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7.08 07:17최종 업데이트 26.07.08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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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과실도 형사법정으로”…의료사고 형사고소 남발에 필수의료 멍든다

무죄·파기환송 63.6%인데도 형사기소 남발…“수년간 피고인 신분, 의료진에겐 이미 처벌”

연구진 “형사절차 진입 자체가 의료진에겐 고통…단순 과실 비범죄화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국내에서 의료 관련 형사소송이 최종적으로 무죄가 선고되는 사건이 6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그 이유중 하나가 단순 과실까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폭넓게 형사절차에 올리는 현행 구조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은 형사고소가 제기되는 순간부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의료진이 겪는 경제적·심리적 부담 자체가 이미 ‘처벌’인 만큼 의료행위의 특수성과 임상적 불확실성을 고려해 단순 과실은 비범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이정현·박준원 학생, 산부인과학교실 박준철 교수, 법의학교실 김동자 부교수는 최근 한국의료윤리학회지에 게재한 ‘산부인과 형사소송의 의료행위 관련 판례 분석’ 논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연구진은 대한민국 법원 사법정보공개포털에서 산부인과 의료행위와 직접 관련된 형사소송 판례 22건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 판례 22건 중 의료과실, 즉 업무상과실치사상 관련 판례는 16건으로 전체의 72.7%를 차지했다. 생명윤리 및 낙태 관련 형사책임 판례는 6건(27.3%)이었다.

전체 판례의 최종 결과를 보면 유죄 판결은 8건(36.4%)이었고, 무죄 또는 파기환송을 통해 사실상 무죄 취지로 확정된 판례는 14건(63.6%)이었다. 연구진은 법원이 결과 악화만을 근거로 의료진을 처벌하기보다 당시 의료 수준, 진료지침 준수 여부, 임상적 재량권, 인과관계 입증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판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연구진은 양수색전증, 이완성 자궁출혈, 폐혈전색전증 등 예측이 어렵고 급속히 악화되는 산과적 응급상황에서 의료진이 표준적 처치와 당시 가능한 조치를 이행했다면 법원이 질환 자체의 불가항력성과 임상적 재량을 인정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무죄 나와도 수년간 피고인…“형사절차 진입 자체가 의료진에겐 고통”

그러나 연구진은 의료진이 체감하는 위협은 최종 유죄 판결 여부보다 형사소송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발생한다고 봤다. 단순 과실이나 불가항력적 악결과까지 형사절차로 쉽게 진입하는 낮은 문턱 자체가 의료진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해외 주요국은 의료과오 사건을 주로 민사나 행정 절차로 해결하고, 형사처벌은 ‘중대한 일탈’이나 ‘중대한 비난 가능성’이 인정되는 제한적 상황에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한국은 단순 과실에 대해서도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폭넓게 적용하고 있어, 의료진이 형사절차에 노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현장의 의료진이 위협을 느끼는 것은 형사소송의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라며 “형사소송의 개시는 그 자체로 극심한 심리적 압박과 명예 훼손, 진료권 위축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동안 의료진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고, 방어 진료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고위험 분만 회피, 전공 기피, 필수의료 인프라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우리나라가 단순 과실에 대해서도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폭넓게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봤다. 미국의 경우 단순 과실은 주로 민사책임 영역으로 다루고, 형사책임은 타인의 안전을 완전히 도외시하거나 정당화할 수 없는 위험을 의식적으로 경시한 경우 등 중대한 위험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예견 가능성이 인정되면 의료 수준상 회피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야 제한적으로 과실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형사책임이 논의되고 있어, 의료진 입장에서는 단순한 진료상 판단 오류까지 형사절차로 비화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게 된다고 봤다.

“중과실은 엄격한 예외로”…고소·고발 단계 사전 조사 필요

이에 따라 연구진은 의료 형사소송 남발을 막기 위해 단순히 중과실 기준을 더 구체화하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중과실은 엄격한 예외로 해석하고, 단순 과실은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제도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연구진은 “의료 형사소송 남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중과실 기준을 구체화해 적용하기보다 중과실의 엄격한 예외적 해석을 원칙으로 삼아 단순 과실의 비범죄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환자 측 고소·고발이 제기됐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강제수사와 형사절차가 진행되는 구조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사기관이 강제수사에 착수하기 전 기초자료를 충분히 수집하고, 의료사고의 특수성을 검토하는 사전 조사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양수색전증처럼 예측과 회피가 어려운 불가항력적 응급상황에 대해서는 의료인의 형사책임을 면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료진 개인의 형사책임을 먼저 따지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어렵다는 취지다.

연구진은 환자안전사건을 곧바로 의료분쟁과 형사책임의 언어로 전환하는 구조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안전사건은 처벌보다 조기 보고와 학습의 대상으로 다뤄야 하며, 이를 위해 비처벌적 보고체계, 공적 보상, 독립 조사, 조사와 처벌의 분리 등 환자안전 중심 체계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형사책임 제한은 이러한 체계를 보완하는 예외적 장치가 돼야 한다”며 “단순 과실의 형사처벌 구조를 유지한 채 의료진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는 필수의료 위축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의료형사소송 # 의료소송 # 의료사고 # 형사처벌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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