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2.03.15 13:45

[시시비비] 제2차 냉전시대가 온다



대학 시절 근대외교사라는 과목을 수강했다. 나라 간 분쟁 해결에 대한 외교적 실패와 전쟁을 주제로 집필된 두꺼운 원서는 지루했지만, 전쟁은 하지 않아도 될 전쟁과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있다는 교수님 말씀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다수 언론은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필자도 그랬다.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학자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은 전쟁을 예견했다. 그는 푸틴의 발언과 국제관계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차르(제정 러시아 시대의 군주)가 되고자 하는 푸틴이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거의 3주가 됐다. 푸틴의 예상대로 나토군이 참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예상과 달리 교착 상태에 빠졌다. 퍼거슨에 따르면 전쟁에 진 차르는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자칫 전선이 확대되고 전쟁은 더 가혹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전쟁은 디지털 위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우선 세계를 초연결사회로 엮은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다. 제재와 무관한 다국적기업이 러시아를 떠나는 것은 2차 제재의 우려보다 세계의 이목이 두려워서다. 빅테크(대형정보기술기업)의 지원으로 우크라이나는 사이버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21세기 전쟁에서 인터넷 인프라를 지키고, 적 동향을 탐지하고, 허위정보를 차단하는 사이버 보안은 승패를 가를 수 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및 금융 제재는 비록 경제적 고통이 따르겠지만 이 전쟁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푸틴의 의지를 꺾지는 못할 것 같다. 그보다 글로벌 경제가 고통을 겪을 것이다.
경제와 금융 제재는 인플레이션과 불황이 결합된 스태그플레이션과 금융시스템 위험을 동반하고 있다. 최근 미 국채 장단기 금리차가 빠르게 감소하는 것은 투자자들이 향후 실물경제를 어둡게 본다는 증거다.
현 상황에서 미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은 어려울 것 같다. 급속히 높아진 지정학적 위험이 금융시장에 어떤 파급효과를 미칠지 예측하기 어려운 가운데 신용경색이 일어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전쟁에서 푸틴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면 다음은 대만 차례라고 전망한다. 여기에는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철수가 상징하듯이 미국의 패권국 지위가 흔들리면서 높아진 지정학적 위험이 배경에 있다(美 중심 세계질서 무너질 때 우리는·시시비비 2021.9.14일자 참조).
전쟁이 어떻게 종결되든 푸틴이 건재하는 한 러시아는 글로벌 경제에서 고립돼 경제적 곤궁에 빠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제 러시아가 손을 벌릴 곳은 중국밖에 없다. 중국은 폭등한 국제상품 가격으로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됐다. 더욱이 러시아 편에 서면서 좋은 관계를 원했던 유럽의 공분을 사게 돼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한편 중국은 하지 않아도 될 이 전쟁에서 의지할 데 없는 러시아를 전략적 파트너에서 경제위성국으로 삼을 부수적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자유와 평화는 힘 있는 나라가 누리는 권리다. 21세기 문명세계에서도 달라진 것은 없다. 달라진 것은 다양성이 존중되고 투명하고 통합된 사회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든든한 외교국방과 고도화된 산업으로 무장된 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된 제2차 냉전시대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지금까지 어떤 대통령도 이루지 못한 지난한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김경수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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