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EU) 내부시장 담당 집행위원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김수환 기자] 글로벌 반도체 패권전쟁이 치열한 가운데 한국 반도체 업계가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으로부터 러브콜과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시장에서 그만큼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상황이 인센티브 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지, 원치 않는 정보 공개와 투자 압박에 따른 위기가 될 지 주목된다.▶관련기사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의 만남에서 유럽 투자 유치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에서 첨단 공정이 가능한 파운드리 업체는 대만 TSMC와 삼성전자 뿐인 데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들의 점유율이 압도적이다. 반도체 생산시설 확대를 모색하고 있는 EU 입장에서는 주요 시장을 이끌고 있는 국내 업체들의 투자를 끌어내는 것이 유리하다.
EU는 지난해 말부터 반도체 산업 강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략을 세워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현재 10% 수준인 글로벌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2030년 2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향후 2~3년간 1450억유로를 투자해 EU의 반도체 업계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한 상태다. 여기에 EU의 신산업정책 내 6개 전략산업으로 반도체를 포함하고 EU 내 기업들의 반도체 동맹을 결성하는 한편 국제 협력 강화를 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반도체지원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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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반도체 업계 인센티브 제공은 국내 업체가 처음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달 초 유럽에 최대 800억유로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 두 곳을 짓겠다고 발표한 인텔의 경우 EU의 보조금 지원을 공식화하진 않았으나 이를 약속 받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 발표 이전에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인텔 공장을 유럽에 유치하려면 80억유로의 보조금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해왔고 EU 각국 정부와 적극적으로 논의한 끝에 투자 결정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실질적으로 국내 기업들이 유럽에 공장을 지을 지는 미지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미 국내와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 데다 유럽 내에서 국내 업체들이 주로 생산하는 반도체의 소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막대한 투자를 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된다.반도체 패권 놓고 협력·경쟁 공존하는 글로벌이러한 EU의 노력은 미국이 반도체 수급난을 이유로 관련 업체들에게 민감한 정보를 요구해 국내 업체들이 난감한 상황에 처한 가운데 나온 것이다. 미국 정부는 오는 11월 8일까지 최근 3년간 매출액과 주문량이 많은 제품의 한달 매출 규모, 제품별 3대 고객 명단과 각 고객사별 예상 매출 비중 등 정보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은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조사라고 강조했지만 군방물자생산법(DPA)까지 동원해 강제로 내부 정보를 수집할 가능성까지 열어둬 압박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내부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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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러한 압박과 동시에 협력도 모색하고 있다. 브르통 집행위원이 아시아를 방문하는 동안 미국과 EU는 29일(현지시간) 미국 피츠버그에서 미·EU 무역기술위원회(TTC) 첫 회의를 진행하고 반도체 공급망 공조를 강화하고 신기술 경쟁 시대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데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이들은 "상호 소통을 강화해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한 공통된 취약성을 파악하고 역내 기술 연구개발과 제조 생태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면서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역량을 강화하는데 각국 정부가 적극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전체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미국이 47%, 유럽이 10%로 한국 20%, 일본 10%, 대만 7%, 중국 5%에 비해 큰 편이지만 팹리스 등을 제외한 생산능력 만을 감안하면 미국과 유럽의 점유율이 21%로 아시아(75%)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국내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을 잡으려고 미국, 중국, 유럽이 앞다퉈 나서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기회와 위기 사이에 놓여 있다"면서 "관련 업계가 정부와 함께 이에 대응하면서 협력할 부분은 협력하고 경쟁력을 키울 부분은 키워 나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김수환 기자 ksh205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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