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 가능 의료기관 2013년 706곳→2024년 445곳…시군구 77곳은 분만기관 전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전국에서 분만 가능한 의료기관이 10여 년 만에 261곳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분만실 폐쇄가 누적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산모가 진통을 시작해도 받아줄 병원을 찾지 못해 119를 타고 병원을 전전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만병의원들은 분만 인프라 붕괴가 더 이상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으로 번지고 있다며, 낮은 수가와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을 방치할 경우 산과 전문의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한분만병의원협회는 6일 성명을 통해 “대한민국의 분만 현장은 단순한 위기를 넘어 최종 붕괴 단계에 진입했다”며 “대통령실과 정부는 분만 인프라 붕괴를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하고 즉각적인 구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협회는 분만 인프라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고 진단했다. 협회에 따르면 분만 가능 의료기관은 2013년 706곳에서 2024년 445곳으로 감소했고, 의원급 분만 의료기관은 2014년 376곳에서 2024년 178곳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전국 250개 시군구 중 77곳에는 분만기관이 없고, 60곳에는 단 한 곳만 남은 것으로 나타났다.
협회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6,082명이라지만 평균연령은 이미 54세를 넘었고, 세 명 중 한 명이 60세를 넘겼다”며 “전문의가 개설한 의원 2,291곳 중 실제 분만을 청구한 곳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산부인과 전문의 수와 분만 현장을 지키는 산과 전문의 수 사이의 간극은 이미 재난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분만 인프라 붕괴의 원인으로는 예측 불가능한 의료사고, 장기화되는 소송, 형사처벌 부담, 365일 24시간 이어지는 당직,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의료수가, 부족한 의료인력 등이 꼽혔다.
협회는 “새로운 전문의들은 분만 현장에 들어오지 않고, 기존 분만 의사들은 고령화와 소진 속에서 하나둘씩 물러나고 있다”며 “산모가 진통을 시작해도 받아 줄 병원을 찾지 못해 119를 타고 병원을 전전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일시적인 응급의료 혼선이 아니라 분만을 담당할 산과 전문의 인력이 사라진 결과”라고 밝혔다.
특히 협회는 모성사망비 등 평균 지표만으로 분만 안전망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보건복지부 자료를 인용해 한국의 모성사망비가 10.1명으로 일본 3.6명의 약 세 배에 이른다고 밝혔다. 또 35세 이상 산모 비중은 2014년 21.6%에서 2024년 35.9%로 증가했고, 37주 미만 조산아 비율도 같은 기간 6.7%에서 10.2%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좋은 평균은 무너지는 지역의 비명을 덮는 담요일 뿐”이라며 “지금 봐야 할 것은 OECD 평균이 아니라 일본과의 격차, 지역 분만실의 폐쇄, 고위험 산모가 갈 곳을 잃는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협회는 해외 사례를 들며 분만을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일본은 2009년 산과의료보상제도를 도입해 분만 중 중대한 장애가 발생해도 과실을 따지지 않고 사회적 보상체계로 해결하는 틀을 만들었고, 노르웨이·뉴질랜드·캐나다 등도 원거리 산모 이송과 취약지 분만역량 유지를 국가가 책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협회는 “분만병원을 살리는 것은 특정 진료과를 지원하는 일이 아니다. 산모의 생명, 신생아의 생명, 국가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라며 분만 인프라 붕괴 방지를 위한 7대 정책을 제안했다.
첫 번째는 분만수가 인상과 기관보상제 도입이다. 협회는 24시간 분만 인프라 유지를 위한 기관 단위 직접 특별 보상을 신설하고, 기본 분만수가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정책수가 300% 인상을 촉구했다.
두 번째는 마취과 의사 초빙료 현실화다. 협회는 야간·휴일 응급 제왕절개에 필수적인 마취 인력 확보가 어려워지면 지역 분만병원이 고위험 산모를 받을 수 없다며, 외래 마취과 전문의 초빙 비용을 실제 시장 단가 수준으로 합리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는 토요일 분만에도 야간수가를 적용하는 방안이다. 협회는 분만은 평일 근무시간에 맞춰 발생하지 않는 만큼, 토요일과 휴일에도 분만실을 유지하려면 이에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네 번째는 포괄수가제 적용 시 산후출혈 대응에 필요한 고가 필수약물, 수혈, 바크리풍선 처치비 등을 추가 급여 예외로 인정하는 것이다. 협회는 “산후출혈은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모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제 응급상황”이라며 “필수 처치를 원가 이하로 방치하면 병원은 고위험 산모를 받을수록 손해를 보고, 결국 고위험 분만 회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다섯 번째는 산모 초음파와 자궁수축검사 급여 제한 완화다. 고령 산모, 조산 위험, 태아 성장 이상, 임신중독증 등 고위험 임신이 늘어난 현실에서 필요한 검사를 제한하면 산모 부담이 늘고 의료진도 안전을 위한 진료를 하면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섯 번째는 응급산모·신생아 이송 컨트롤타워 체계 확립과 모자의료 진료협력사업 조기 시행이다. 협회는 “산모가 119를 타고 병원을 전전하는 현실은 개인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응급분만체계의 실패”라며 “지역 분만기관, 상급종합병원, 신생아중환자실, 119 이송체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협회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책임 면책 법제화를 요구했다. 협회는 “분만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영역”이라며 “불가항력적 사고까지 형사처벌 위험으로 남겨 둔다면 젊은 산부인과 전문의가 분만 현장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고 했다.
협회는 “분만 인프라의 핵심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며 “산과 전문의가 현장을 떠나면 아무리 시설과 장비가 있어도 분만실은 더 이상 분만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지막 불씨가 꺼져버리기 전에 대통령실과 정부는 대한민국 분만 인프라 붕괴를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하고 즉각적인 구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