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7.10 11:45최종 업데이트 23.07.1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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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형 의사 양성 교육...전문직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때

[칼럼] 안덕선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세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미국, 캐나다는 4년간의 전문대학원 졸업후 전공의 교육으로 곧장 진입한다. 그러나 영상의학, 피부과 등 속칭 마이너과 지원자를 위한 별도의 인턴과정도 운영하고 내과, 외과 등 필수 임상과는 인턴과정 없이 전공의 1년차가 곧 단과 인턴과 전공의를 겸하고 있다. 학생 임상 실습 교육의 깊이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학생 임상 실습과 인턴교육에서 우리나라와 선진국 사이에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임상 실습 교육의 개선이 목적이었던 우리나라 의사 실기시험도 우려하던 대로 임상 실습 교육의 개선이 아닌 실기시험 준비와 대기를 위한 기간으로 바뀌어 소중한 한 학기를 낭비하고 있다. 

프랑스는 6년제 의과대학에서 4, 5, 6 학년은 Extern 과정으로 강의 중심이 아닌 현장 실무중심의 교육이다. 학생인 동시에 병원에서 임상의 기초적 역량과 관련된 직무에 투입해 적으나마 상징적인 급여도 받는다. 3개 학년의 학생도 중요한 의료 인적자원이다. 프랑스는 이공계 실습 교육도 학업 중 기업체 파견 근무를 통해 실무와 이론을 동시에 교육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필자가 경험했던 학생 임상 실습제도인 Clinical Clerksip은 우리나라 전공의 1년 차 초년병 정도의 직무를 수행해 나를 놀라게 했다. 결코 우리보다 우수한 학생은 아니나, 임상 실습에 대한 교육적 시각과 제도가 달라 임상 실습이 진정 의사의 기본적 임상 역량을 배양하는 기간이 되고 있다.

캐나다에서 의과대학생이면 면허기관에 등록이 되고 교육 면허를 근거로 실습 학생인 Clinical Clerk이 병원 내에서 교수와 상급자의 감독하에 진정한 임상 실무에 참여한다. 어느 사회나 환자라면 학생 의사에 대한 신뢰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적 규범이 좋은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환자나 사회도 학생 의사의 배움에 일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학생 임상 실습을 돕기 위한 시민단체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인턴교육은 PACS 도입 이전 시대는 환자의 방사선 필름을 찾거나 채혈, 정맥주사, 심전도 조사, 도뇨 등 보건의료직에게 위임 가능한 비교적 단순한 노동과 전공의와 교수의 사적 심부름까지 온갖 잡일을 도맡아 했다. 이제 필름 찾기는 없어졌고 정보시스템에 의한 자료 획득으로 잡일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인턴교육의 본래 목표 달성은 여전히 현실과 거리가 먼 가설적인 이야기로 들리고 있다. 

의학교육 선진국을 가름할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지표는 학생 실습이나 인턴교육의 수준이다. 임상 실습 학생과 인턴과정은 학생에서 의사로 이행되는 시기(transition period)로서 가장 낮은 수준의 역량을 갖은 예비 의사거나, 초년병 의사이기에 교육적 시선이 훨씬 강조돼야 하는 시기다. 학생과 인턴과정에서 못 배운 역량도 전공의 교육으로 보상이 된다는 가설도 실제로는 실현 불가능한 그럴듯한 논리이기도 하다.

임상 실습과 인턴에게 필요한 임상 기본교육은 시기가 놓치면 불완전한 상태로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전공의 과정으로 이행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의 임상 실습이나 인턴과정은 결코 기본역량을 충분히 갖춘 의사를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 실습 학생이나 인턴과정 모두 체계적이고 잘 설계된 교육의 지배구조를 필요로 한다. 인턴이나 실습 학생 모두 어느 특정 임상과의 소속이 아니어서 교육적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기 마련이다.

학생실습과 인턴교육을 위해서는 안전한 학습 환경(Safe Learning Environment)과 잘 기획된 학습행사(Scheduled Learning Event)가 제공돼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실습 학생이나 인턴 교육과정에 대한 감측(monitoring)과 평가인증 체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인턴이나 학생의 교육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적당히 넘어가는 형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생실습이나 인턴과정이 각종 임상과의 관람이나 유람 혹은 특정과의 교수나 전공의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과 탐방이나 인류학적 탐사로 바뀌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영국의 전환학년제(Transition year)인 파운데이션 프로그램(Foundation Program)이나 호주의 인턴제도도 오랜 기간 현대적 교육의 개념에 부합하지 못하는 비판을 면하지 못했다. 결국 교육의 실질적 변화를 일으킨 것은 평가인증제도(accreditation system)를 도입한 것이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우리와는 달리 사회적 공적자금으로 학생과 인턴의 교육비를 담당하기에 사회적 투자가 들어간 만큼, 기본적 역량을 갖춘 의사를 양성해야 하는 것이 교육병원이나 대학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영국은 전국 단위의 Foundation Program의 교육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였고 교육이 부실한 병원은 파운데이션 프로그램을 폐쇄시킨다고 한다. 이런 강력한 제도를 도입한 후 파운데이션 프로그에 대한 실질적인 향상이 이뤄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아직 취약한 학생 임상 실습과 인턴에 대한 교육 개선을 위해서는 우선 전공의 교육의 현대화가 이뤄져야 한다. 현대적인 임상 기술을 가르친다고 해서 현대적 임상 교육은 아니다. 세부전문의 급에서 국제적인 역량을 갖췄다고 국제적 수준의 좋은 교육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전공의 교육을 위한 현대적 교육학적 사회학적 개념 등이 도입되고 전공의가 필요한 비임상적, 혹은 공통역량(generic competency)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 실습교육과 인턴교육의 선진화는 전공의 교육 개선과 임상 교육에 대한 지배구조(Governance) 확립과 여러 임상과의 협치가 가능한 고도의 교육 역량이 필요하다. 

간호조무사도 할 수 있는 일을 그저 구경만 해야 하는 임상 실습이나 6년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도 고등사고 능력과는 무관한 잡일과 허드렛일로 의사 양성의 젊은 세월이 낭비되고 있다. 전문직 스스로 전문직 양성과 교육에 대한 자율적이고 주도적 역량과 높은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전문직이 관치를 불평하며 한편으로 관치에 의존하는 우리의 역설적 문화는 의사 양성에 관한 사안도 복지부의 비전문적 간섭과 판단에 의존하며 가장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임상 역량 교육은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최고의 학력 집단이 보여줄 수 있는 시대착오적인 임상 실습과 인턴교육은 전문직이 자체적으로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 기본역량의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전문의 자격만 획득하면 충분한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지위를 누렸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시대적 변화와 사회적 요구는 전문직 스스로 교육에 대해 역량 중심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21세기 세대인 현재의 임상 실습 학생이나 인턴들은 자신들이 받는 현재의 교육을 과연 어떻게 바라볼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의사로서 최하위 신분적 취약성이 보여주는 현재의 임상 실습과 인턴교육이 후배 의사에게 물려줄 소중한 전통일지 아니면 엄청난 좌절감의 유산일지는 전문직 스스로의 응답을 요구하고 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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