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12.31 20:18최종 업데이트 22.01.03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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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해 여름 '파업' 겪은 의대생들, 의료계 희망을 쓰는 중

'국민 5000만명 vs 의사 10만명', 정치권과 정부가 의료현장 전문가 외면해도 변화를 위해 노력하길

사진=2020년 7월 젊은의사 단체행동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2021년 2월 말 이화의대 본과4학년 노현서 학생(현 전공의)을 인턴기자로 만났습니다. 의사로서의 인생 1년을 포기할 각오로 의사국시 실기시험을 뒤로 미뤄가면서까지 목소리를 내며 공공의대 설립과 의사정원 증원을 반대했던 주인공 중 하나입니다. 

무사히 후기 실기시험을 마치고 난 다음 만난 노현서 기자는 당시를 떠올리며 그 순간 방황했지만 같은 본4끼리 올바른 의료를 위해 하나가 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위로했다고 합니다. 300여명의 단톡방에서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침 대한의사협회장 선거운동 기간이라 후보자들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은 의협 회장 선거에 대체로 무관심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최대집 전 의협회장이 서명을 했던 날처럼 의협이 정부의 공식적인 ‘카운터파트너’ 역할을 하는 만큼 중요한 선거라는 사실을 주위에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노 기자는 후보자들을 진지하게 탐색하며 본4가 발 빠르게 대응하면 의협회장 선거권을 가질 수 있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후보자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기사로도 담고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질의도 했습니다. 이제는 근무에 치이는 전공의 신분이지만, 그럼에도 언제든 의협과 의료정책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7~8월 전국의사 총파업이 1년이 지나 잊힐 때쯤에 만난 의대생 인턴기자들도 남달랐습니다. 의대가 외부기관에 단기 교육을 의뢰하는 서브인턴십과 전혀 관계없이 스스로 시간을 할애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메디컬 매버릭스'라는 의대생 단체 추천이 있기도 했지만, 유독 눈빛이 빛나는 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인턴기자들과 함께 그들의 선배 의사이자 명사들을 초청해 온라인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강연도 마련했습니다. 의사 출신 신현영 의원과 간담회를 하면서 바람직한 의사상에 대한 토론도 했습니다. ‘하지마라 외과의사’를 펴낸 저자 엄윤 원장과 독서토론을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선배 의사들은 대체로 대한민국 의료에는 희망이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국민 5000만명 vs 의사 10만명'이니, 의사들이 의료현장의 전문가라고 외쳐도 정치권과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의사들이 희생되는 의료정책이 나올 수밖에요. 의료기관 CCTV 설치 의무화법에 이어 간호단독법, 의료인 면허취소법 등 왜 이리 의사들에게 불리한 법안은 많은지요. 그러다 보니 앞으로 의료정책은 의사들에게 더욱 불리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의대생들은 선배의사들에게, 그리고 나서도 기자에게도 묻고 또 물었습니다. “의료계에는 이렇게 희망이 없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대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나요?”

고려의대 예과 1학년(2020년 타의대 1학년) 최지민 인턴기자는 결국 지역구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에게 편지를 쓰고 이 편지를 직접 읽은 김 의원과 면담을 하고 왔습니다. CCTV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외과 지원자가 턱없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은 예과 1학년 학생도 심각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2년 뒤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제정될 때까지 의료계의 우려점을 잘 반영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최 기자는 지속적으로 의료정책에 관심을 가지며 "그냥 그런 의대생이 되진 않겠다. 꼭 달라진 의사가 돼서 나타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순천향의대 본과 2학년 박유진 인턴기자는 이렇게 냉정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의사가 환자의 죽음 앞에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궁금해했습니다.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책을 쓰신 서울의대 허대석 교수께 특별히 인터뷰를 부탁드렸습니다. 아직 실습을 다 돌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 그리고 연명의료의 실상을 궁금해한 의대생은 처음이었습니다. 십수년 경력의 기자의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박 기자는 의대생신문 기자로도 자처해 이번호 의대생신문 1면을 작성한 주인공입니다. 

의대생들 하나하나 모두 수재들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어리지 않습니다. 생각이 짧지도 않습니다. 의대라는 곳에 들어가는 순간 예비 의사로의 길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2020년 뜨거운 여름, 학업을 잠깐 놓을 정도로 파업을 겪으며 그 생각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그리고 학교 안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무엇이든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 하고, 병원 너머의 세상을 끊임없이 탐색합니다. 공부만 하느라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지내는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세상에서 무엇이 현명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명감만으로 병원에 남거나, 진로를 선택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력이 되는 선에서 약간의 의대생들을 만났고 이번 겨울방학 때 또 몇 명의 의대생을 인턴기자로 만날 예정입니다. 그들에게 미약하게나마 이렇게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 이 자리에서 희망적인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바람을 담아봅니다. 

"의대생 여러분들이 의료계의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여러분들이 스스로 지금부터 변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10년 뒤, 20년 뒤에는 의료현장의 전문가가 인정받고 의료계가 처한 상황도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임솔 기자 (sim@medigatenews.com)의료계 주요 이슈 제보/문의는 카톡 solplus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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