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한국 경제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자재 가격이 급증하면서 저성장·고물가가 동시에 나타나는 슬로플레이션(Slowflation) 진입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세계 경기가 미국을 중심으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어 당장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인플레이션) 가능성이 크지는 않더라도 치솟는 물가에 금리인상 기조가 이어지면서 경기 모멘텀이 둔화되는 슬로플레이션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전날 서울 지역 휘발유 가격은 2054원까지 치솟아 2013년 3월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서울 지역 휘발유 가격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지정학적 요인으로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가 장중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하는 등 급등세를 보였다. 최근 산유국들이 추가 공급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폭등세가 다소 진정되기는 했지만 가파른 유가 상승세는 물가 상승압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특히 원자재 가격 급등세가 지속되면서 우리 수출 경기 하강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원자재 수입이 증가하면서 경상수지는 악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1일 발표한 2022년 국제수지 잠정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는 18억1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50억달러 가까이 큰 폭으로 줄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국내 물가가 상승 압력을 강하게 받으면서 소비 및 투자 심리를 위축시켜 내수시장의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면서 "한국 경제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따른 직간접 파급 영향으로 슬로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이날 이다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스태그플레이션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요측 물가 상승 압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유가가 WTI 기준 130달러 가깝게 상승하는 것은 경제에 부담"이라면서 "3월부터 단행하는 미 연방준비제도(Fed) 금리인상이 경제 성장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미 경기는 모멘텀이 둔화되는 슬로플레이션에 집입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 연구원은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확률은 낮은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과거 미국의 사례에서 스태그플레이션 진입 조건을 살펴보면 2.5배 이상의 유가 상승 속도, 최소 6개월 이상의 상승 속도 유지, 중앙은행의 긴축정책 발생 등이 있었다"면서 "최근 상황을 보면 유가 상승 속도가 빠르긴 하지만 1.6~1.7배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장 오일쇼크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도 당장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종석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지난 10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 기자간담회에서 "아직까지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단계는 아니다"며 "세계 경기가 미국 경기 호조 중심으로 양호한 회복세를 이어 나가고 있고, 물가 상승 압력은 커졌지만 경기침체가 같이 오는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언급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