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은행 창구에서 보험을 판매하는 ‘방카슈랑스’가 주요 판매채널로써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국내에 도입된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또다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금융업계에서 방카슈랑스에 대한 ‘3대 판매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정작 보험업계는 미지근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은행을 계열사로 한 금융지주계열 보험사와 비금융지주계열 보험사 간의 미묘하게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서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생명보험사 방카슈랑스 초회 수입보험료 누적 수입은 4조1593억원으로 전체 수입보험료(5조1117억원)의 81.3%를 차지했다.
최근 5년간 방카슈랑스 보험료 비중을 살펴보면 코로나 사태 이후 크게 뛰었다. 2017년말 기준 71.3%, 2018년말 72.4%, 2019년 74.1%로 큰 변동이 없던 방카슈랑스의 비중은 지난해 말에 80.6%로 급증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설계사 영업이 위축됐고, 저금리와 주식시장 호황으로 방카슈랑스 주요 판매 상품인 저축성보험과 변액보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여기에 사모펀드 사태로 은행들이 보험을 대체 상품으로 소개하면서 판매 신장에 기여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방카슈랑스 열풍은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삼성생명이 방카슈랑스 초회 수입보험료로 1조6833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10.4% 증가했다.
푸본현대생명(8862억원), NH농협생명(4944억원), 한화생명(4938억원) 등도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많게는 두자릿수 이상 성장세를 달성했다.
방카슈랑스를 판매하게 되면 보험사는 은행에 수수료를 지급하는데 은행의 수수료 수입도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그룹의 3분기 누적 수수료이익은 총 9조1869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판매규제 완화 '군불'…보험사들 '실익 있나'
이러한 분위기는 방카슈랑스에 대한 판매 규제 완화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2003년 국내에 시행된 방카슈랑스 제도가 현재 시대적 흐름과 맞지 않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연구원도 지난달 30일 ‘방카슈랑스 3대 핵심규제 존치의 필요성 검토’ 보고서를 통해 규제 폐지를 제안하기도 했다.
3대 판매규제로 꼽히는 ▲판매상품 제한 ▲판매비중 25%룰 ▲판매인수 2명 제한 등이 보험사간 경쟁을 막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방카슈랑스 도입 당시 불완전판매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판매상품을 제한했다. 종신보험이나 자동차보험은 아직까지 방카슈랑스에서 판매할 수 없다. 점포 당 방카슈랑스 판매는 단 2명만 가능하다. 또 개별 은행에서 판매하는 특정 보험사 상품 비중이 25%를 넘을 수 없다.
이석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규제 실익이나 명분, 디지털화 추세 등을 감안할 때 3대 규제를 유지하는 것은 유효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면서 "불완전판매나 꺾기 등 불공정 영업행위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을 통해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규제 완화로 이익을 보는 보험업계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지주 계열인 대형 보험사와 지주계열 보험사의 시각차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만 이익을 볼 것이라는 우려다. 또 방카슈랑스의 영향력이 커질 수록 은행의 입김이 거세져 결과적으로 보험사에 큰 도움은 되지 않을꺼라는 분위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방카슈랑스 규제 완화에 대한 요구는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보험사 마다 조금씩 입장이 달라 한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다"면서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가 늘어나고 있지만 전 업계를 설득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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