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한국전력공사가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 배경에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자리잡고 있다. 국제유가 등 연료비 부담이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전기요금에 전력생산원가 상승·하락분을 주기적으로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가 사실상 작동 불능 상태임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수입은 제한적인 반면 에너지 전환에 따른 각종 기후환경비용 부담 증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정치공대'란 비판을 받는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등에 조(兆) 단위 투자가 예정된 한전 부채는 올해 14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 부채, 올해 142조원=6일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실이 한전에서 제출받은 '2021~2025년 중장기 재무계획'에 따르면 한전 부채는 올해 142조1354억원으로 지난해(132조4753억원) 대비 9조6601억원 증가할 전망이다. 부채비율은 같은 기간 187.5%에서 216.7%로 증가하고, 이자비용은 1조9954억원에서 2조625억원으로 늘어나 연간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영업손실은 3조8492억원, 이자보상배율은 -1.9배로 재무상황 역시 급격한 악화가 예상된다.
한전은 "유가, 유연탄가 등 국제연료가 상승으로 전력구입비용이 증가했다"며 영업실적 적자전환의 원인을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전은 2021~2022년 평균 유가 전망을 두바이유 기준 당초 배럴당 52달러에서 올해 62.5달러로 상향했다. 유연탄은 t당 70.8달러에서 92.4달러로 올려잡았다. 연초부터 유가가 급등하면서 2, 3분기 전기요금 인상에 나서야 했지만 정부는 물가관리를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에 번번이 제동을 걸었다. 연료비 상승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하반기에는 한전의 부담이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현 정부 들어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값싼 전원인 석탄화력발전 이용률이 급격히 줄어든 것도 한전의 비용 부담 증가 요인이다. 한전에 따르면 2021~2024년 평균 석탄발전이용률 계획은 당초 70%에서 올해 55.3%로 내려갔다. 이는 한전의 발전 자회사의 상반기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남부발전은 올해 상반기 영업손실 12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적자전환했고 중부발전은 474억원, 남동발전은 91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각각 58.9%, 21.9% 감소했다.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 비용 해마다 급증=반면 기후환경비용을 비롯해 각종 비용 부담은 늘어나고 있다. 한전은 발전사업자의 신재생에너지 생산·구매 비용을 보전하는데 이와 관련한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RPS) 이행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한전의 RPS 이행비용은 2017년 1조6120억원에서 2018년 2조163억원, 2019년 2조474억원 2020년 2조2470억원에 이어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1조6773억원에 달해 연간 3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설상가상으로 한전은 정치 논리에 따른 표밭 다지기에도 동원되고 있다. 문 대통령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해 전남 나주에 설립되는 한국에너지공대에 약 10년간 1조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다. 한전은 올해 413억원, 2022년 729억원, 2023년 1297억원, 2024년 1248억원, 2025년 1235억원 등 향후 5년간 4921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사실상 여권의 전통 표밭을 다지기 위해 지역민에게 주는 선물인 정치공대에 한전이 동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재생에너지 등과 관련한 각종 설비투자가 늘면서 한전 부채도 증가, 오는 2025년에는 약 166조원에 이를 것으로 봤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한전의 에너지 전환 비용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정치 논리에 휘말려 연료비 연동제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결국 차기 정권에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있었지만 연료비 연동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서 반쪽짜리 제도로 전락했다"며 "전기요금 인상을 위해 한전의 경영 관리 효율화, 원전 등 전기 생산 포트폴리오 다변화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2월18일 3만50원이었던 한전 주가는 지난 3일 종가 기준 2만3800원으로 21.6% 빠졌다. 코스피 지수는 같은 기간 15.5%나 상승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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