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2.03.16 13:37

'빛 좋은 개살구' 된 미·일 철강 합의…정부, 한미 철강협상 전략 전면 수정하나(종합)




[아시아경제 세종=권해영 기자] 한국 정부가 미국과 '철강 232조'에 대한 전면 재협상에 나설 경우 대(對)미 무관세 철강 수출물량이 오히려 연간 25만t 가량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올해 초 타결된 미·일 철강 합의압을 기준으로 추산한 결과다. 이에 따라 섣불리 미국과 철강 협상을 추진할 경우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수출 조건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수출 쿼터 확대란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쿼터제 유연화'를 요구하는 '플랜 B'로 전략을 선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빛 좋은 개살구' 된 미·일 철강 합의…韓, 철강232조 협상 꼬이면 美 수출 연 25만t 줄어든다
16일 정부 및 철강업계에 따르면 한·미 정부가 철강 재협상에 착수할 경우 앞서 미국이 협상을 타결한 EU와 일본 중 어느 국가와의 협상 방식을 따르느냐에 따라 국내 기업의 대미 철강 수출물량이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우리 철강기업은 현재 2015~2017년 연 평균 수출량의 70%인 263만t을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다. 미·EU 수출 협상 조건(2015~2017년 연 평균 수출물량의 75%)을 적용하면 지금보다 18만t 늘어난 281만t, 미·일 협상 조건(2018~2019년 연 평균 수출물량의 100%)을 따르면 현재보다 오히려 25만t 줄어든 238만t만 수출할 수 있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철강 232조를 적용한 2018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 이후 중 어느 시기의 철강 수출량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대미 수출 쿼터물량이 달라지는 셈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철강 232조 전면 재협상을 요구해 왔던 업계의 입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일본과 철강 협상에 착수하면서 EU와 같은 조건을 제시할 것이란 당초 예상을 깨고 일본에 상당히 불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타결했다"며 "미국이 우리에게 EU가 아닌 일본에 내건 조건을 적용하면 오히려 수출 쿼터가 감소,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업계의 요구를 수용해 수출 쿼터 확대란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쿼터제 유연화'를 요구하는 '플랜B'로 전략을 선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국내 철강업계는 그동안 철강 232조 전면 재협상을 주장해 왔지만 미·일 철강 합의로 따져야 할 변수가 많아졌다"며 "정부도 이런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미국과의 협상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철강쿼터 확대 대신 '쿼터제 유연화'로 대미 협상전략 선회할 듯…"상반기가 협상 골든타임"
정부와 철강업계가 대(對)미 무관세 수출 쿼터 확대 대신 '플랜 B'로 기존 쿼터제 개선을 검토하는 건 한·미 철강 협상이 1년 넘게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미·일 철강 합의 방식을 따를 경우 연간 수출 쿼터가 감소할 뿐 아니라 '중국산 철강 배제' 등 미국의 까다로운 수출 조건을 수용하는 등 '혹 떼려다 혹 붙이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미국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어 협상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감도 정부의 한·미 철강 협상 전략 선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쿼터제 유연화'로 실질 수출물량 확대 추진=철강업계가 주장하는 쿼터제 유연화는 ▲연간 쿼터에서 품목제외 물량 배제 ▲분기 쿼터 미소진시 이월 허용 ▲한국 요청시 협의 의무 신설 등을 골자로 한다.
이는 유럽연합(EU)이 미국과의 철강 합의에서 이끌어 낸 내용들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미국과 이 같은 내용의 쿼터제 운영 방식 개선에 합의할 경우 실질적으로 대미 철강 수출 쿼터를 크게 늘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예컨대 EU의 경우 연간 330만t의 대미 수출 쿼터와 별도로 '품목제외' 상품을 연 110만t 미국으로 수출할 수 있다. 품목제외란 미국이 자국 내 공급만으로 수요를 충족할 수 없는 철강품목을 해외에서 수입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반면 우리나라는 품목제외 상품이라도 일단은 연간 쿼터 내에서만 수출이 가능하다. 그 결과 EU가 연간 쿼터의 33%(110만t)가 넘는 품목제외 상품을 추가로 수출하는 동안 우리는 1.5%(4만t)의 품목제외 상품만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결국 품목제외 상품을 EU처럼 쿼터에서 배제하는 쪽으로 운영 방식만 개선해도 실질적인 쿼터 확대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 분기 쿼터를 채우지 못해도 4% 한도 내에서 다음 분기로 물량을 넘겨 수출할 수 있도록 하고, 한국의 요청시 미국의 협의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정부도 대미 철강협상 전략 수정할 듯…상반기가 '골든타임'=정부도 업계의 요구를 수용해 대미 철강 수출 쿼터 확대 보다는 쿼터제 유연화에 우선순위를 두는 방향으로 대미 협상 전략을 수정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미국을 방문 중인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철강 232조 협상을 위한 사전 논의에서 미국 측에 우리 정부와 업계의 달라진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입장에서도 철강 232조 전면 재협상 요구 보다는 기존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쪽이 부담이 덜하다. 철강 수출 쿼터 확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닌 만큼 미국 내 철강기업의 반발 또한 이전보다 완화돼 협상 타결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또 정부가 쿼터 확대를 추진할 경우 미국이 원산지를 한국 내 조강 기준으로 제한하고 반(反)중국 글로벌 철강동맹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큰데, 미·중 사이에서 중국의 눈치를 봐 왔던 우리 정부로선 이처럼 불편한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를 한·미 철강 협상의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다. 미국 중간선거가 있는 11월이 가까워질수록 미국 정부가 자국 철강기업과 근로자의 반발을 무릅쓰고 해외 철강 수입 제한 조치를 완화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쿼터 확대 만큼은 아니지만 쿼터제 개선을 끌어내는 것도 산 넘어 산이다.
통상 전문가는 "미국 철강업계는 그동안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 이제 호황을 맞이한 만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한국 철강기업에 대한 수입 제한 완화 조치에 매우 부정적"이라며 "정부가 미국 정부와 협상 노력을 하는 동시에 현지 철강업계와의 소통을 강화해 협상에 유리한 현지 여론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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