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우리 경제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250원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원·달러 환율의 상방 지지선으로 여겨진 1250원선이 뚫린 적은 한국을 둘러싼 상황이 엄중했던 시기인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때였다.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도 이에 못지 않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 진단이다. 러시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과 미국 금리인상, 중국의 선전시 봉쇄 등 환율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대내외적 리스크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15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42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전 거래일 대비 0.3원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환율은 1200원선 안팎을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본격화되고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도 확산하면서 전날 1년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환율이 치솟았다.
통상 세계 경제위기 시에는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달러화로 수요가 몰리면서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오른다. 가장 최근에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 주요국의 경제활동 중단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로 환율이 1280원 안팎까지 급등한 바 있다. 당시에도 달러로 수요가 몰리면서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동반 추락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최근 환율이 급등하는 것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도 임박하면서 달러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국내 주가도 힘을 못쓰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5.34포인트(0.58%) 하락한 2630.31에 출발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계속될 경우 원화가치 하락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1250원이 뚫릴 가능성이 크다. 과거 사례를 봤을 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0년 그리스 등 유럽재정 위기, 2016년 중국신용 위기, 2019년 미·중 무역분쟁 등 굵직한 국제적 리스크가 있을 때마다 환율은 널뛰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환율을 둘러싼 대외 여건들이 대부분 환율의 추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재료들로 인식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환율이 1250원을 상회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2009년 7월13일 이후 12년8개월 만에 환율이 1300원선까지 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환율이 과도하게 오르면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낮추고 국내 물가상승 압력을 더욱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국내 경기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은 이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지정학적 위험 고조로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에 대한 불확실성도 점차 증대하고 있다"며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등으로 원자재발 물가상승세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경기둔화 우려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환율이 1240원대를 넘어선 만큼 상단을 전망하는게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도 환율이 1280원대까지 올랐다가 지속적으로 하락한 것 등을 고려하면 1280원 안팎에서 상승이 제한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 평화협상과 미 Fed 금리인상, 원자재가격 등이 환율 변동성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