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2.19 21:33최종 업데이트 24.02.19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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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전공의 개별 사직, 2020년 젊은의사 단체행동과 무엇이 다른가?

대전협 조직 앞세우지 않고 의협과도 선 긋기…강경파 목소리 힘 받으면서 일사불란하게 전공의 개개인 움직임

지난 2020년 의료계 총파업 당시 모습.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대거 개별 사직과 블랙아웃(병원이탈)을 예고한 전공의들이 2020년 단체행동 때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차례 파업 경험이 있어선지 더욱 짜임새 있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평가다.  

전공의들은 수련병원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19일 단체 사직서를 제출한 데 이어 20일 오전 6시부터 병원을 이탈하고 휴대폰도 꺼두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전공의들은 대한전공의협의회와 같은 중앙집권적 조직형태가 아닌 개별로 움직이며 대한의사협회와도 일정 부분 선을 긋고 있다. 특히 내부적으로 강경파 주장이 주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도 특징으로 보인다. 

더 이상 거대 조직 아닌 전공의 개인이 중심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결속력을 다지던 2020년 단체행동 때와 달리 이번엔 개별 움직임이 눈에 띈다. 

당시엔 세력 규합과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의대생, 전공의, 전임의까지 힘을 합쳐 '젊은의사 비대위'라는 거대 조직까지 출범시켰다.

의협도 여기 가세해 대전협 상위 조직 개념으로 범의료계 투쟁 특별위원회(범투위)를 만들고 최대집 당시 회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전공의, 의대생 대표들은 범투위 소속으로 함께 투쟁 로드맵을 짰다. 

그러나 올해 새로운 투쟁에선 전공의 개인이 알아서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대전협이 구심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각 단위 병원별로 의견만 공유하고 병원별 전공의 개개인이 중심이 되는 형태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조직과 구심점이 없어도 단체행동이 가능한 이유는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가 전공의들의 '심리적 한계선'을 넘어버렸기 때문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의대정원이 일부 늘어날 수 있다는 의료계 내부 온건파조차 500~1000명이 허용 규모였다. 

즉 2020년 의대정원 400명 증원에서 불과 4년만에 2000명으로 늘어난 규모가 별도의 투쟁체가 없이도 전국 전공의들을 분노로 단결시킨 셈이다. 

빅5병원의 A전공의는 "의대정원 증원 규모가 전공의들의 심리적 한계선을 훨씬 넘겨버려 분노가 대단하다. 여기에 개원을 제한하고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내용이 더해져 구심점이 없어도 전공의들이 자연스럽게 뭉치고 있다"고 말했다.  

빅5병원 B전공의도 "동료들 사이에서 이대로 물러서면 대한민국에서 의사로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위기감이 있다"라며 "우리는 분명 환자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을 원했지만 정부가 오히려 그렇지 않았다. 의대정원 2000명을 증원하나, 아니면 지금 전공의를 사직하고 다른 길을 찾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2020년 파업 때 앙금 아직 남아…의협과 단절한 채 '마이웨이' 

특히 이번 전공의들의 움직임은 2020년 때와 달리 의협과도 단절된 채 이뤄지고 있다. 이는 전공의들 입장에서 2020년 단체행동 마무리가 아쉬웠다는 점과 연관이 있다. 

당시 최대집 회장은 전공의들과 합의 없이 졸속으로 9.4의정합의를 도출했다. 복수 전공의들에 따르면 아직 2020년 때의 앙금이 남아 있는 상태다.  

실제로 대전협 박단 회장도 그동안 내부 전공의들에게 줄곧 의협과는 별도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공언해 왔다.

박 회장은 최근 전공의 단톡방에서 "추후 의협이 어떤 입장을 내도 그 방향으로 따라가진 않을 것이다. 의협은 개원의 중심으로 2020년 단체행동 당시에도 참여율이 한자리 수였다. 이번에 행동을 한다면 주축은 전적으로 전공의와 의대생이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의협과 대전협의 한 번 어긋나버린 관계는 의협 비대위가 출범한 현재까지도 완벽하게 맞춰지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현재 비대위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전공의 사직에 대한 지지 표명과 법률 지원, 2020년 때처럼 의협이 졸속으로 합의를 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일 뿐, 함께 투쟁 로드맵을 짜거나 공동 조직을 구성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의협 비대위는 17일 전공의를 지원하는 안건들을 의결해 공식적으로 발표했지만, 이날 박 회장은 비대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수도권 대학병원 C전공의는 "정부가 두려워하는 것은 개원가가 아니라 대학병원이라는 것을 전공의들도 알고 있다"라며 "의협과 같이 투쟁해봐야 전공의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고, 의협에 끌려가기만 할 수 있다"라고 단언했다. 

전공의 내부적으로 강경파 목소리가 주류로 자리잡아

특히 이번 파업은 2020년 때와 달리 전공의 내부 온건파 목소리가 힘을 잃었다는 점도 큰 특징 중 하나다. 한 전공의는 내부 분위기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강경한 주장이 더 대세가 되고 있다. 지금은 주류로 자리 잡았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2020년 전공의 비대위가 한 차례 엎어지고 신비대위가 출범하게 된 이유도 강경파와 온건파의 힘겨루기 때문이었다.  

올해도 내부적으로 온건파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양측의 의견 대립은 지난 12일 대전협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사직서 제출 이후 '언제 병원을 박차고 나올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3월 말까지 기다리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다수 전공의 반대와 더불어 '박단 회장 사퇴론'까지 불거지면서 결국 '사직 이후 곧바로 병원을 나와야 한다'는 강경파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박단 회장은 빅5병원 전공의 대표 회의 직후인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빅5병원 전공의들은 19일까지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까지 병원 근무를 완전히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는 의대생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파악됐다. 현재 가장 보수적인 서울의대 학생들조차 전체의 83%가 동맹휴학에 찬성한 상태다. 전체 의대의 동맹휴학 찬성은 90%에 달한다.  

특히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대위는 아예 강경파 수장을 새로 선출할 예정이다.  

의대협 관계자들에 따르면 비대위원장 교체는 표면적으로는 임기 종료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론 동맹휴학 등 시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신임 위원장은 의대협이 동맹휴학을 결정한 만큼, 가장 먼저 휴학을 선언했던 한림의대 등 강경파 의대 대표들 중 신임 위원장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의료계 관계자는 "이번 2024년 전공의들의 움직임의 핵심은 주동자가 없다는 점이다. 조직이 주도하는 것이 아닌 개별 전공의가 개인 사유로 사직하는 방식으로 사태가 전개되다 보니 이번 움직임이 단체행동에 해당하는지 자체가 법리적 해석의 여지를 두게 됐다. 조직 수장들을 처벌하기도 애매하다"며 "이런 이유 때문에 대전협 차원의 어떤 성명서도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의대생과 전공의가 시작한 움직임이니 이들이 주도하고 마무리 짓는 것이 중요하다. 의협 비대위는 그 과정에서 법리적, 금전적 지원을 하고 엔드포인트 등 전략적 조언을 하는 정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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