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기관으로만 급여 제공 자격 제한…"유전자검사기관에 수탁 자격 부여 후 보험 급여 도입 필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희귀질환은 80% 이상이 유전질환으로, 증상이 다양하고 희소해 진단이 어렵다. 때문에 많은 환자가 정확한 병명을 찾지 못해 길게는 수년 동안 여러 병원을 전전하곤 한다. 하지만 최근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과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진단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전장 엑솜 시퀀싱(WES)과 전장 유전체 검사(WGS)는 희귀질환 환자 진단 기간을 기존 평균 5~6년에서 1달 이내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 분야에서 국내 기업의 기술 수준은 이미 글로벌 상위권에 속한다. 대표적으로 쓰리빌리언(3billion)은 AI 유전변이 해석 기술에 집중해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 결과 유전변이 해석 정확도 99% 이상, 진단 변이 발굴 탑5 정확도 99% 이상으로 글로벌 경쟁사들 대비 30%를 앞서는 기술적 우위를 구축했다. 현재 연간 희귀질환 환자 2만여명에 대한 WES/WGS 검사를 제공한다.
GC지놈(GC Genome) 역시 NGS 기반 유전 질환 진단에 강점을 두고 있다. 한국인 유전체 분석 데이터를 이용해 자체 변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질환 관련 변이 필터링 및 우선순위 결정을 위한 자체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또한 1만 건 이상의 염색체 마이크로어레이(CMA) 분석 노하우를 바탕으로 CMA 판독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했다.
이노크라스(InnoCras)는 지난해 한국노바티스의 환자지원 프로그램(PSP) 사업에 선정됐다. 유전 재발열 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정밀한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희귀질환 진단을 위한 WGS인 '레어비전(RareVision)'을 활용해 최적의 치료계획을 수립하고 진단 지연으로 인한 환자 부담을 줄이는 것을 목표한다.
이처럼 희귀질환 진단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관련 업체들도 성장하고 있지만, 관련 규제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실제 의료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에는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희귀질환 의심 환자에 WES/WGS 1차로 권고되지만 국내선 제도권 밖에 위치
일반적인 유전자 검사는 질병 유발 변이로 검증된 변이만 검사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희귀질환에서는 신규 변이가 원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자 유전체 전체를 읽어 환자 증상과 유관한 모든 유전질병을 한 번에 진단하는 WES 및 WGS 검사가 필요하다. 이미 글로벌 주요 학회에서 희귀질환으로 의심되는 환자에 대해 1차 검사로 WES와 WGS를 권고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유전자 검사 평가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제도권 바깥에 있는 상태다. 이에 각 병원이 개별적, 제한적으로 WES/WGS 기반 진단 검사를 활용하고 있다. 접근성 강화를 위해 정부에서 다양한 희귀질환 진단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실제 검사가 필요한 전체 환자 수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질병관리청의 희귀질환 진단지원 사업의 지원 규모는 2024년 410명, 2025년에는 800명이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허들을 낮추기 위해 검사 가이드라인 및 인증 기준 마련과 유전자 검사 기관에 수탁 자격 부여, 보험 급여 도입 등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WES/WGS 기반 희귀질환 진단 검사에 대한 유전자 검사 기관의 정도 관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이 기준을 충족하는 유전자 검사 기관들에 진단 목적의 유전자 검사를 제공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유전자 검사가 10여개 유전 변이를 발견하고 해석하는 것과 달리 WES/WGS는 최대 500만개 이상의 유전변이가 한 환자 당 발견된다. 국제 표준 인증인 미국병리학회의 CAP이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CLIA(미국실험실표준인증)는 개개의 유전변이를 정확히 읽어내는 변이 판별 정확도(Variant Calling Accuracy), 발견된 유전변이를 정확히 해석해내는 해석 정확도(Interpretation Accuracy) 두 가지 지표를 인증 및 정도관리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유전자검사기관에 수탁 자격 부여 후 급여 도입 시 효율적 예산으로 양질 검사 가능
국내에서 요양기관으로만 급여 제공 자격을 제한하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 기업이 국내에서 성장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됐다. 기술력을 갖춘다 해도 유전자 검사 기관이 환자에게 검사를 제공할 수 없어,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기업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상 국내 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유전자 검사는 요양기관 내 설치된 유전자 검사 기관에만 수탁자격이 부여돼 있다. 요양기관이 아닌 유전자 검사 기관(기업)은 보험 적용되는 유전자 검사에 대해 병원의 수탁을 받아 검사를 제공할 수 없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WES/WGS 검사 등 대규모 유전체 데이터의 생산 및 첨단 AI 유전변이 해석 기술력을 고도화해 나가기 어려운 개개의 병원에서 양질의 유전자 검사를 제공하기 어렵다"면서 "WES/WGS 희귀질환 진단과 같은 유전자 검사는 일정 자격을 갖춘 기관에 대해 수탁기관 자격을 부여해 최고 품질의 유전자 검사가 희귀질환 환자에 적시에 제공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규제 변화가 일어난다면, 보험 급여 도입 이전에도 병원에서 자격을 갖춘 수탁기관으로 희귀질환 유전자 검사 의뢰가 활발해져 많은 희귀질환 환자들이 빠르게 진단 받고 치료 과정에 연계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유전자 검사 기관에 수탁 자격이 부여된 후 보험 급여가 도입된다면, 기존의 급여 유전자 검사에 비해 양질의 검사가 훨씬 효율적인 예산으로 운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급여 적용된 패널 유전자 검사는 유전자 검사 기관에 수탁기관 자격이 없어 요양기관들이 급여 비용 100만~140만 원에 검사를 제공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CLIA 인증을 받은 상업 유전자 검사 기관들도 검사를 제공할 수 있어 시장 경쟁이 활발하다. 그 결과 글로벌 최고 품질의 패널유전자 검사가 30만~50만 원 수준에 제공된다"면서 "'요양기관'으로만 급여 제공 자격을 제한함으로써 자유 경쟁이 이뤄지지 않아 기술력을 갖춘 유전자 검사 기관이 국내에서 성장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국내에서 일어나기 어렵고,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기업만 제한적으로 기술 고도화가 가능한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그는 "'유전자검사기관에 수탁자격 부여' 라는 규제 완화 하나만으로, 환자는 양질의 검사를 염가에 제공받을 수 있고, 병원은 최고 품질의 검사를 환자를 위해 수탁기관에 의뢰할 수 있으며, 유전자검사기관은 적절한 비즈니스 구조를 만들어 기술과 서비스 고도화를 이루며 국내 및 글로벌 성장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