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11.11 16:39최종 업데이트 25.11.1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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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대원이 병원을 결정하게 하자는 발상, 응급의료 이론에 대한 무지의 산물

[칼럼]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최근 모 의원이 발의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은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구급대원이 지정하고, 응급실 측의 동의 없이 환자를 내려놔도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치권이 이를 지지한다는 소식이 들리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응급실 선택권’을 구급대원에게 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응급의료체계의 기본원리를 이해했다면 이런 법은 결코 나올 수 없다. 응급의료체계(Emergency Medical Service System, EMSS)의 시원은 외상체계(Trauma Care System)다. 외상체계 이론의 기원은 세계 최고 미국 메릴랜드 외상센터의 창설자인 닥터 카울리이며, 구급대원이 중증외상 환자를 부적절한 병원에 내려놓고 떠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엉뚱한 응급실에 진입하면 진료절차로 인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환자를 가까운 병원에 아무 데나 데려다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수술 준비가 된 고급 외상센터로 곧장 이송하라는 것이 외상체계의 근본정신이었다. 그래야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법안은 이 원리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고 있다.

응급실은 단순히 문을 열어 놓은 공간이 아니다. 각 병원마다 진료역량과 전문분야가 다르고, 수용 가능한 인력·장비 수준 또한 상이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마저도 근무 중에 뇌동맥류가 파열한 간호사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했다. 응급의료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행정명령으로 환자 수용을 강제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구급대원이 환자의 병태나 병원의 상황과 관계없이 환자를 ‘내려 놓고 가버리는’ 일이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이는 응급의료의 퇴보다.

더 큰 문제는 이 법이 응급의료체계의 왜곡만이 아니라 의료전달체계의 실패를 제도화한다는 점이다. 국민이 의료에 접근하는 통로는 외래와 응급실 두 가지다. 급하지 않은 외래환자가 제멋대로 대형병원을 찾아가는 구조가 1998년의 진료권 제도 폐지에 의해 고착됐으며, 이미 지방의료의 붕괴를 초래했다. 그런데 그 잘못된 병원선택 행태가 응급의료 영역으로까지 번지는 셈이다. 환자 본인조차 '응급실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결과가 2023년 피습당한 모 정치인의 부산 헬기런 사건으로 나타났으며, 그 근본 원인은 잘못된 의료전달체계에 있다.

더욱이 소방당국의 과거 행정착오도 ‘응급실 뺑뺑이’ 현상의 중요한 원인이다. 원래 병원 간 전원조정을 맡았던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의 기능을 십여 년 전 소방(119) 체계로 통합하면서 전문적 의료조정 기능이 사라졌다. 그 결과, 구급대가 엉뚱한 응급실에 환자를 내려놓고 가버리면 응급의사가 수 시간 동안 전화를 붙잡고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응급의료는 행정이 아니라 의학이다. 환자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병원이 어디인지 판단하는 것은 구급대원이 아니라, 현장 의사와 병원 의료진이다. 환자의 생명은 행정 편의나 정치적 구호의 문제가 아니라, 정확한 시스템 설계 위에서 지켜져야 한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 보건복지부는 오히려 해당 의원의 잘못된 법안을 방치하고 있다. 의사 출신이라는 장관이 응급의료의 본질이 ‘환자의 안전을 위한 의료적 판단’에 있음을 잊은 듯하다. 의사 출신이라는 해당 의원은 학문적으로도, 시스템적으로도 응급의료체계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응급실 진입이 어려운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은 아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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