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8.12 06:26최종 업데이트 22.08.12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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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돋보기] 법률 공백 3년째인 낙태죄 방향은?…허용 임신 주수 ‘10주 vs 6주’

약물 낙태 비율 8.2%, 약물낙태는 낙태 방법서 제외시켜야…시술 가능 의료기관은 ‘지정제’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헌법재판소의 인공임신중절(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온 지 3년째가 됐지만 입법 논의가 지연되면서 법률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다.
 
지난 2019년 4월 헌재가 형법 제269조 ‘자기낙태죄’와 제270조 ‘의사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린 이후 입법개선 기일 시한을 2020년 12월 31일로 정했지만 입법 논의가 지지부진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건없는 낙태 허용 임신 주수 기준에 대해서도 10주 내 혹은 6주로 전문가 의견도 갈리고 있다. 의료계 현장 전문가들은 입법 과정에서 약물 낙태를 금지하고 의사의 낙태 거부권을 포함해 시술이 가능한 의료기관을 사전에 지정·허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민주당 사실상 낙태죄 전면 폐지…국힘, 임신 주수 정해 제한적으로 낙태 허용
 
11일 국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발의된 법안은 총 6가지다. 우선 정부안의 경우, 형법 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의사에 의해 의학적인 방법으로 1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고 15~24주 이내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 허용하자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박주민 의원, 정의당 이은주 의원 안은 사실상 낙태죄 전면 폐지를 골자로 하고 있다. 기존 모자보건법에 '태아가 모체 밖에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라는 허용 범위 조항을 삭제해 사실상 임신 전 기간의 낙태를 허용토록 한 점이 특징이다. 
 
반면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은 태아의 생명 존중을 강조하면서 낙태죄 성립 기준을 태아의 심장박동 시점인 임신 6주로 제안했다.
 
같은 당 서정숙 의원의 안은 임신 10주 이내를 기준으로 낙태를 인정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그 이후엔 임신부에게 건강상의 현저한 침해가 있는 등의 경우에 이를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양심상의 이유로 의료인이 사전에 낙태 거부 의사를 밝히도록 하는 법안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낙태를 거부하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개설자가 사전에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낙태수술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출하고, 이를 등록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국·공립 상급종합병원은 상시적으로 낙태수술을 실시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도록 법제화해 임신한 여성이 1~2차 병원을 거치지 않았더라도 바로 상급종합병원에서 수술받을 수 있도록 했다.  
 
후반기 국회 원구성이 마무리되면서 올해 후반기부터라도 신속히 낙태법 관련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새로운 국회 원구성과 함께 가장 먼저 낙태 관련 입법 논의를 시작하자"며 "여성의 자기결정권, 건강권 보장은 진영논리로 나누어 결정할 수 없는 헌법적 가치다. 제대로 된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전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도 6월 29일 의원 총회에서 "국회 원구성 마무리와 함께 최우선적으로 여성들의 안전한 임신중단, 성과 재생산을 위한 권리보장을 위한 법안 심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2020년 낙태 3만2000건, 임산부 15.5% 경험 있어…약물 낙태는 8.2%
 
사진=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낙태가 시행되고 있는 상황은 어떨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달 30일 보건복지부 연구용역으로 실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한해 동안 낙태는 약 3만2000건 이뤄졌다.
 
이는 34만건에 달했던 2005년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이지만 2018년(2만3000건)부터 매년 증가 추세다.
 
낙태를 경험한 여성은 총 365명으로 임신경험이 있는 여성 2362명의 15.5% 수준이었다. 이들의 수술 당시 평균 연령은 27.0세로 2017년 28.4세에 비해 다소 낮아졌다.
 
연령대별로 보면 25~29세가 34.2%로 가장 많았고 20~24세가 31.8%, 30~34세가 18.6% 순이었다. 이들의 혼인 여부는 미혼이 64.4%, 법률혼 상태가 26.8%, 사실혼·동거가 8.2%였다.
 
낙태 방법은 수술이 91.8%로 가장 많았고 약물이 8.2%로 그 뒤를 이었다. 수술로 중절 한 경우 평균 임신주수는 6.8주였고 약물로 중절한 경우는 6.1주였다.
 
사진=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

조건 없는 낙태 가능 임신 주수…‘10주 VS 6주’
 
현재 의료계에선 낙태 가능 임신주수를 놓고 조해진 의원안과 서정숙 의원안이 대립하고 있다.
 
먼저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 주류 의료계는 낙태가 가능한 임신 주수를 10주 이내로 제한하고 이후 낙태는 불가피한 사유에 의한 것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아는 임신 10주까지 대부분의 장기와 뼈가 형성되고 낙태는 태아가 성장할수록 과다출혈과 자궁 손상 등 합볍증 발생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10주 내 낙태가 그나마 안전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또한 임신 10주가 넘어가면 태아 DNA 선별검사 등이 가능해 원치 않는 성별 등의 사유로 아이가 낙태될 수도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의학적 측면을 고려한 비의학적 사유의 낙태 허용 시기는 임신 10주 미만이다. 시술 의사는 비의학적 사유의 낙태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시술 과정만 담당한다"며 "10주 이후 태아 사유의 낙태는 사회경제적 사유에 포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좀 더 보수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고려대안암병원 홍순철 산부인과 교수(성산생명윤리연구소 부소장)는 "학회는 임신 주수가 늘어나면 합병증이 증가한다는 관점에서 10주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낙태는 좀 더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자유로운 낙태 가능 임신 주수를 6주로 제한하고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시에 10주까지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보면 조해진 의원안이 현재 발의된 안 중에선 가장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윤리연구회 문지호 회장(명이비인후과원장)은 "미국 등 사례를 고려해 아기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6주 이후엔 낙태를 제한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낙태를 임신의 치료법으로 보는 인식은 위험하다. 낙태 예방을 위한 성교육은 피임법이 아닌 생명 존중법이 돼야 하고 미혼모 기관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약물 사용한 낙태 방법은 ‘제외’하고 시술 가능 의료기관은 ‘지정제’로
 
약물 낙태에 대해선 부정적인 견해가 중론이다.
 
약물 낙태는 사용 전에 초음파 검사로 정확한 임신 주수를 확인해 사용이 가능한 시기인지 여부가 반드시 확인돼야 하고 자궁 외 임신이거나 과다출혈의 위험이 있는 경우 등 사용해선 안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낙태 경험자 중 9.8%가 약물을 이용해 임신중절을 경험할 정도로 빈번한 상황이다. 이중 구입 방법은 지인이나 구매대행을 통한 경우가 22.6%, 온라인을 통해 구매한 경우가 15.3%로 무자격자에 의한 불법적인 낙태약 유통이 만연하다.
 
김재연 회장은 "약물 낙태의 많은 부작용 사례가 약만 타서 복용하거나 불법으로 구매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며 "임신부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약물 처방이 이뤄져야 하지만 임의로 약물을 복용할 경우 사망한 태아가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해 패혈증 등이 올 수 있고 심한 경우 임신부가 사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최근에 인터넷을 통한 무분별한 낙태약 오남용 사례도 만연하다. 그러나 관계기관의 단속은 전혀 없어 대책이 필요하다"며 "의료계의 의견이 반영된 법률 개정안이 가장 합리적인 법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낙태 시술 의료기관을 미리 정부에서 지정·허가 제도로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순철 교수는 "낙태 시술이 이뤄지려면 의사의 낙태 거부권도 보장돼야 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낙태를 할 수 있는 의료기관만 따로 신청을 받는 것이다. 캐나다 등 해외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시술이 진행된다"며 "허가 규정 둬 무분별한 낙태 시술을 막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최영준 출산정책과장은 "정부도 헌재 판결 취지에 따라 형법과 보자보건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황이다. 낙태 허용 사유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하고 낙태 관련 교육과 상담 수가도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최 과장은 "의사의 설명 의무와 진료 거부 등 내용도 법안에 포함됐고 약물 낙태는 산모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며 "하루 빨리 국회에 발의돼 있는 개정안 논의가 시작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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