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추계위원은 "상대는 정치적, 전략적 이해관계를 모두 고려해 회의에 임하는데 공급자단체 위원들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다른 추계위 관계자는 "어쩔 수 없이 추계위는 정치적인 부분이 포함돼 있다. 이런 부분에 적절히 대처했는지 의문이다. 위원만 추천하고 끝이 아니라 추천 단체가 위원과 회의 논의 과정을 상의하고 흐름을 계속 파악해 전략적으로 대처했어야 한다"고 질책했다.
이 관계자는 "한 공급자단체 위원은 마지막엔 오히려 반대편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안다. 이는 최종 표결에 있어 의료계 측에 큰 실책"이라고 전했다.
추계위에 현장 전문가인 '임상의사' 추천 못하는 구조 고쳐야
다만 이 같은 문제가 전략적 실패이기에 앞서 의료 현장을 잘 아는 '진짜 의료 전문가'를 위원으로 추천하기 어려운 구조적 병폐에서 기인한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의료정책 관련 여러 맥락을 이해하고 의료계 내부 사정에 능통한 위원을 추천하려면 실제 진료를 하는 임상의사들이 위원으로 포함돼야 하지만 법률상 한계점이 명확하다는 취지다.
실제 의료 현장을 경험한 임상의사가 추계위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돼 왔다.
보건의료기본법 제23조의2 추계위원 자격 요건을 살펴보면 추계위원은 ▲경제학·보건학·통계학·인구학 등 수급추계 관련 분야를 전공한 사람 ▲인력정책 또는 인력수급추계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 및 연구실적이 풍부한 사람 ▲대학의 조교수 이상이거나 연구기관의 연구위원 이상 또는 이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 규정돼 있다.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 위원 명단.
문제는 해당 자격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임상 의사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 추계위에 참여한 임상의사는 15명 중 1명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공급자단체 추천 위원을 살펴보면 8명 중 실제 의료 현장에 몸을 담고 있는 위원은 단 한 명의 이비인후과 전공과목의 교수이고, 나머지 7명은 예방의학이나 공중보건, 사회학 전문가다.
의료계 관계자는 "1명을 제외한 대다수의 추계위원들은 의료 임상 현장을 전혀 경험한 적이 없는 이들로 구성됐다. 다른 나라 의사 추계위원회 사례를 보면 임상 의사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의료정책연구원 안덕선 원장은 본지 기고에서 "8명 위원 중 7명의 위원은 비록 의료계 추천이나 실제 임상경험이 없어 의료 현장의 실정이 잘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공급자단체 위원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회의에 참여했던 추계위원도 "의료계 내부 사정과 그동안의 의정갈등 히스토리, 여러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있는 인사가 들어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단기간 1000명 이상 대규모 증원 보단 '소규모 장기' 증원 가능성
한편 추계위가 제시한 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역시 의료계 최대 관심사다.
보정심은 오는 6일 2차 회의를 시작으로 대략 한 달 동안 매주 회의를 열어 설 연휴 전까지 2027학년도 의대증원 규모를 확정할 계획이다.
우선 증원 방식은 단기간 1000명 이상 대규모 증원 보단 '소규모 장기' 증원 방식이 유력하다. 소규모 인원을 오랜 기간에 걸쳐 늘려야 의대 교육의 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보정심은 지난 1차회의에서 의대 교육 여건을 고려해 정원 규모와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증원분은 10년간 매년 570명(최소 부족 규모 기준)에서 15년간 740명(최대 부족 규모 기준) 사이가 거론된다.
또한 보정심이 추계위가 제시한 2040년 의사 부족 분 5704명∼1만1136명에서 최대치 대비 의사 증원 규모를 일부 줄일 가능성도 점칠 수 있다.
보정심은 인공지능(AI) 등 보건의료 기술 발전, 근무환경 변화 등 미래 의료환경 변화를 고려해 의사 수 양성규모를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즉 의협이 그동안 AI 기술 발전 등으로 인한 의사 생산량 증가를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미래 의사 수 부족 규모가 줄어들 수 있는 셈이다.
특히 정부는 지난 의정사태 당시 극단으로 치닫았던 의료계와의 갈등을 고려할 때 의료계 반발을 줄이고 정책 수용성을 높일 필요성이 있다. 관련해 복지부 정은경 장관은 지난 1차 보정심 회의에서 "의대증원과 관련해 전 정부의 과오를 꼭 고칠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 김성근 대변인은 "보정심의 2027학년도 이후 의사인력 양성 규모 심의 기준을 보면 그동안 의협에서 꾸준히 주장했던 내용들을 정부가 꽤 많이 고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달 동안 보정심에서 (우리가 주장하는 바를) 반영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