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2.03.08 13:25

[광장]국제통상의 리바이어던(Leviathan)




'리바이어던'은 17세기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저술한 정치학의 고전이다. 홉스는 자신이 목도한 영국의 혼란스러운 국내 정치 상황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으로 묘사하면서 이러한 혼돈 속에서 안정적인 질서를 복원할 방안을 고민했다. 그의 결론은 그 사회의 구성원이 일정한 권리를 국가에게 위임하고, 국가는 규칙을 만들고 집행하면서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홉스는 이 국가를 성서에 나오는 바다에 사는 거대한 괴수인 '리바이어던'에 비유했다.
이러한 홉스의 생각을 국제무역체제에 확장해 적용한다면 글로벌 공급망과 국제통상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리바이어던은 바로 세계무역기구(WTO)다. 우리나라는 WTO 다자무역질서의 대표적 수혜국이다. 지난 60여년간 국내총생산(GDP)은 약 580배 증가한 데 반해 무역규모는 약 1960배 증가해 대한민국은 자유무역과 다자주의가 경제개발과 국부창출에 어떻게 기여하는 지를 보여주는 세계 경제개발사의 산증인이 됐다. 또한 주요 무역 파트너와의 통상분쟁에서도 힘이 아닌 법규에 기반한 질서를 통해 4전 4승의 승소판정을 얻어내기도 했다. 이 놀라운 대한민국의 무역과 성장 스토리는 WTO라는 리바이어던의 존재로 가능했다.
그런데 최근 WTO 중심의 다자무역질서가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디지털, 환경, 보건 등 세계경제는 급변하는데 WTO는 새로운 규범을 만들지 못하는 반면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등 지역주의가 확산돼 무역규범의 파편화가 심화되고 있다. 또한 WTO가 각국의 보호주의 행태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고, 분쟁해결체제는 상소위원 부족으로 기능이 정지돼 무역분쟁이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다자무역질서를 수호해 오던 통상의 리바이어던이 손발이 묶이고 재갈이 물려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시 한 번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제 다자체제의 수혜자인 우리가 리바이어던의 복원을 위해 적극적 리더십을 보여야 할 때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기대는 지난달 필자의 제네바 방문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다자체제의 본산인 제네바에서 WTO,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 국제표준화기구(ISO) 등 국제기구 수장들을 만났다. WTO 사무총장과는 다자체제 복원을 위해 우리가 적극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한 최근 우리나라를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한 UNCTAD와는 우리의 경험을 타국과 공유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ISO와는 디지털, 탄소중립 등 신(新)분야의 국제표준 개발에 협력해 기술패권경쟁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초석을 다졌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최첨단 기술 보유국이며 반도체·전자 등 산업강국이자, 오징어게임·BTS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이제는 룰 팔로워(rule-follower)가 아닌 룰 세터(rule-setter)로서의 역할을 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한 역량도 갖추고 있다. 앞으로 우리와 세계 경제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통상의 리바이어던이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선도적인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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