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1.11.05 11:20

"사장님, 분양권 보러 오셨어? 나한테 5000에 팔아"

청약자 12만명이 몰린 오피스텔 '신길 AK 푸르지오'의 당첨자 발표가 나온 직후인 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대형마트 앞에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이 모여있다. 이곳에서 100M 떨어진 곳에 해당 오피스텔의 모델하우스가 있고 5일부터 당첨자 계약이 진행된다.




"사장님, 분양권 당첨되셨어? 몇 동 몇 호야. 얼마까지 생각해. 내가 오천(5000)까지 맞춰줄 수 있어."
◆청약 당첨자 발표 직전 ‘떴다방’ 장사진…순식간에 "1000만원 더" = 4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한 공영주차장 옆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모여있다. 약 100M 떨어진 곳에 청약자 12만명이 몰린 오피스텔 ‘신길 AK 푸르지오’의 모델하우스가 있다. 이날 오후 청약 당첨자 발표를 앞두고 이동식중개업소 일명 ‘떴다방’이 단속을 피해 장사진을 친 것이다. 이 오피스텔은 3일 진행한 청약에서 96실(전용면적 78㎡) 공급에 12만5919명이 신청해 평균 경쟁률이 1312대 1을 기록했다.
중개업소 관계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다가가 잠시 서성이자, 왼편에서 누군가가 덥석 팔을 부여잡았다. "분양권 보러 오셨어? 잠깐 저쪽으로 가서 이야기하자"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팔을 이끌었다. 그는 잠깐 전화기를 집어들고 "원매자 찾았다"며 누군가를 다급히 불러들였다. 군포시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A공인중개사무소(이하 공인) 대표 P씨였다. "몇 동 몇 호 세요. 우리한테 하시죠. 초피 오천(5000만원)까지 맞춰줄 수 있어."
‘초피’는 분양권 당첨자 발표 직후 실제 계약이 이뤄지기 전에 붙는 분양권의 프리미엄을 뜻한다. ‘초기 프리미엄’이라고 해서, 줄여 ‘초피’라고 한다.
잠시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타 중개업소 관계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하나둘 이곳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손에 명함을 쥐어주며 ‘여기로 연락달라’는 눈짓을 줬다. 이를 목격한 A공인 관계자는 "우리가 잡았어, 왜 그래!"라며 몰려든 사람들을 물리쳤다. "사장님, 저쪽이랑 연락하지마. 그 명함 다시 나한테 줘. 우리한테만 연락해야 돼."
계약일은 내일이기 때문에 내일 다시 오겠다고 했다. A대표는 "내일은 다른 오피스텔 발표도 있고 물량이 많이 풀려서 피(P·프리미엄)가 더 떨어질 수도 있다"며 "지금 당장 계약을 해야한다"고 했다. 미안하다며 발걸음을 돌리자 그는 "꼭 다시 연락줘. 육천(6000만원)까지도 해볼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청약자 12만명이 몰린 오피스텔 '신길 AK 푸르지오'의 당첨자 발표가 나온 직후인 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대형마트 앞에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이 모여있다. 이곳에서 100M 떨어진 곳에 해당 오피스텔의 모델하우스가 있고 5일부터 당첨자 계약이 진행된다.




◆전매 제한없는 희귀매물…규제의 역설 = 지난해 9월 부동산 분양권 전매 제한 조치가 시행되면서 한때 기승을 부리던 떴다방은 자취를 감추는 모습이었다. 건축물분양법 시행령에 따르면 투기과열지구나 조정대상지역에서 분양하는 100실 이상 오피스텔은 소유권이전등기일까지 전매가 금지된다. 단, 100실 미만일 경우엔 이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전매로 인한 이상과열을 막기 위해 정부가 이같은 규제를 내놓자, 시장은 100실 미만의 오피스텔을 분양하는 것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올 들어 99실, 95실, 85실 등 100실 미만 오피스텔 분양이 대거 이뤄졌다. ‘신길 AK 푸르지오’ 역시 96실로 분양해 전매가 가능하다. 서울 한복판에 떴다방이 재출현한 배경이다.
모처럼 등장한 대규모 떴다방은 주말께 서울 서초구 양재동으로 이동할 전망이다. 지난 2일 청약 접수를 마감한 ‘과천청사역 힐스테이트’의 계약(7일~8일)이 진행된다. 이 오피스텔은 89실 모집에 12만4227명이 몰려 평균 1398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분양가격이 15억4200만원에서 최고 22억원에 달해 고분양가 논란이 있었지만, 이곳 역 시100실 미만으로 공급되며 투기 수요가 대거 유입됐다.
업계 관계자는 "아파트값 폭등과 대출규제로 인해 실수요자든 투자자든 아파트에 접근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며 "규제 문턱도 낮고 전매까지 가능한 오피스텔은 역설적으로 희소매물이 돼 그 가치가 더 높아져 오피스텔 같은 비주택 상품시장의 투기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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