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7.28 07:08최종 업데이트 23.07.2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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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증원 이슈 정치적 파워게임 산물로 전락...양성 비용은 무려 2조7000억

이대 예방의학과 이선희 교수, 한국 의료 수요·공급 추계모델 단순…기술 다양성 등 환경변화 고려한 추계모형 합의 필요성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필수의료 인력 부족의 해결 방안으로 의사 수 증원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그 근거가 되는 의사인력 추계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당정의 의사 수 증원 주장이 인근 국가들과 달리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추계가 아닌 점에서 의대정원 확대 및 지역의대 신설 등의 주장이 내년도 총선을 앞둔 정치적 캐치프레이즈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이화여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이선희 교수(보건행정학회지 편집위원장)는 최근 보건행정학회지에 이같이 주장했다.

의사증원 이슈 '정치적 파워게임' 산물로 전락…객관성 잃은 정책연구기관 추계결과 '논란'

해외 국가들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의사인력 추계를 통해 오랜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의사인력정책을 접근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수요와 공급 추계모델이 지나치게 단순화 돼 있어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 의사 수 증원 관련 정책은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 이후 한 차례 추진됐다가 의사들의 반대로 일단락됐으나,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바뀐 뒤 코로나19 팬데믹 종식과 함께 재차 추진되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 당시 공공의대와 지역 의과대학 신설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정책이 의대 정원 증원으로 바뀌었으나, 여전히 각 지역구 의원들은 본인 지역구에 의대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번 국회에 발의된 의대신설 관련 법안만 11건이 상정돼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의사 수 증원이 애초 기대하는 정책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의사 수 증원이 필수의료나 필요한 미래수요 전문가로 연계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기전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며 "이는 기존에 공급된 인력분포를 개선시키는 방식으로, 의사 수 증원보다 정책효과는 더 빠르다는 점에서 더 시급하고 선행돼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의사 수 증원 문제가 먼저 어젠다가 되는 순간 지역의 의과대학 신설 경쟁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 그러면서 의사증원 이슈는 정책적 합리성보다는 정치적 파워게임의 산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경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교수는 의사 1명을 양성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전문의 기준으로 8억6700만원이며, 의사인력 양성에 들어가는 연간 총비용이 2조7175억원임을 지적했다.

그는 "의사 수 증원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의사 수 증가가 의료비 증가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비용 증가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중요 정책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며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주요 국가들은 의사인력정책에 대해 오랜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수요와 공급 측의 추계모델들이 지나치게 단순화돼 있어 다양한 변수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술 다양성 등 환경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보니 정책연구기관의 추계결과에 대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6월 27일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의사인력 수급추계 전문가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저마다의 의사인력 수급추계 연구에 대한 각기 다른 결론을 도출해 갈등이 벌어진 바 있다.

당시 고려대 보건대학원 신영석 연구교수는 2021년 '전문과목별 의사인력 수급추계 연구'를 바탕으로 2035년까지 의사 2만7232명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고,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적절한 의료서비스가 전 국민에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의사 수가 최소 7500명에서 9500명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은 우리나라 활동의사 연평균 증가율이 2.84%로 높은 점을 지적하며 현재 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낮은 활동의사 수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가 2047년에는 OECD 국가 평균을 넘어설 것이라고 추계했다.

해외는 변화양상 고려해 시나리오별로 수급 추계…국내 실정에 부합된 추계모형 합의부터

그렇다면 해외 국가들은 어떻게 과학적 방법으로 의사인력을 추계하고 있을까?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서경화 연구원과 이선희 교수가 함께 저술한 '주요 국가 의사인력 수급 추계방법론 비교연구'는 의사인력 수급에 대한 과잉공급과 과잉부족 그리고 공급적정 등 상이한 결론의 연구들로 이해단체 간 이견이 심화되는 문제를 해소하고자 2017년 한국, 일본, 미국, 네덜란드, 호주의 사례를 비교분석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네덜란드가 가장 통합적 접근법에 근접한 방법으로 추계를 실시하고 있었다. 

두 국가는 공급기반 접근법에 활용되는 훈련, 생산성, 기술다양성에 관한 변수들을 활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요기반 접근법에서는 실질수요와 필요에 기반한 잠재수요를 모두 추계하고 있었다. 소득 또는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수준을 비롯해 인구학적 특성과 역학적 특성이나 의료이용량에 관한 변수를 다수 고려하고 있었다. 

네덜란드는 기본적인 추계모형에 일정한 변화양상을 추가함으로써 시나리오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었으며 보다 안정적인 시나리오를 갖췄다. 이처럼 시나리오별 추계결과의 비교를 통해 의사인력 수급이 어떤 변화요소의 영향을 받는지 파악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정책적인수립이 보다 용이해질 뿐 아니라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합리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추계 방법이다.

미국과 호주는 의료개혁에 관한 내용에 기반해 다양하면서도 현실적인 정책상황을 추계분석에 반영하고 있었다. 미국은 오바마케어로 인한 의료환경의 정책 변화를 반영했고, 호주에서는 개혁에 관한 부분을 포함해 이민정책의 영향 등을 고려했다.

또 미국은 공급 추계와 수요추계 모두에서 발생 가능한 상황을 고려해 시나리오를 설정했다. 특히 공급 추계 시나리오는 의학교육에 대한 재정지원, 의사들의 근무시간, 은퇴시기의 변화를 고려해 시나리오를 설정함에 따라 의사인력의 유입부터 유출까지의 일대기 과정에 대한 변화양상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021년 신영석 연구교수가 실시한 '전문과목별 의사인력 수급추계 연구'는 2010~2018년 의료이용량을 이용해 평균증가율, 로지스틱, 로그, 시계열(ARIMA) 모형 등을 사용해 미래 의료 인력을 추계했는데 여전히 시대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시나리오 설정과 투입변수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이에 보고서는 "의사인력 추계과정의 소모적인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전문가와 이해단체가 참여하여 국내 실정에 부합된 추계모형 논의와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투명한 논의와 자료공유를 통해 공감대를 확보해가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의료체계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고 국가수준에서 이뤄진 의사인력에 관한 통계지표 및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근거에 입각한 수급 추계자료가 축적될 수 있도록 기반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이선희 교수는 "무엇보다도 개방된 논의들을 담은 인력추계모형과 방법을 확립하여 인력산출의 근거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노력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 또한 미국, 호주, 네덜란드 등은 의사인력추계를 관장하는 전담 연구조직이 있고 이해 주체들의 지속적인 논의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거버넌스를 마련해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인력수급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에 반해 국내는 인력추계에 대한 근거들이 충분하지 않고 그마저 개방된 논의와 보완이 이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논의구조가 없다. 그러다 보니 쉽게 정치적 이슈에 압도되거나 갈등구조로 넘어가는 경우가 그간의 실정이었다"며 "현재 제기되는 의사 수 증원 논의를 계기로, 차제에 신뢰할만한 근거구축과 근거에 기반해 체계적으로 논의하고 정책방향을 추진해가는 근거기반 정책시스템이 구축되길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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