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7.19 07:26최종 업데이트 23.07.1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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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부족' 운운하는데 좋은 교육을 받은 임상 실습 의대생은 왜 외면하나

[칼럼] 안덕선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세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올해 의학교육 학술대회의 주제는 '임상실습'이었다. 임상실습은 인턴교육과 더불어 우리나라 의학교육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 의과대학 임상실습 제도를 보여준다. 프랑스의 의학교육은 시기별로 3개의 주기(Cycle)로 표현된다. 1주기는 첫 3년간의 의과대학 과정으로 주로 의학의 기초 교육이다. 1학년은 의사, 약사, 치과의사, 조산사와 공동 교육으로 경쟁을 통해서 2학년에 진학한다. 의사 과정을 위해서 1학년에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실제적인 의대 입학에서 한 번의 재수는 허용하는 것이다. 2학년이 되면 방학 기간을 이용해 4주간의 의무 무보수 간호업무를 수습한 후 12주간의 병원 실습을 거쳐야 한다. 2학년과 3학년은 해부, 병리, 생리, 미생물, 약리를 위시 선택과목으로 의철학, 의사학, 의료정보학이 제공된다. 

우리나라의 진단학 과정과 유사한 임상 증상과 증후를 위한 기호학(Semiotics)은 과거 3학년 과정에서 다뤘으나 현재는 2학년으로 편입되고 있다. 3학년은 4.5.6 학년으로 구성되는 2주기 의학교육을 위한 전환기(Transition)교육으로 병원교육과 기초의학 교육의 인터페이스 과정이다. 1주기 3년 과정을 수료하면 우리나라의 학사학위(불어 License)에 해당하는 DFGSM (일반의과학수료증: Diplôme de Formation Générale en Sciences Médicales) 자격증을 수여한다. 영국 의대도 첫 3년 과정을 수료하면 기초의학사 자격을 수여한다. 프랑스 일부 의대는 3학년이면 벌써 병원 임상 실습 과정에 진입한다고 한다. 

2주기 의학교육은 의과대학 4,5,6 학년 과정으로 주로 질병의 치료와 예방에 대한 병원 중심 교육이다.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나 이 과정을 Externa라고 명명한다. 실제로 병원에서는 2주기 의과대학생을 흔히 병원학생(Hospital Students)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치과대학에서 임상실습생을 원내생이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Externa는 전공의 등 상급 임상의사의 감독하에 의료행위가 가능하나 치료에 대한 책임이나 처방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학생인 Externa도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 있다. Externat는 일반적으로 1년에 각 3개월간의 4개 교육 과정으로 구성된다. 필수의료인 소아과, 산부인과 수술, 내과 및 응급 의학은 의무 교육 과정이다. 3개월의 기간은 6 주간의 병원교육과 6 주간의 수업과 시험, 그리고 전공의 시험 준비를 위한 교육으로 구성돼있다. 임상의 이론과 실무가 적절하게 배정된 것으로 보인다. 강의는 주로 실제 임상 사례 중심이다. 

최신자료의 확인이 필요하나 Externa 기간 중 학생도 병원 근로에 대한 상징적인 보수를 받는데 4학년이 월 122유로, 5학년이 월 237유로, 6학년이 264유로의 급여를 받는다. 급여를 받는 프랑스의 임상실습과는 반대로 우리나라는 학생이 학교에 등록금을 내고 관찰식 임상실습을 하는 것이 대조적이다.

프랑스에서 임상 실습 학생인 Externa는 공식적으로 급여를 받는 학생 겸 유급 근로자의 이중 신분을 갖는다. 그리고 다른 직원과 마찬가지로 연간 5주의 유급 휴가가 있다. Externa 는 3년 기간 중 최소한 25번 이상의 응급 당직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 의과대학 6학년을 마치면 우리나라의 석사학위인 DFASM (의과학심화교육수료증: Diplôme de Formation Approfondie en Sciences Médicales)가 수여된다. 6년제 의과대학 과정을 마치면 학사가 아닌 석사학위를 수여한다. 3 주기 의학교육은 전공의 교육으로 과목별로 통상 4-6년이 소요되고 전공과목 선택은 전공과목 결정을 위한 국가시험을 통해 선발된다. 

캐나다와 미국은 전문대학원 체제에서 3, 4학년은 주로 임상실습 교육이다. 학생에 대한 명칭도 분명해 우리말로 부자연스럽기는 하나 임상서기(Clinical Clerk)로 억지로 번역된다. 통상적으로 학생 의사(Student Doctor)하는 호칭도 사용된다. 북미나 유럽에서 임상실습 학생을 포함해 의과대학생은 예비의사로 간주한다. 학생도 면허기관에 등록하고 학생도 의사의 전문직업성을 준수해야 한다. 특히 임상조기노출이 추세인 현대적 의학교육에서 학생이 임상 현장에서 보여주는 행동은 반드시 의사에 준해야 한다.  

예비의사인 임상실습 학생의 주된 직무는 Clerking이다. Clerking의 의미는 명확해 환자의 포괄적인 병력을 수집하고 환자의 진찰, 기본 검사를 통해 환자의 문제를 수록하고 이에 따른 환자에 대한 치료계획을 작성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병원에 입원하는 첫 단계에서 의사가 환자 상태에 대해 유익한 정보를 수집하는 의료행위로서 주로 실습학생의 몫이다. Clerking은 학생이 환자와 직접적인 조우를 통해 자신이 획득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합성하고 정리하고 임상적 추론(Clinical Reasoning)을 통해 잠정적인 진단과 감별진단을 도출하고 이를 근거로 임상적 처치에 대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

Clerking은 의사로서 고등사고 능력과 임상적 역량을 배양시키는 직접적인 임상경험을 의미해 상급자의 감독과 확인 서명으로 처치 명령(Order)도 작성할 수 있다. Clinical Clerkship의 목표는 의사로서 가장 기본적인 역량을 배양하고 졸업 후 전공의 교육을 위한 이론과 실무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학생이 실무 참여를 통해 적으나마 급여를 받는 임상실습 제도는 학생을 수동적인 관람자에서 능동적인 학습자로 저절로 변모시킨다. 실습 학생을 임상 현장에서 직무 투입을 통해서 얻어지는 직접적인 경험은 일하는 것이 곧 배움이요, 배우는 것이 곧 일하는 것이라는 현장 학습원리를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과대학 교육에서 임상실습은 대체로 본과 3학년부터 시작된다. 임상실습에서 학생이 환자에 대한 직접적 경험의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북미나 프랑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고학년 학생이면 최소한 Clerking은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관찰 위주의 실습이다. 실습과 견학의 교육적 의미는 매우 다르다.

견학은 학생의 직접적인 경험에 의한 정보수집과 진단과 치료에 대한 능동적 도출보다는 상급자의 의료행위에 의한 결과물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해 교육의 성과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강의실에서 터득한 지식의 임상 적용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다. 의사가 되기 위한 학생 실습은 강의실이 아닌 외래나 입원, 응급상황에서 시각에 의존하는 교육이 아닌 직접적인 임상 담화(Clinical Discourse)를 중심으로 능동적으로 전개돼야 한다. 시각적 관찰 교육이 아닌 실제 환자나 환자 가족 그리고 다른 진료진과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체화된 역량 획득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학생으로 역할의 제한점이 존재하고 상급자의 감독이 필요하다는 단서가 동반된다. 

미국은 4년제 대학을 나온 Physician Assistant가 1차 진료에 참여한다. 우리나라에서 6년제 의과대학의 5.6 학년인 임상실습 학생이 미국의 의사보조(P.A.)가 하는 수준의 직무도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은 매우 실망스럽다. 고학력자가 상대적으로 저학력 의료인력이 하는 직무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대학병원에서 현재의 인턴업무 중 상당 부분은 의사로서 고등사고 능력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 반복 업무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난이도나 의료 사고의 위험성도 매우 낮은 업무는 우선 과감하게 학생에게 이관시켜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Clinical Clerk 이나 프랑스의 Externa와 같이 임상실습 학생을 위한 분명하고 좋은 직역 명칭도 필요해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의사가 부족해 준의사격으로 만든 제도가 의생(醫生)제도였다. 20세 이상 2년의 의업 종사 경력이면 취득할 수 있었다. 지금도 홍콩 거리의 간판에는 의사를 한자(漢字)로 의생(醫生)으로도 표방하고 있다.

의생이라는 단어는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표기법이기는 하나 실습 학생에게 다시 적용해 볼 만한 명칭이기도 하다. 그리고 경직된 시대착오적인 의사 면허제도도 현대화해 실습학생에게 교육 면허를 부여해 제한적 의료활동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전시에는 본과 3,4학년 학생도 소위 임관으로 군의관 징집도 가능하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의사 부족 운운하는 시대에 좋은 교육을 받은 임상실습 학생이나 인턴은 의료현장의 소중한 인적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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