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코로나19 사태 이후 감염병에 특화된 보험 개발에 대한 주문에도 불구, 보험사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백신 접종 부작용을 보장하는 보험 상품을 내놓으면서 소비자의 관심을 끌었던 만큼 관련 상품에 대한 흥행이 예상되지만 적정 보험료 산정, 손해율 관리 등 세부적인 사안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전날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난 자리에서 "감염병·신기술 등에서 파생될 새로운 위험에 보험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감염병 보험’ 등의 활성화를 위한 관계부처 협의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 위원장은 "보험개발원에서 최초로 감염병 보험 위험평가모형을 개발했으나 활성화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재 보험개발원은 감염병 보험에 대한 위험평가 모델의 개발을 끝마친 상태다. 위험평가 모델은 감염병으로 인한 피해 규모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해, 보험사들은 이를 기반으로 감염병 보험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참고자료인 셈이다.
위험평가모형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는 당장 보험을 출시하기에는 고려해야할 사항들이 많다. 신종 감염병의 등장 가능성이나 장기적인 손해율 추이, 적정 보험료 등을 따져야 하는 입장이다.

"코로나 경구용 치료제, 실손 보장하면 손해율 급증할 것"
특히 보험업계에서는 손해율 관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한다. 현재 개발중인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에 대한 보장 여부를 예로 들고 있다.
정부는 머크앤컴퍼니(MSD)와 화이자, 로슈 등 3개 제약사와 총 40만4000명분의 경구용 코로나 치료제를 선구매한다고 밝혔다. 공급 일정에 따라 내년 1분기 부터 국내에 공급이 가능할 전망이다. 세계 최초 경구용 코로나 치료제인 머크사의 ‘몰누피라비르’는 한 세트(하루 두번 5일 복용) 가격을 700달러, 약 82만원으로 책정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치료제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건강보험에서 전액 부담하거나 일부를 비급여로 환자가 내야할 수도 있다. 만약 비급여로 지정될 경우 실손의료보험으로 보장을 해야 하는지도 미지수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실손보험 손해율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아직 해외에서도 감염병을 직접 보상하는 보험은 없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만이나 싱가포르, 중국에서 치료비를 지원하거나 확진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는 보험을 내놓는데 그쳤다.
대만에서는 코로나가 법정감염병으로 분류된 이후 이에 대한 보장을 담은 새 건강보험을 출시했다. 또 격리대상자나 확진자에 대한 피해를 보상하는 손해배상보험도 개발했다. 하지만 대만산물손해보험은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에 일부러 방문해 보험금을 청구하는 보험사기가 발생하자 해당 상품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개별 보험사가 부담하기 어려운 위험에 대해 공동인수 방안을 모색하고 보험료 지원방안 등도 고민한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감염병처럼 대규모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보험상품을 개발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면서 "다만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역할에 따라서 관련 논의에는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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