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이 지원 접수를 시작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기금 지원을 신청한 기업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1호 지원기업으로 예상됐던 대한항공이나 기금 지원을 목말라했던 쌍용자동차도 신청하지 않았다. 국가 경제의 토대가 되는 기간산업 지원을 위해서라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출발했지만 두 달여 간의 '개점휴업'을 넘어 이제는 '흥행 참패'를 걱정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안기금 운용심의회가 지원 신청 공고를 게시한 지난 7일부터 22일까지 신청 기업이 전무하다. 기금 신청은 지원을 원하는 기업이 주채권은행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주채권은행은 검토의견과 함께 기업이 제출한 서류를 KDB산업은행 내 기안기금 기금운용국에 보내는 방식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금운용국에 송부된 신청서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기안기금 지원대상 1호' 기업으로 꼽혔던 대한항공은 물론, 자격 미달에도 불구하고 지원 신청 강행의 움직임을 보였던 쌍용자동차도 물밑 움직임조차 없다.
시장에서는 대한항공이 최근 유상증자에 성공하는 등 상황이 달라지면서 신청을 미루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한항공은 이미 지난 5월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1조2000억원의 자금을 지원 받았고 이를 기안기금으로 대체하며 잠정적 1호 수혜기업으로 꼽혔다. 기금 출범 이후에는 추가 자금 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정부 요건 까다로운 영향…위기기업 '낙인효과'에 기피이런 가운데 대한항공은 지난 14일과 15일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항공업계 유증에서 4조8000억원 이상이 몰리며 흥행 성공을 거뒀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1조127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하게 됐다. 또 기내식사업 및 유휴자산 매각도 진행 중이다. 시장에서는 내년 상반기까지 대한항공이 필요한 현금 4조원을 무난하게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2분기에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항공 여객 수가 전년보다 97% 이상 감소한 가운데서도 비용절감 노력과 화물수송 수요 증가로 '흑자전환'에 성공할 것이란 관측이다. 김유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화물에서 유입되는 현금까지 고려할 때 유동성 위기는 벗어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쌍용차는 기금 신청에 대한 서류 접수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접수 일정이 나오면 곧바로 2000억원의 자금을 지원 신청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지원 자격에서 탈락하더라도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라는 점을 호소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감감무소식인 상황. 쌍용차는 최근 삼성증권과 로스차일드를 매각 주간사로 선정하고 잠재 인수자들의 의향을 타진하고 있다. 매각설 이후 주가는 치솟았고 쌍용차 시가총액은 지난달 15일 2921억원에서 전일 6046억원으로 2배 넘게 뛰었다. 일각에서는 비핵심 자산 매각과 산업은행 대출 만기연장, 판매 증대 등으로 경영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마저 꿈틀거린다.
시장에서는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자금 지원에 목말랐던 기업들이 고개를 돌리고 있는 이유에 대해 지원 신청 기준이 높고 지원 이후 정부가 원하는 요구 조건도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여신 조건은 6개월간 고용 90% 이상 유지, 자산매각 등 유동성 확보 노력, 주주배당 금지, 자사주 매입 금지, 계열사 지원 금지 등 8가지에 달한다. 특히 총 지원액의 최소 10%가 주식연계증권으로 인수되는데 이는 추후 정부가 기업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될 것이란 우려로 작용하고 있다. 기금이 제공하는 대출 금리가 시중은행들과 비교해 그다지 유리하지 않다는 점도 기금 흥행 실패를 우려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기금 신청 시 우려되는 '낙인효과'도 문제다. '위기 기업'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향후 회사채 발행 등에 문제를 겪을 수 있어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안기금도 결국 대출인데, 현 시점에서 자금흐름이 나아지고 있다면 굳이 기금을 신청할 이유가 없다"면서 "특히 '위기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혀 향후 자금 조달에 애로를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신청 기업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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