그런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예방의학이 가진 매력이 있을 것이다. 예방의학 선택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먼저 학문에 대한 즐거움이 있다면 정말 나쁘지 않다. 본인이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 하고, 논문을 쓰고 그 결과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걸 보기엔 이 정도로 괜찮은 과가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행복할 때가 내 페이퍼가 나올 때다. 기초 학문하는 교수가 좋은 일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돈을 받을 수 있단 점인데, 예방의학이 그렇다. 그리고 보수도 나쁘지 않다. 물론 성공한 개원의나 가장 높은 급여를 받는 봉직의들과 비교할 순 없겠지만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현재 보건의료체계 지속가능성 한계...실손보험 문제 더 이상 미뤄선 안 돼

Q. 최근 SNS에 저성장·저출산 상황에서 국내 보건의료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단 내용의 글을 올렸다. 특히 실손보험 문제를 지적했는데 자세하게 설명해달라.

결국 시작은 도덕적 해이인데, 기본적으로 도덕적 해이는 시스템의 실패에 따른 결과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시스템 실패를 촉발하는 요인은 사실상 무력화된 의료비 본인 부담금 제도라고 생각한다. 무상의료를 추구한다면 게이트키핑이 있어야 하고, 무상의료 추구가 안 되면 경제적 허들을 둬서 게이트키핑을 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건데 지금은 게이트키핑없는 무상의료가 (실손보험을 통해) 일부 집단에서 성립이 되고 있다.

물론 무상의료라는 가치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의료접근성이 높은 것도 당연히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소한의 게이트키핑 장치가 있어서 강력하게 중앙정부를 통해 통제되거나 시스템적으로 보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게 무너지면서 시장 왜곡이 시작됐다고 본다. 

일반 개원가에서 비용 효과성이 높지 않은 비급여 진료가 과도하게 늘어나고 있는데 거기에 너무 많은 역량을 낭비하고 있다. 차라리 거기에 투입되는 자원이 필수의료 서비스를 강화하는 쪽으로 재분배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비급여뿐만이 아니다. 비급여 진료를 하면 급여 진료도 늘 수밖에 없고, 다른 접근성도 높아진다. 의료에 투입할 수 있는 사회 전체적인 자원이 한정된 상태에서 비급여나 실손보험의 문제는 그 시장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전체 의료공급 구조가 완전히 왜곡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실손보험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미 민간보험사와 국민들 간 사적 계약으로 성립된 구조라 딱히 개선책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하는 부분은 사실 위헌적 요소가 있어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입법부와 행정부가 함께 해야하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학계나 의료공급자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거시적인 구조의 개혁을 해야 한다. 연금 구조가 건강보험 구조 개혁처럼 위에서 욕을 먹는 걸 감수하고 추진하지 않으면 절대 바꿀 수 없는 영역이다. 지금 그런 일을 해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암울하다.

그동안 모두가 외면만 해왔던 것이다. 미루기만하고 피해오고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 점점 한계점은 다가오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미래 세대들이다. 잘 생각해보면 정치적으로 제일 취약한 게 투표권이 없는 아이들이다. 나중에 애들이 다 갚아준다는 식으로 가고 있는데, 그럼 우리 후대의 부담은 누가 경감해줄 수 있겠나. 국민들에게 자신의 혜택을 줄인다라고 접근하면 반발이 심할 것이다. 대신 자식이나 손자 세대의 부담을 줄여주자란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수용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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