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권역 사라지고 전 국토 단일지역, 단일보험체제...지역 내 환자가 타 지역 의사 선택, 통제 가능할까?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최근 모 국회의원으로부터 ‘개원의 총량제’에 관한 질문을 받고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특정 지역과 특정 진료과목의 쏠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개원의 총량제 취지에 공감한다”며 “다만, 총량제 도입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제시했다.
실제로 제시한 용어 그대로 개원의 총량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독일은 이미 지난 1960년에 진료 허가 지역을 환자 비율 수에 따라 산정해 의원을 개설하도록 허가하는 제도는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독일은 현재 개원의 총량제가 아니라 1990년대 초반부터 일종의 ‘통제형 개원지역 선택 정책(Bedarfsplanung)’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제기된 정책 추진 배경과는 다르다.
통일 후 독일, 의료 과잉 유입-불균형 해소 차원 인위적 통제 기전 마련
국제적으로 보면 지난 1970~1980년대는 의료비 상승을 막기 위해 국가별로 의사 수를 줄여야 한다는 논리가 팽배했다. 1980년대 후반 당시 서독은 도시 지역의 의사 공급 과잉으로 인한 진료 이용량과 총의료비가 증가했고, 이에 따라 공보험의 재정 악화를 당연한 결과로 초래했다. 여기에 소련의 붕괴로 독일이 통일되면서 동독은 의료 인프라 부족과 서독은 의료의 도시 집중화라는 서로 다른 형태의 대비 현상을 보였다. 당시 독일은 농촌과 동독 지역의 의료 불균형이 매우 심각했다. 이러한 현상으로 서독에 비해 의료가 낙후된 동독에서는 동독 출신 의사의 서독 진출을 통제할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대두됐다.
이를 위해 수요 기반 제도가 법제화됐고, 지역별 의사 수요 초과 시 신규 진입을 제한하는 규정도 명시했다. 1992년 12월 21일에 Gesundheitsstrukturgesetz(Health Structure Act)를 제정하고, 통제형 개원 지역 선택(Bedarfsplanung)과 의사 수 조절 방침을 법에 명시했다. 이후 1993년 1월 1일 공식적으로 제도 시행을 단행했다.
그런 다음에 차츰차츰 세부 조항을 통해 지역별 의사 수 급증 억제와 부족에 대한 개선 방안이 추가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조치는 의사의 직업 선택의 자유와 충돌하기는 했으나 동독 의사의 대규모 서독 이주는 잠재적 의료 불균형을 악화시킬 수 있는 위협적인 요소였다. 이에 공보험 계약 가능 여부로서 어느 정도의 통제 정책의 순기능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서 1997년 통일 독일은 보건개혁법을 통해 지역별 의사 밀도 기준도 확립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04년에는 진료영역(일반의·전문의)별 세분화, 지역별로 구체적인 의사 수를 정해놨다. 2010년 이후는 통제 중심에서 지역 격차를 줄이기 위한 농촌 의사 유인책(재정 보조, 개원 지원)이 병행됐다.
이처럼 같은 용어라 하더라도 개원의 총량제를 추진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와 독일은 사뭇 달라 보인다. 독일의 개원지역 통제 정책은 의사 과잉 공급과 독일의 통일로 인한 의사의 대규모 이동이 예상됐던 시점에서 제안된 것이다. 의사 과밀 지역에 대한 조정 방안인데, 현재 의사 부족을 주장하는 우리나라 정부가 의사 총량제를 도입하면 수도권 인구가 전체의 절반을 넘는 실정에서 오히려 의사 부족 문제는 더욱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
독일의 개원지역 통제 정책에도 농촌 의사 부족 문제는 아직도 ‘미제’
독일이 시행한 개원지역 통제 정책의 목표는 의사 분포의 균형화와 공보험 재정 안정화 및 불필요한 진료 억제, 그리고 농촌이나 취약지의 의료접근성 향상과 도시의 전문과목 과밀 지역에 대한 신규 억제책이었다. 의사 과밀 억제와 보험 재정 통제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이기는 하나 인구와 지역의 변화에 따라 주기적으로 의사 밀도 기준의 변화도 있어야 하나 과거의 고정된 자료에 의존하여 시기적으로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벗어나기 어려웠다. 농촌의 의사 부족 문제는 독일에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다.
독일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사보험을 허용하고 있고 사보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사의 경우 개원지역의 선택은 자유에 맡긴다. 비록 사보험 환자가 대상이어도 공보험 환자가 어느 의사를 찾아오든 진료는 거부할 수 없도록 했다. 현재 독일의 통제형 개원지역 선택은 법리적으로 위헌의 소지가 있는 제도로 공보험 진료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공보험 계약 의사의 개원지역을 제한한다.
독일의 개원 총량제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부분이 아닌 독일 의료체계 전체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우리나라는 직장인 소득의 7.09%를, 독일은 소득의 14.6%를 의료보험으로 징수한다. 의사 수도 인구 1000명 당 4.6, GDP 대비 11.9%를 의료비로 지출하고 있다. 의사 수가 많아도 농촌이나 취약지에 대한 해결책은 아직도 찾기 힘들다.
자국의 의료 환경 이해 없이 미검증 외래종 접목 시 생태계만 파괴 우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의사 수 평균만 보고 우리나라 의사 수가 적다는 주장도 주의(caution)와 회의(skepticism)적인 시각을 필요로 한다. 의사 수는 하나의 작은 부분에 대한 지표로 이것은 반드시 의료체계에 대한 전체적 맥락 속에서 해석돼야 한다.
민간 자영 형태를 띤 의료가 대부분인 우리나라와 달리 OECD 대부분이 우리 용어로 하면 공공의료 중심인 나라의 의사 수여서 우리나라 의사 수 추계와 방법론부터 달라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충분하다. 우리나라는 전문의 진료 위주의 의료에서 전문, 세부 전문과목별 인력 추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나라 실정에 더 부합할 수 있다.
독일의 개원지역 통제 제도가 우리나라에서 개원의 총량제로 오해가 발생할 수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지역별 의사 쿼터는 어떻게 정할 수 있는가? 지역의 단위도 문제로 보인다. 어떤 단위에서 지역별 총량을 결정할 것인가? 세부 과목까지 가능한 것인가? 의료전달체계도 명확하지 않고 주치의 개념이 없는 나라에서 주치의와 전문의 비율은 또 다른 과제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진료권역 개념이 사라지고 전 국토가 단일지역, 단일보험체제로 운영된다. 지역 내 환자가 타 지역 의사를 선택하는 것을 통제할 수 있을까?
결국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나라 의료의 이데올로기는 본질적으로 무엇인지를 소환케 한다. 이미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지구상 현존하는 전통적 사회보험제도, 조세 바탕 의료제도, 혹은 사보험 등 모든 의료제도의 원칙과는 벗어나 일종의 관 주도, 환자 중심의 ‘의료 소비 장려 제도’를 만들어 냈다.
저수가 제도를 고수하기 위해 의사에 대한 다양한 통제 방식을 적용하는 우리나라에서 급기야 개원의 자유까지 침해하며 괴상하고 독특한 의료 환경 속에 추진하려는 ‘개원 총량제’는 과연 사회적 수용이 가능할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독일 사례를 보면서 아무래도 개원 총량제는 남북 통일시대를 염두에 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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