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항체약물접합체(ADC)와 같은 신약 연구가 국내에서도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미국에서 초기 개발이 이뤄진다. 국내 제약사가 ADC 전문 미국 CRO에 과제를 위탁하면, 해당 CRO가 다시 역으로 국내 CRO에 과제를 위탁하는 형태로 임상이 진행되기도 한다. 따라서 한국과 미국의 두 국가에서 임상이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러한 임상시험에서는 국내 CRO는 독립적으로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능력을 키우기 쉽지 않다. 더욱이 ADC와 같은 물질은 1상 완료 후 바로 라이선싱 아웃(licensing-out)되므로, 그 이후에는 국내 CRO에 주어지는 기회가 없다고 봐야 한다.
국내 스폰서가 국내 CRO에게 임상시험을 위탁할 수 없다는 것은 스폰서가 임상시험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상태에서 외자 CRO에 위탁하면 결국 국내 제약업계는 외자 CRO에 종속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종속 상태를 벗어나려면 국내 CRO와 협업하면서 글로벌 임상시험을 수행하기 시작해야 한다.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 또는 혁신 신약을 개발하는 경우, 관련 미국 전문가들이 풍부하므로 국내 CRO는 그 전문가들을 고용해 협업하면 된다. 혁신 신약이라 할지라도 국내 CRO가 임상을 맡게 되면 더욱 신속하고 신뢰성 있게 진행할 수 있다.
LSK는 초창기부터 품질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항상 검증된 시스템만을 사용해 왔다. 현재 미국에서도 FDA나 관련 기관에서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컴퓨터 시스템의 유효성 검증(validation) 여부다. LSK는 국내 최초로 미국에서 검증된 DMSys(Data Management System, 데이터 관리 시스템)를 2002년 도입했고, EDC(Electronic Data Capture) 역시 2009~2010년경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국내 CRO 중 유일하게 미국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post-immuno-oncology study을 수주한 경험이 있다.
또 다른 사례로는 글로벌 CRO를 관리하며 글로벌 항암제 3상 임상시험을 풀서비스로 수주받아 성공적으로 완료한 경험이 있다. 미국, 일본, 대만, 유럽, 한국 등 12개국 98개 사이트에서 대규모 글로벌 임상을 진행했다. 더불어 유한양행의 렉라자 글로벌 임상에서 2상과 3상 임상시험의 데이터 관리를 전담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라이선싱 아웃 시, 국내 임상 데이터를 관리했으며, 해당 데이터가 검증을 통과해 비즈니스 성과로 연결된 적도 있다.
검증된 시스템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스템뿐만 아니라 인력도 검증돼야 한다.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CRO와 경쟁이 가능하며, 실제로 경쟁에서 과제를 수주한 경험도 있다. 또한 통계 분석은 임상시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데, 이 기초를 뒷받침할 수 있는 통계 인력 규모에 있어서도 LSK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해외 박사를 포함한 통계학 박사 인력이 다른 어느 기관보다도 많다. 따라서 LSK는 임상시험의 기반이 매우 견고한 회사라 말할 수 있으며, 이것이 LSK만의 큰 강점이자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
Q. 임상시험 트렌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올해 리서치 씽크 탱크(Research Think Tank)를 출범했다고 들었다. 리서치 씽크 탱크의 주요 역할과 기대 효과는 무엇인가?
임상시험의 역사를 살펴보면 1747년 영국 해군 군의관 제임스 린드(James Lind)가 HMS 살리스버리호에서 수행한 괴혈병 임상시험이 시초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과학적 임상시험'의 시작은 1948년 영국의 통계학자 브래드포드 힐(Bradford Hill) 경이 진행한 폐결핵 항생제 스트렙토마이신(streptomycin) 임상시험이라 할 수 있다. 이 임상시험은 대조군, 치료군, 무작위 배정을 시행하고, 의사들에 의한 선택 편향(selection bias)을 제거하는 등, 최초의 '적절하고 잘 통제된 임상시험(Adequate and well-controlled clinical trial)'으로 인정받았다.
이 사례를 계기로 통계학이 임상시험의 핵심 기반이 됐고, 미국은 1962년 약사법을 개정해 약물 승인 시 이러한 방식의 임상시험을 의무적으로 요구하게 됐다. 즉, '통계학이 임상시험의 기본'이라는 원칙이 미국 약사법에 명시돼 있다. 통계를 뒷받침하는 것은 '고품질의 데이터 관리(high quality data management)'다. 따라서 LSK는 데이터 관리(DM)/통계(STAT)에 많은 투자를 해왔고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LSK에는 'STAT(Statistics) 부서'와 'ARS(Academic Research Service)' 부서가 있으며, 두 부서 모두 통계학자로 구성돼 리서치 씽크 탱크를 태스크포스(Task Force)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리서치 씽크 탱크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거나, 미국 항암 임상 등에 적용되는 최신 기술들을 신속하게 국내에 도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때로는 자체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도 한다. 리서치 씽크 탱크에는 미국 및 국내에서 수학한 통계학 박사들이 포진해 있으며, 전반적으로 학문적인 성격을 띠지만, 실제 임상 실무와 연결된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 또는 태스크포스로 이해하면 된다.
몇 해 전, 국내에서 소아 백신 개발로 어려움을 겪었던 사례가 있다. 소아 백신은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대부분 멕시코, 필리핀, 태국 등 해외에서 임상을 진행한다. 해외에서 200명을 대상으로 소아 백신 임상을 진행한다고 가정했을 때, 식약처는 반드시 한국 소아도 임상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한다. 이 백신이 한국의 유아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소아가 많이 포함되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의 소아를 참여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LSK는 식약처의 요청을 받고 한국 소아를 최소 몇 명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연구를 수행했다. 이후 국내에서 소아 백신 임상을 진행할 때 LSK가 개발한 연구 방법이 일종의 기준이 됐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곳이 리서치 씽크 탱크다.
CRO 선택시 기술적으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먼저 논의한 뒤 그에 맞게 예산 조정해야
Q. 바이오 기업들이 CRO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 글로벌 제약사 프로젝트를 수주했을 때 제약사 측 PM 3~4 명이 한국에 방문했고, LSK는 해당 과제에 대한 연구 제안서(study proposal)를 대면 발표했다. 경쟁 CRO 역시 같은 방식으로 제안서를 제출했으며, 당사가 선정됐다. 이어 예산 협상을 진행했는데, 글로벌 제약사 예산 제안서(budget proposal) 포맷이 매우 상세했다. 그 포맷에 맞춰 세세하게 작성했고, 그쪽은 그 내용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일부 시간 산정이 잘못됐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상호 협의하며 예산을 조율해 나갔다.
이처럼 기술 제안서(technical proposal)가 선정의 기준이 돼야 하며, 예산은 협상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기술력보다는 CRO에 어떤 PM, CRA를 배정하는지, 그리고 예산 규모 등의 요소만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이러한 방식과 상이하다. 그들은 CRO의 접근 방식을 면밀히 평가하며, 예산은 어느 정도 예상 범위를 인지하고 있기에 그 범위 안에서 조율하면 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 국내의 한 대형 제약사가 미국 임상을 추진하고자 견적서를 요청해 왔다. 당사는 성실히 작성해 미국 파트너와 함께 제출했지만 결국 탈락했다. 제안한 예산이 너무 낮아서 LSK가 임상시험을 잘 이해를 못 하고 기술력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한 번 더 상의했더라면 그런 의문은 불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LSK는 이미 동일한 임상시험을 국내와 해외에서 수행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해당 국내 제약사는 미국에서 임상시험 비용이 어느 정도 드는지도 몰랐고 어떤 기술력이 요구되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비싸고 규모가 큰 미국 CRO에 위탁한 것이다. 그 임상시험은 미국에서 실패했다는 것이 몇 년 후 국내 언론에 보도됐다. 국내 제약사는 대부분 선진국 임상시험 경험이 없거나 있어도 제한적이다. LSK는 200여 개의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 임상시험을 경험했고 국내 제약사들 가운데 LSK만큼 해외 임상시험을 경험한 회사는 많지 않다.
다른 사례로, LSK가 20억 원 수준으로 예산을 제안했는데, 다른 회사는 7억 원에 제안해 프로젝트를 수주해 간 적이 있었다. 예산 산정 시 새로운 기술을 활용할 경우, 상대측은 해당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 당사는 꼼꼼히 분석하고 학습해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다른 회사는 대략적으로 예산을 낮춰서 제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사는 3억 원을 산정했는데, 다른 회사는 동일한 항목에 대해 1000만 원만 책정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스폰서와 CRO가 기술적으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먼저 충분히 논의한 뒤, 그에 맞게 예산을 조정해야 한다. 예산이 한정돼 있다면, 그 범위 내에서 어떤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설계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기술을 고려하지 않고, 예산만을 비교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LSK는 구제(rescue) 임상시험 경험이 비교적 많다. 역량이 되지 않는 CRO에 위탁했다가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임상시험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LSK에 다시 구제를 의뢰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국내 진출한 외자 CRO 지사에 위탁했으나 문제가 돼 LSK와 의논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국내 제약사는 임상시험 경험이 취약하고 LSK는 1700건 이상의 과제를 진행했고 200여 개의 다국가 임상시험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이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을 뿐 아니라 제약산업계 전반에 커다란 재산이라고 보는 시각이 필요할 것 같다.
Q. 한국의 CRO 산업이 해외 시장에서 더욱 신뢰받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산업적 측면의 개선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의 CRO 산업이 해외 시장에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국내 스폰서가 먼저 국내 CRO를 신뢰해야 한다. 국내 스폰서가 해외 과제를 국내 CRO에게 위탁하지 않는다면, 국내 CRO는 해외 시장에서 신뢰를 확보할 수 없다. CRO는 '공급(supply)'의 영역이며, 공급은 본질적으로 수요(demand)가 존재해야 발생한다. 임상시험 또한 이러한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른다. 스폰서가 위탁을 하지 않으면 CRO는 존재할 수 없다.
2009년 말경 LSK가 '메디데이터 레이브(Medidata Rave)' 도입을 결정했다. 당시 LSK는 상당한 규모의 DM 인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경험 많은 직원들도 다수였다. 20명의 DM 직원을 대상으로 1년간 당시 20만 달러를 투입해 교육을 진행했다. 이는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된 사례였으며, 15년 전의 20만 달러는 LSK로서는 큰 투자였다. 현재는 국내에 EDC(Electronic Data Capture, 전자자료 수집) 전문가인 프로그래머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들 대부분 LSK에서 교육받은 20명, 혹은 그들의 제자들이다. 이제는 메디데이터 레이브가 국내에서 널리 사용되는 EDC가 됐고, 특히 해외에서 진행하는 임상시험에는 필수가 됐다. 이는 LSK로서는 매우 힘들고 큰 투자였다.
미국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스템을 도입했다. 2003년, GSK가 당시 글로벌 CRO 퀸타일즈(Quintile)에 'EDC를 도입하면 모든 과제를 위탁하겠다'고 제안했다. 그 후 몇 년간 이 글로벌 제약사는 모든 DM 과제를 퀸타일즈에 맡겼고, 자체 인력을 훈련시켜 시스템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임상시험 전문가들이 제약사에서 경험을 쌓고 CRO로 이직하는 흐름이 일반적이며, CRO에서 제약사로 이직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반면, 한국은 정반대 상황이다. 현재 제약사에서 근무하는 있는 데이터 매니저, 통계 전문가들, CRA들, 역학연구원들은 대부분 CRO에서 훈련받은 인력이다. 제약사가 임상시험 발전에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임상시험 최종책임자는 스폰서지 CRO가 아니다. 그런데 스폰서가 임상시험의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1982년경 화이자(Pfizer)는 글로벌 임상을 기획하던 중,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였던 데니스 길링스(Dennis Gillings)에게 통계 컨설팅을 자주 의뢰했다. 당시 화이자는 길링스 교수에게 '우리 글로벌 임상의 데이터 매니지먼트를 담당해 줄 수 있겠냐'고 제안했고, 길링스 교수는 이를 수락했다. 이후 UNC 캠퍼스 한편에 작은 사무실을 마련해 시작한 것이 바로 아이큐비아의 전신인 퀸타일즈다. 결국 과제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구조에서 CRO가 시작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CRO가 먼저 설립되는 구조가 아니라, 스폰서가 먼저 CRO에 먼저 접근해 과제를 시작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한국은 CRO가 먼저 존재하고, 스폰서에게 직접 과제를 요청해 수주해 오는 구조였다. 따라서 한국 CRO 산업의 해외 시장에서 더욱 신뢰받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산업적 개선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국내 스폰서가 국내 CRO를 신뢰하고 과제를 주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다른 방법은 없다. 과제가 있어야 CRO가 생기는 것이지, CRO가 먼저 생기고 과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수요가 먼저 있고, 그 수요를 따라가는 것이 CRO다.
5년, 10년 후 미래 스폰서가 방향을 미리 제시해야…CRO는 이제 맞춰 함께 개척
Q. 중장기적으로 향후 국내 CRO 산업이 나아갈 방향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그 안에서 LSK의 포지셔닝 전략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LSK는 향후 5년간의 산업 변화에 대한 방향성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LSK는 국내에서 최초로 PM 제도와 유효성이 검증된 DM 소프트웨어를 도입했다. 또한 QA(Quality Assurance, 품질보증)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구축했고, 2005년에는 국내에서 QA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다. SSU(Study Start Up, 임상시험 초기단계) 팀 체계를 2008년에 처음 도입했으며, EDC 시스템 역시 국내 최초로 시작했다. 약물감시(Pharmacovigilance) 시스템은 2003년에 시작했으며, CDISC(Clinical Data Interchange Standards Consortium, 국제 임상데이터 표준)는 2009~2010년경 도입해 현재까지 활용하고 있다. 효율적인 임상시험 관리를 위해 CTMS(Clinical Trial Management System, 임상시험 관리 시스템)를 2016년에 본격적으로 도입했으며, ARS(Academic Research Service)는 몇 년 전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시스템과 기술들을 지속적으로 개발 및 도입해 왔으나, 문제는 수요 측면에 있다. 현재 CTMS 시스템뿐만 아니라 임상시험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소프트웨어인 '스팟파이어(Spotfire)'도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스팟파이어는 해외에서는 활발히 사용되고 있지만, 국내 스폰서들은 아직 이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RWD(Real World Data, 실제 임상 자료)와 RWE(Real World Evidence, 실제 임상 근거) 분야에 상당한 투자를 진행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추진된 '21세기 치료법(21st Century Cures Act)' 정책에서 강조된 CoA(Clinical Outcome Assessment, 임상 결과 평가), PRO(Patient-Reported Outcomes, 환자 보고 결과) 등은, 한국이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도입해야 할 요소들이다. 이미 미국 등 선진국과 중국에서도 분산형 임상시험(Decentralized Clinical Trials, DCT)이나 디지털 임상시험(Digital Clinical Trials)과 같은 신기술들이 실제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투자가 수반되며, 실제로 LSK 역시 많은 투자를 진행해 왔다. CRO는 '서비스 제공자(service provider)'다. 수요가 있어야 투자할 수 있다. 문제는 수요가 없다는 것이다. 스폰서들이 CRO에 이와 같은 첨단 기술에 투자할 만큼의 충분한 수익을 보장하지도 않고 수요도 없다.
CRO가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면, 인력을 훈련시켜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CRO들이 과연 국내 임상시험 인력 양성을 위해 단 한 명에게라도 교육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러한 부분 역시 막대한 비용과 투자가 수반된다. 결국 CRO 산업이 향후 5년 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논의하려면, 그 질문은 스폰서에게 향해야 한다. 스폰서가 '국내 CRO가 이러한 기술을 도입하고 개발해야 하며, 이에 대한 투자 의향도 있다'고 명확히 제시해야만 CRO 또한 비로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LSK가 15년 전 EDC 시스템을 처음 도입할 때 20명을 대상으로 20만 달러를 들여 교육했는데, 당시에는 EDC 하나에 불과했다. 지금은 적용해야 할 시스템이 훨씬 더 많아졌다.
그러나 CRO가 투자해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스폰서가 해당 기술을 활용하지 않으면 결국 CRO는 손실을 입게 된다. 따라서 5년 후든, 10년 후든, 스폰서는 CRO가 나아갈 방향을 미리 제시해야 하며, 그래야만 CRO가 이에 맞춰 대비할 수 있다. CRO는 스폰서로부터 계약을 수주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임상시험의 진행 방향을 CRO가 제시하기보다는, 스폰서가 명확한 방향성을 먼저 제시해줘야 한다. 요즘 'CRO 산업'이라는 용어를 빈번하게 사용하지만, 정부가 아무리 CRO 산업 육성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정작 스폰서들이 CRO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최근 미국 CRO들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Full Service'이고, 다른 하나는 'Functional Service'이다. 이 중 Functional Service의 비중이 매우 큰데, 이는 필요시 CRO가 스폰서에게 해당 인력을 공급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아이큐비아와 같은 글로벌 CRO들 역시 이 기능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Functional Service 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미국 사례를 보면 5년 후쯤에는 국내에서도 Functional Service 가 중요한 요소로 부상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까지 국내 스폰서들이 이 서비스를 활용한 사례가 거의 전무한 만큼, 향후 그 수요가 보장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LSK는 이러한 변화에 대비해 모든 준비를 마쳤다. 5년 후든, 10년 후든, 언제든 준비돼 있다. 결국 문제는 스폰서가 '우리는 이런 기술이나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구체적으로 알려주는가에 달려 있다.
결론적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CRO가 스폰서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스폰서가 CRO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스폰서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오히려 솔직하게 상황을 알리고 협력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CRO 산업이든, 임상시험 산업이든, 더 나아가 제약 산업이든, 가장 중요한 점은 스폰서가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CRO를 진정한 파트너로 인식하며, 함께 방향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임상시험이 종료되면 결과를 알리는 방법이 다양하다. 국내에서는 주로 언론을 통해 결과를 발표하고 전문학회에 가서 발표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전문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문의들은 학술지를 구독하기 때문이다. 국내 임상시험 결과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역시 해외 전문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이다. LSK의 ARS의 업무 중에 하나가 임상시험 결과를 논문으로 작성해 해외 전문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이다. 또 제약사가 축적한 임상시험 데이터를 연구 분석해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 또는 신약 개발의 리드(lead)를 찾는 것이다.
데이터는 한 번 사용하고 소모되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를 연구 분석하면서 숨겨진 가치를 발굴해 데이터의 가치가 증대된다. 국내 AI 기반 바이오 기업 중 하나인 온코크로스(Oncocross)는 JW중외제약과 협업해 약물 재창출(repurposing)을 발표한 바 있다. LSK의 ARS 부서도 이와 같이 데이터에 기반한 기초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연구가 중요한 의학 연구로 인식되고 있으며 ARS본부는 이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국내 CRO 가운데 ARS 기능을 갖춘 CRO는 LSK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ARS본부에서는 그 외에도 기초 통계학 연구, AI, 머신러닝(machine-learning)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향후 5~10년간은 '안전성(safety)'이 더욱 중요한 요소로 부각될 것이다. 케미컬(chemical) 의약품의 안전성은 상당히 알려져 있지만 바이오(biologics) 의약품과 ADC와 같은 융복합 제품(combination product)에 대한 안전성 문제는 아직 미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호 감지(signal detection), AI,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등의 기술은 안전성 연구에 핵심이며, LSK ARS는 이런 연구에도 활발하다.
모든 신약은 긴 역사가 있다. 길게는 몇 십 년 연구 축적된 데이터에서 나오기도 한다. 고셔병의 경우 거의 50년에 걸쳐 연구돼 치료 의약품이 개발됐다. 축적된 데이터를 연구 분석하는 것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고 할 수 있다. 각 기업은 자사에 축적된 데이터를 어떻게 다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데이터는 쌓일수록 새로운 가치, 즉 '보물'이 생겨난다는 관점으로, 자사 데이터의 재활용 방안을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LSK는 스폰서와 협력해 스폰서가 쌓아온 경험과 데이터를 연구 분석해 신약을 만들어 내는 업무를 할 준비가 돼 있다. LSK와 협업한다면, 데이터 관리뿐 아니라 통계 분석 등 여러 측면에서 스폰서의 중요한 파트너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