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탈(脫) 중국'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GVC) 재편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중국에 대한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배터리 및 의약품 부문에선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15개국 동맹을 긴급 소집해 공급망 대책 회의를 개최했는데,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득실을 따지는 게 불가피해졌다. 다만 미국, 유럽이 주도권을 쥔 반도체 산업에선 한국의 타격이 거의 없다는 예측도 제기됐다.
◆이차전지, 中 소재·원료 무기화 우려=2일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가 한국경제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해 제출받은 '미·중 전략경쟁시대의 공급망 안정성 논의의 영향분석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공급망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심화될 경우 배터리와 의약품 시장 타격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의 배터리 점유율은 2020년 기준 36.5%다. 높은 배터리 제조 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이 예상되는 미국 내수 시장에서 오는 2023년께 점유율 1위도 예상된다. 문제는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수산화리튬, 산화코발트, 황산니켈, 황산망간 등 4대 원료·소재의 대중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를 부존자원으로 확보하고 있고, '자원 무기화' 양상까지 보인다. '안정적인 시장→수익 확보→기술투자 여력 보유→기술수준 향상' 등 선순환 구조도 갖췄다. 반면 미국은 배터리 원료 매장량이 적고, 원료 가공 및 제련 역량 또한 낮다.
보고서는 "배터리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 우위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소재·원료 국산화 비율을 높여야 한다"며 "미국이 향후 자체 공급역량 확보시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어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 기업의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위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료 의약품 자급률 16%…인도 비중 늘려야=원료 의약품 자급도를 높이고 공급망을 다변화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원료 의약품은 완제 의약품을 만들기 위한 핵심 구성 성분으로, 수급이 불안정해지면 의약품 공급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국내 원료 의약품 자급도는 2019년 기준 16.23%에 그친다. 완제 의약품 자급도가 74.1%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다. 원료 의약품 생산 규모도 2조47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생산이 3.6% 감소했다.
원료 의약품 역시 과도한 중국 의존도가 문제점으로 꼽힌다. 중국 비중은 36.73%로 일본 12.95%, 인도 10.19%를 크게 상회한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원료 의약품 생산시설의 19%가 위치한 인도를 중국 대체 수입국으로 우선 고려하고 국가필수의약품 제조시 사용되는 품목의 국내 제조 추진, 국내 원료 의약품 허가신청시 신속심사, 국산원료 의약품 사용에 대한 인센티브 마련 등을 보고서는 제안했다.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에서 중국 배제에 따른 기회를 포착해 국내 산업을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는 의견도 담겼다.
◆반도체는 타격 없을 듯= 반도체 시장에서는 미국, 유럽, 일본 등이 장비·소재 분야를 지배하고 있어 중국이 생산에서 배제돼도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장비기업 순위를 살펴보면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는 2020년 매출이 16조3650억 달러, 시장 점유율은 17.7%로 1위다. 뒤를 이어 네덜란드 ASML(16.7%), 미국 램 리서치(12.9%), 일본 도쿄 일렉트론(12.3%), 미국 KLA(5.9%) 등 상위 5개사가 시장의 3분의2를 차지한다. 반도체 제조 소재 부문에서도 일본이 전체 시장의 24%를 점유하고, 미국과 한국이 각각 19%, 7%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비중은 1% 내외에 그친다.
보고서는 "반도체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미미해 향후 상당 기간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으로 인한 충격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반도체 제조장비, 소재 부문에서 중국의 낮은 비중은 결국 공급망 충격시 중국 반도체 기업이 가장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오히려 미국 반도체 생산시설 리쇼어링 정책을 활용한 현지 생산비용 절감, 압도적인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과의 기술협력 강화를 통해 대만, 일본 등에 대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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