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장세희 기자, 문채석 기자]정부가 기업의 편의성을 제고하기 위해 지난 5월 민간 규제샌드박스(규제유예제도)를 도입했으나 오히려 심의 과정이 지체되는 등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통해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고 규제 혁파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다. 정부 차원의 규제샌드박스도 처리율이 절반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아시아경제가 대한상공회의소 샌드박스지원센터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한상의는 지난 5월 출범 이후 93건을 신청받았으나 현재까지 13건만 처리(처리율 14%)한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샌드박스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해주는 제도로 지난해 1월 처음 도입됐다. 정부는 시행 1년 후 평가 및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지난 1월 보완대책을 내놓았다. 이때 가장 강조한 것이 기존 공공기관 이외에 민간 접수창구를 추가로 신설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상의는 지난 5월12일 규제샌드박스지원센터를 출범했다. 당시 정부는 "그동안 공공기관에서만 운영하던 규제샌드박스 지원기능을 민간영역으로 확대해 기업들의 문턱을 낮추고 기업을 더욱 잘 대변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운영 2개월이 지난 현재 처리율은 극히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접수 창구가 하나 늘어난 것 이외에 '문턱'이 낮아진 효과는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처리율이 기대에 못 미치는 이유는 민간 접수창구가 추가됐으나 결국 대한상의에 접수된 신청도 부처로 이관해 승인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상의에 의하면 규제샌드박스 사례가 접수되면 법령 검토→안건 작성→부처 심사의뢰→전문위원회(1급 주재)→규제특례 심의위원회(장관 주재)를 거쳐 승인 허가를 받게 된다. 출범 당시 '원스톱지원'이란 점이 강조됐으나 결국 기존 공공기관 접수와 동일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셈이다.
비정기적인 규제특례 심의위가 처리를 더디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장관 주재로 열리는 규제특례 심의위는 두세 달에 한 번꼴로 개최돼 빠른 심사가 어렵다는 것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법률 검토를 마치고 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빨리 진행할 수 있고, 중소기업은 보통 아이디어만 있는 경우도 많아 법률 검토하는 것부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해당 내용을 산업통상자원부ㆍ과기정통부ㆍ금융위원회 등으로 보낸 후 각 부처 전문위원회의를 열어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정부 주도의 규제샌드박스 처리 실적도 전년대비 오히려 후퇴했다. 산업융합 규제샌드박스에 따르면 7월 현재 165건 중 95건(처리율 57.6%)을 처리해 절반을 가까스로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규제샌드박스 시행 1년 발전방안으로 신청기업의 실증특례 조건 변경 요구 권한 부여 등의 제도를 개선했지만 오히려 처리율은 전년 동기 대비 20.4%포인트나 떨어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 규제는 단순히 민원 접수처럼 창구만 늘려서는 안 된다"며 "접수된 사업들이 실제 승인 허가로 이어지고, 신성장 동력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장세희 기자 jangsay@asiae.co.kr
세종 =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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