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년 전 버냉키 갑작스러운 테이퍼링 발표시장 충격 트라우마 경험내일 잭슨홀 미팅에 관심 커
금융투자업계, 투자자들 "이번엔 긴축발작 우려는 없다"美, 테이퍼링 관련 시장과 충분 소통 코로나로 금리도 비정상적으로 낮아
증시 학습효과 따라 저가매수 추가 투자기회로 보기도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세계 각국의 ‘돈줄 조이기’가 조심스럽게 시작되는 분위기다. 한국은행이 집값과 가계부채 폭등세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0.50%에서 0.75%로 인상한 데 이어, 미국도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이르면 연내에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르웨이는 9월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예정이며, 7월 신규 자산 매입을 중단한 뉴질랜드는 올해 말 기준금리 인상이 확실시되고 있다. 호주는 10월부터 테이퍼링에 나설 예정이다. 수익률에 민감한 투자자들은 과거 긴축으로 전환하던 시점에 금융시장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보며 빠르게 대응할 채비를 하고 있다.
2013년 美 테이퍼링 전례 어땠나세계 자금 흐름의 변곡점은 미국의 테이퍼링 시점이다. 27일(현지시간) 미국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연은)은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과 경제 전문가들을 초빙해 비대면 방식 잭슨홀 미팅을 여는데,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테이퍼링 관련 발언을 내놓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2013년 5월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이 갑작스레 테이퍼링을 발표하면서 시장이 충격을 받았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버냉키 의장이 테이퍼링을 언급하자 신흥국에선 투자자금이 대거 유출되며 주가가 폭락했다. 한국 코스피 지수는 2013년 5월 말 2001.05 수준에서 한 달여 만에 1800선까지 떨어지며 8.5% 빠졌다. 미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달러가 시장에 공급되도록 했는데, 이를 줄이면 자연스레 유동성 공급이 줄면서 신흥국에서 먼저 자금을 빼기 때문이다. 코스피 지수는 테이퍼링이 종료된 2014년 10월 이후부터 올라 2000선을 회복했으나, 2015년 12월 Fed가 9년여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하자 다시 1800선으로 떨어졌다.
미국이 달러를 거둬들이자 달러화 가치는 올라갔다. 2013년 6월1일 82.45 수준이던 달러인덱스(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는 2016년 말 102.42까지 올랐다.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원·달러 환율도 상승했다. Fed가 국채를 덜 사겠다고 하자 미국 국채 가격은 폭락(국채금리 상승)했다. 2013년 5월 초 2% 수준이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그해 말 3% 가깝게 뛰었다. 이번에도 시장 예측보다 빠르게 테이퍼링이 시행되거나, 각국에서 돈줄을 조이는 움직이 예상보다 강하게 나타난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곳은 한국과 같은 개방형 경제를 가진 신흥국이란 점을 예측할 수 있는 배경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투자자들 "이번엔 다르다"…포트폴리오는 재정비미국의 테이퍼링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과거 트라우마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와 투자자들은 이번엔 ‘테이퍼 탠트럼(긴축 발작)’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첫 번째는 미국의 테이퍼링 속도가 빠르지 않은 데다, Fed와 시장이 충분히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2013년 사태를 의식한 듯 최대한 테이퍼링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코로나19 델타변이가 미국에서 확산하고, 경기 회복이 둔화할 수 있다는 움직임이 나오자 테이퍼링 언급을 더욱 자제하는 분위기다. 이 과정을 겪으며 시장에선 충분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발작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두 번째는 코로나19 사태로 금리가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준이란 점이다.
김현섭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팀장은 "정기예금 금리가 과거에 비해 조금씩 올라가곤 있지만 고객의 기대치를 만족시킬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다"라며 "최근 주식시장이 많이 하락했지만 관심이 여전하고, 학습효과에 따라 주가가 빠졌을 때를 오히려 추가 투자기회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대신 불확실성이 커졌고,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만큼 달러가 떨어질 때마다 분할매수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달러는 포트폴리오에 넣어두는 게 맞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다"며 "달러에 대한 관심이 계속해서 지속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송재원 신한은행 PWM서초센터 팀장은 한국의 금리 인상보다 미국의 테이퍼링이 주가에 즉각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잭슨홀 미팅이나 2013~2014년 증시 흐름을 관심있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송 팀장은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종목 투자 대신 상장지수펀드(ETF) 등으로 전환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헬스케어·필수소비재·유틸리티 등 시장 변동성이 클 때 인기를 끄는 미국 방어주 섹터 ETF에는 지난달 50억달러(약 5조8000억원)가 순유입됐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 정세는 당분간 금융시장의 변수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92.38포인트(0.54%) 하락한 3만5213.12로 장을 마감했고, S&P 500지수는 26.19포인트(0.58%) 내린 4470을 기록했다. 오전 10시14분 현재 코스피 지수는 15.97포인트(0.51%) 내린 3112.56에 거래 중이다. 원·달러 환율 역시 0.5원 오른 1171.0원에 개장한 뒤 1172~1173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은은 26일 기준금리를 0.50%에서 0.75%로 인상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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