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최근 사직 전공의들의 요구를 반영해 정부가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의사추계위)를 개최하면서 인력 수급 추계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의사추계위의 구조를 보니 애당초 전공의, 의사단체가 바라고 꿈꾸었던 선진화되고 독립적이며, 합리적 논의가 가능한 기구는 아닌 것으로 보여 매우 우려스럽다.
먼저 위원회 형태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의 하부기구로 출범했다. 보정심의 구조는 전체 25인의 위원 중 위원장은 장관이 맡고 기획재정부, 교육부 등 차관급 정부위원 7인과 수요자 대표 6인, 공급자 대표 6인, 그리고 전문가 5인으로 구성해 최종 의대 정원은 마음만 먹으면 ‘정부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는 구조로 파악된다.
'수급 추계'라는 과정이 언뜻 과학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수급 추계를 위한 변수·모형·가정·방법 등 추정 수치 입력 방법에 따라 의사 인력의 추정치도 얼마든지 큰 폭으로 변할 수 있다. 여기에 국무총리실 산하의 보건사회연구원이 연구 실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돼 있어 과연 중립적인 연구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앞선다.
언뜻 보면 공정한 틀, 자세히 보면 정부 기관이 연구 실무 공정성 우려
의사추계위는 모두 15명의 위원으로, 대한의사협회 등 공급자단체 추천 위원이 8명을 차지해 그동안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의대 증원을 반대해 온 의료계 추천이 절반을 넘는다. 비 의료계 추천위원들은 의료계 위원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다는 이유로 우려를 표명했다.
그렇지만 정작 의료계는 8명 중 실제 의료 현장에 몸을 담고 있는 위원은 단 한 명의 이비인후과 전공과목의 교수이고, 나머지 7명은 예방의학이나 공중보건 전문가들이어서 공급자단체 위원의 취지와는 부합되지 않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즉, 7명의 위원은 비록 의료계 추천이나 실제 임상경험이 없어 의료 현장의 실정이 잘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염려에서다.
지난 정부의 무리한 증원 정책이 처참할 정도로 실패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객관적·과학적 근거와 정책 결정의 합리적 절차를 철저히 무시했기 때문이다. 답답한 전공의들과 미래세대의 의과대학생들은 선진화되고 민주적인 의사추계위를 주문했는데, 결국 돌아온 것은 도로 관변 단체 성격의 답답한 강한 구조가 됐다.
의사추계위 1차 회의 회의록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의사추계위의 1차 회의는 상견례와 더불어 원래 예상됐던 위원회의 모임 목적과 구조를 정의하는 참조 조건(Terms of Reference)을 정하는 회의로 기대했는데, 이런 이야기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참조 조건’이라는 문구는 종종 전문위원, 자문위원에게 할당된 업무를 지칭한다. 참조 조건은 위원회에 대한 기대치를 명확히 하고, 과업 범위를 명료화, 과업 진행 방식의 구체적인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는 위원회가 목표 달성에 집중하면서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함이다.
의사추계위의 목적은 의사 추계를 한다고 막연히 기술하기 보다는 우리나라의 의료제도(체계)의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정하고 이에 따른 의사인력 추계에 관한 세부적인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단계별 추진 일정도 당연히 포함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과업 범위를 정의하고 포함해야 할 것과 제외할 사항도 명확히 적시할 필요가 있다. 참여하는 위원의 역할과 책임도 명시한다.
과업 수행의 투명성 합리성 담보하려면 ‘참조 조건’을 명확히 해야
회의 결과에 대한 회의록, 녹취록, 공유자료와 최종 보고서 채택과 공개의 방침을 분명히 설정하고 방법도 제시해야 한다. 위원회의 의사 결정 방식 및 진행 상황 추적 방식도 기술해야 한다. 필요하면 단기, 중기, 장기 과제의 기간도 명시돼야 한다.
위원회의 주요 이해 관계자인 한국보건사회연구연,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등도 식별하고 이들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수급추계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금, 인력, 장비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의사추계위원회는 내, 외부 소통에 관한 방식을 정하여 과업 수행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촉진하고 모든 관련 당사자 간의 명확한 소통도 원활하게 해서 과업의 진행 상황과 변경 사항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통상적인 참조 기준을 염두에 둔다면 의사추계위에서 다음 회의에서 이런 점을 명확히 하고 회의록를 신속히 공개하기를 기대해 본다. 국민만을 바라보고 정책 결정을 한다는 고위 공무원 주장대로라면 국민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 위한 투명성과 합리성은 반드시 담보돼야 한다. 의사추계위는 결국 정부 정책의 합리성과 투명성, 그리고 민주적 의사 결정에 대한 갈증에 의한 것인데, 현재의 의사추계위의 기능과 구조에 우려할 만한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것을 어떻게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잘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도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선진국의 의사추계위에 해당되는 기관의 구성은 임상의사가 다수를 차지한다. 현대적인 의사인력 추계방법을 이해하고 토론할 수 있는 전문성과 실제 의료 현장에 대한 의견 반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존재하는 추계 방법론의 대부분은 공공의료가 기반인 나라에서 고안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의료와는 사뭇 그 체계가 다르다. 주치의 제도, 의료전달체계, 사회보험제도 혹은 조세 바탕 의료 등 우리나라와 의료환경이 다른 나라에서 고안된 의사추계 방법이 우리나라 고유의 의료체계와 부합 할 리 없어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의사추계위원회는 기존의 의사 추계 방법론과는 분명 차별성을 둬야 한다.
1차 회의서 불복 시 ‘제재’ 언급, 정무적 판단이 지배할 가능성 커
의사 추계가 중요하게 된 것은 1960년대 이후로 의료가 국가 단위로 조직화되고 제도로 정착되고 국민의 기본권으로 정착된 ‘조직 의료’의 산물이다. 국제적으로 1960~70년대는 의사 인력의 증원이 추세였다면, 1980~90년대는 의료비 절감을 위한 의사 인력의 축소로 방향이 바뀌었다. 2000년대 축소에 의한 후유증으로 다시 의사 인력의 증원 방향으로 틀어졌다. 실제로 정확하게 예측한 의사 추계는 역사적으로도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그 이유는 ‘추계 효과’는 빨라야 10년 아니면, 통상 15년 뒤에나 추계 시점과는 다른 시점의 또 다른 의료환경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의사 추계의 제한점에도 불구하고 1차 회의부터 의사추계위의 최종 결정에 불복할 경우 ‘제재(penalty)’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고 한다. 의사추계자료가 시금석(gold standard)의 위치에 있지 않는 추정치에 의한 자료인데, 위원회 결정을 따르지 않을 경우에 대한 처벌을 논한다는 것이 소름이 돋도록 흥미롭다. 수가 협상에서도 유사한 제재 조항이 있어 그런지, 이번 의사추계위에서 논의 제기의 배경이 자못 궁금하다.
어차피 의사 인력에 대한 최종 결정은 의사추계위원회가 아닌 보정심의 몫인데 합리적 정책보다는 표심용 정무적 판단이 우선할 것이라는 합리적 회의론이 벌써부터 짙은 먹구름처럼 의료계를 떠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