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0.07.20 15:30

기업·가계 5개월간 100조 빌려 '연명'…'제2 카드대란' 올라(종합)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업과 가계가 은행에서 새로 빌린 돈이 1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및 자영업자를 포함한 경제주체들이 '코로나 보릿고개'를 빚으로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이 기존 기업과 가계 대출에 대해 만기를 재연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2003년 '카드 대란'과 같은 부실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0일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2월부터 6월까지 다섯달 간 기업과 가계는 은행에서 106조원 이상의 대출을 새로 받아간 것으로 집계됐다. 1월 말 기준 877조5000억원이었던 기업대출은 6월 말 946조7000억원으로 불어났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은 892조원에서 928조9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은행 기업 대출 증가액 20조1200억원, 가계 대출 20조2400억원 등 총 40조3600억원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2.6배나 큰 규모다. 기업과 가계의 자금 사정이 그만큼 급박했다는 의미다.
특히 기업들의 대출 증가폭이 컸다. 6월 말 기준 기업대출액은 1월 말 대비 69조2000억원이나 폭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출증가액 20조1200억원과 비교하면 3.4배를 넘는다. 가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36조9000억원 상당의 대출을 은행에서 끌어썼다. 전년 동기 20조2400억원 대비 2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다만 가계대출 증가에는 지난해 말 부동산 시장 급등과 정부의 잇단 대출 규제에 따른 영향, 코로나19에 따른 급전 대출 및 주식 투자 수요 등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출증가 폭이 커지면서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 연속 상승했다. 5월에는 기업대출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올랐고 가계대출은 신용대출이 특히 늘어난 모습을 보였다.
연명대출↑, 부실 위험신호 왜곡
문제는 빚으로 버티는 '연명 대출(Evergreen Loan)'이 늘어날 수록 부실 전이를 경고하는 위험 신호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차주가 더 이상 차입금을 상환할 능력이 없는데도 금융회사가 지속적으로 대출기한을 연장해주는 연명 대출은 표면적으로 정상여신이나 실제로는 부실여신이다.
특히 앞서 금융당국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을 고려해 지난 3월부터 금융회사에게 기업과 가계의 기존 대출에 대해 6개월간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유예 조치를 실시하도록 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이달 10일까지 경제주체들이 갚아야 할 대출을 갚지 못해 만기를 연장하거나 상환을 유예하는 조치를 받은 전체 금융권 대출은 40만7000건에 달했다. 자금 규모로 따지만 82조6000억원에 이른다. 은행권에서만 보면 14만7000건, 43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그 결과 올 3월 말 은행, 신용카드, 할부리스, 저축은행의 부실채권비율인 고정이하여신비율은 각각 0.8%, 1.2%, 2.1%, 4.7%로 외견상 전년 말과 비슷한 수치가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말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은행은 1.4%에서 0.6%포인트 떨어졌고 할부리스, 저축은행 각각 0.1%포인트, 2.5%포인트 내려갔다. 신용카드만 0.1%포인트 소폭 올랐다.
현재 금융당국은 코로나19발 경기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9월 이후에도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유예 조치를 연장하는 방향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위기 상황에서 결정된 한시적인 조치가 장기화될 경우 정보왜곡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이러한 조치가 지속되면 금융회사의 자산건전성 지표는 의미가 없어지고, 금융당국과 신용평가사는 금융회사의 실질에 부합하는 정확한 판단을 하기가 어려워진다"면서 "특히 한계차주에 대한 차입금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유예 조치는 2003년 카드사태 당시 대환대출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우려했다.
대환대출은 연체채권에 대해 만기를 연장해 재대출을 시행하는 조치다. 하지만 신용카드업계 전반적으로 연체율이 급상승했던 2002~2003년에는 대환대출이 외부에 공시되는 연체율을 낮추기 위한 편법으로 사용되면서 원래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카드사태가 발생했던 2003년 당시 신용카드업계의 공시 연체율(1개월 이상 연체율)은 9월까지 9~10%로 큰 변동 없이 유지됐다. 그러나 이 기간 중 연체채권으로부터 출발한 대환대출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를 연체채권에 더해 산출한 대환대출전 연체율은 2002년 말 11.6%에서 2003년 9월말 32.1%로 치솟았다. 결국 2003년 11월 LG카드의 유동성 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누적됐던 버블이 폭발했고 전업 신용카드사 기준 총 9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게 됐다. 최근 한은 설문조사 결과 은행권이 느끼는 3분기 가계신용위험 전망지수는 43으로 카드사태 직전인 2003년 3분기(4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금융당국은 2003년 11월 LG카드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대환대출을 반영한 ‘실질연체율’을 새로 만들어 신용카드사가 업무보고서에 신고하도록 했다. 실질연체율은 연체채권에 대환대출을 더하되 대환대출 중 원금의 30% 이상이 상환됐고 대출기간의 3분의 1 이상, 또는 6개월 이상 원리금 상환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금액(상환능력개선금액)은 차감해 산출한 연체율이다.
카드사태는 2003~2004년간 전업 신용카드사 기준 총 9조원의 대규모 손실을 발생시킨 가계대출의 대표적 실패사례다. 금융당국에서 대환대출이 신용카드사의 자산건전성 지표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좀더 빠르게 인지하고 공식 연체율에 반영했다면 카드사태는 조금 다른 국면으로 전개됐을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본부장은 "금융회사의 재무지표가 실질을 나타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금융시장에 혼란이 발생한다"면서 "금융당국은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유예 조치의 연장 여부를 검토할 때 정보왜곡에 대한 보완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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