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지역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대규모 규제 특례를 부여하는 '초광역권전략산업특구법'에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의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하는 조항이 포함되면서 '영리병원 우회 도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법안에는 병원을 개설할 수 있는 법인의 종류와 요건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반면, 해당 법인을 비영리법인으로 제한하거나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는 규정은 명시되지 않았다. 시민사회는 하위법령의 내용에 따라 영리법인의 병원 진입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22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 등 24인은 최근 '지방주도성장을 위한 초광역권전략산업특구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기업 투자 위한 '메가 특구'…의료·교육·노동 등 광범위한 특례
박상혁 의원 등은 제안 이유에서 "수도권으로의 인구 및 각종 산업·인프라 쏠림 현상과 지역 간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수도권 이외 지역은 인구 감소와 산업 기반 약화로 인한 지방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이는 국가 전체의 성장 잠재력을 저해하는 심각한 요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법안을 통해 앵커기업 유치와 대규모 투자 촉진, 우수인력 유입, 지역별 특화산업 집적을 유도해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법안은 수도권 이외 지역에 반도체·인공지능·바이오 등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초광역권전략산업특구를 조성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방자치단체가 특구계획을 수립해 신청하면 산업통상부 장관이 관계 중앙행정기관과 협의한 뒤 지방시대위원회 심의·의결과 국무총리 승인을 거쳐 특구를 지정하도록 했다.
특구에서는 규제의 신속확인과 실증특례, 임시허가뿐 아니라 기업의 요구에 따라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하는 '수요응답형 규제유예'와 소규모 지역에 추가 특례를 부여하는 제도도 운영할 수 있다.
전체 264개 조문 가운데 제18조부터 제174조까지는 건축과 토지이용, 산업입지, 교통, 교육, 의료, 주택공급, 전략산업 등에 관한 특례를 규정하고 있다. 특구의 규제 특례는 다른 법률에 우선해 적용된다.
특별보조금과 금융지원, 신용보증 우대, 특화단지 우선 지정, 조세·부담금 감면 등 특구기업에 대한 재정·행정 지원 근거도 포함됐다.
제61조, 외국인 설립 법인에 의료기관 개설 특례
보건의료계가 주목하는 조항은 제61조 '의료기관 개설 등에 관한 특례'다.
해당 조항은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이 초광역권전략산업특구 안에서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했다.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법인의 종류와 요건 등 구체적인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기관 개설 주체를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 등 의료인과 국가·지방자치단체, 의료법인, 비영리법인 등으로 제한한다. 의료기관을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운영하고 수익을 배당하는 영리법인의 병원 개설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의 범위와 성격을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대통령령에서 주식회사나 유한회사 등 영리법인 형태를 허용할 경우 영리병원 설립의 법적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으로 운영해야 하는지,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는지에 관한 제한도 법안에 명시돼 있지 않다. 제62조에는 '외국인전용약국' 개설 특례가 별도로 규정됐지만 의료기관에는 '외국인 전용'이라는 제한이 붙지 않았다.
시민사회 "법률 아닌 시행령으로 영리병원 길 열 수 있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21일 성명을 내고 법안이 영리병원 허용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의료연대본부는 "비영리법인으로 한정하는 규정이나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규정이 없다"며 "영리병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제주특별법이 외국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법인의 종류를 조례에 위임하면서 주식회사와 유한회사 형태의 녹지국제병원 설립으로 이어진 전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 의료연대본부의 우려다.
참여연대도 21일 성명에서 "시행령을 통해 의료기관 개설 주체를 달리할 수 있도록 해 영리법인의 병원 진입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번 법안이 의료기관 개설뿐 아니라 의료법인의 부대사업과 의료광고, 첨단재생의료, 의료기기 허가·심사 등에 관한 특례를 함께 담고 있다며 "'보건의료 규제완화 특구'를 만들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의료기관 개설 요건과 환자안전을 위한 규제를 전략산업 육성과 기업 투자 촉진을 위해 완화하거나 배제할 대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며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다만 이번 법안에는 외국인 설립 의료기관을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기관에서 제외하거나, 병원 운영 수익의 외부 배당을 허용하는 조항은 명시돼 있지 않다. 법안은 현재 발의 단계로 향후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의결 등을 거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