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우리은행에서 드러난 600억원대 횡령사고의 화살이 우리은행은 물론 담당 회계법인과 금융감독원으로 향하는 모양새다. 은행의 자체적인 내부감사와 십수만 시간의 회계감사, 금감원의 검사에도 10년간 횡령사실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 사고를 막기 위해 제도적으로 꾸렸던 장치들이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일 우리은행의 내부감사부서 검사방침 등에 따르면 횡령이 벌어졌던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내부적으로 총 605만1890회에 달하는 검사가 실시된 것으로 파악됐다.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차장급 직원 A씨가 세 차례에 걸쳐 회삿돈 614억원을 횡령하는 동안 수백만번의 검사와 감사가 이뤄졌음에도 횡령을 발견하지 못한 셈이다.
우리은행의 감사제도는 크게 일상감사·종합검사·부문검사·상시검사로 구분된다. 본부장급 이상의 업무수행을 살펴보는 일상감사는 2만7084건으로 집계됐다. 횡령이 발생했던 기업개선부를 포함해 업무 전반을 살펴보는 종합검사도 본부에서만 165차례 이뤄졌다. 개별사항뿐 아니라 내부통제 이행실태를 점검하는 부문검사는 227회였다. 전산·IT 관련 검사인 상시검사는 애초 160~170만회 정도 실시해왔지만 2015년부터 20만회 규모로 줄였다. 지점별 검사와 부실여신검사 등을 고려하면 실제 규모는 더 크다. ‘내부통제시스템 평가제도’도 연 1회 이상 운영됐다.
금감원의 칼 끝, 어디까지 향할까같은 기간 회계감사를 담당했던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총 18만1079시간의 감사를 시행했다. 회계감사기간은 매해 늘었다. 횡령이 시작된 2012년 회계감사에는 1만8430시간이 소요됐는데, 마지막 범행이 이뤄졌던 2018년은 3만8656시간으로 2배 넘게 늘었다. 내부회계제도를 집중적으로 따져보는 중간감사는 총 2만9783시간으로 2012년 2984시간에서 2018년 4165시간으로 증가했다.
금감원도 11번의 검사를 했지만 부동산개발금융 심사 소홀 및 금융실명거래 확인 의무 위반 등을 적발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있었던 현장 종합감사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부통제 주체인 우리은행과 외부감사기구였던 안진회계법인, 감독당국인 금감원 모두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감원은 세 곳 모두 어떤 허점이 있었는지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우리은행 검사와 안진회계법인 감리에 착수한 상태다. 또 정은보 금감원장은 "(횡령이) 왜 (금융감독원의) 감독을 통해 밝혀지지 못했느냐 하는 부분도 조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누가 얼마나 책임을 지느냐에 따라 금융권에 끼칠 영향력은 상이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업계에서는 책임소재를 두고 설왕설래가 벌어지고 있다. 만약 금감원이 이번 사고 원인을 내부통제 실패로 보고 당시 은행장을 징계하게 되면, 라임사태처럼 금융권의 반발과 법정소송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회계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나온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회계사가 탐정도 아니고 문서까지 조작된 횡령사고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