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세종=권해영 기자, 문제원 기자] 올해 재정적자 전망이 벌써 11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 대선 후보 모두 소상공인 지원에 50조원 투입을 약속하는 등 대선 직후 대규모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예고해 나라살림 적자 규모가 연말에는 150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선 새 정부 출범 후 국채 매입과 같은 한국은행의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여전히 나오고 있어 사문화된 '한은법 제75조'가 재소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7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달 16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 통과로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10조8000억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관리재정수지는 중앙정부 순수입에서 순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다시 4대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수치다. 실질적인 나라살림 상태를 한눈에 보여준다. 당초 2022년도 본예산 기준 94조1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이번 추경 통과로 110조8000억원까지 적자폭이 커질 것으로 예정처는 내다봤다. 여야 대선 후보가 대규모 재정 지출을 수반하는 공약을 쏟아내면서 연말에는 재정 적자가 150조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한은의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정부가 대규모 재원을 마련하려면 사실상 적자국채 발행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며 "현재 한은법상(제75조) 한은이 정부로부터 국채 직접 인수가 가능한 만큼 향후 한은이 국채 유통시장이 아닌 발행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방안도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재원 조달 방안은 크게 세출 구조조정, 증세, 적자국채 발행으로 나눌 수 있다. 예산 삭감으로 수십조원의 재원을 마련하려면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이는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 거셀 수 밖에 없어 사실상 불가능한 방법이다. 증세도 여론의 반발을 부를 수 있어 쉽지 않다. 결국 적자국채 발행이 가장 손쉬운 방법인데 시장의 국채 물량 소화 여력이 점차 떨어지는 실정이다. 고스란히 나랏빚 증가로 이어지는 국고채 순증액은 2020년(115조3000억원), 2021년(120조6000억원)에 이어 올해(104조7000억원 예상)까지 3년 연속 1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여권에서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게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민주당은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해 발행한 국채를 한은이 매입토록 하는 법안 등을 발의했다. 당시 기획재정부와 한은 모두 반대했는데 대선 후 재점화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국채발행잔액 대비 중앙은행의 국채보유 비중이 3.4%로 미국(22.4%), 일본(46.2%), 영국(41.6%)보다 낮은 편이라 정치권에서 한은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주요국 대부분 중앙은행의 국채 직접 인수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는 시장이 소화할 수 있는 물량 내에서 국채를 적절한 규모로 발행해야 한다"며 "이미 한은에서 국채를 단순매입하고 있는데 발권력을 동원해 발행시장까지 참여토록 하는 건 선진국에선 없는 일이고, 국제 신인도 하락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도 "한은법 75조는 개발경제 시대 국채시장 거래가 활발하지 않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정부의 자금조달을 돕기 위한 법안으로 채권시장이 발달한 현재 한국 상황과는 맞지 않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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