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 비판 쏟아내…"환자 재판받을 권리 침해, 필수의료 사법 리스크는 근거 빈약"
신현호 변호사가 17일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열린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 관련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과 관련해, 법조계에서 재판받을 권리 침해와 함께 의료사고를 가볍게 여기는 인식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17일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변호사들은 개정안의 위헌 소지와 제도적 한계를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신현호 변호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중앙위원회 부의장)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가 만들어지면 제일 큰 문제가 재판받을 권리 침해”라고 말했다.
개정안에는 의료사고 사건과 관련해 의료사고심의위원회가 고위험 필수의료 해당 여부, 중과실 여부 등을 심의하는 내용이 담겼다. 심의를 통해 중과실이 아니라는 판단이 나오고 이 외에 환자에 설명 의무 이행, 책임보험 가입, 손해배상 등의 요건이 충족되면 공소가 제한된다.
이처럼 사건의 핵심 판단이 법원 재판에 앞서 위원회 심의 단계에서 다뤄지게 되는 만큼,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침해 우려가 있다는 게 신 변호사의 주장이다.
"한국은 친한 사람에 대해 유리하게 말하는 게 진실 취급"
특히 그는 심의 과정에서 이뤄지게 될 감정의 객관성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감정은 사실 확인이 역할인데 실제로는 감정의가 규범적 판단을 내리거나, 구체적 기준도 제시하지 않고 전부 ‘평균 이상의 치료가 이뤄졌다’는 식의 내용만 적어보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어 “전문가로서 (객관적) 얘기를 하면 괜찮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미국은 기독교적 베이스를 가진 사회라 거짓말을 죄로 보고 위증에 대해 자제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친한 사람에게 유리하게 말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법원에서 증인 신문을 잘 안 하는 이유가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의사들이 사법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데 대해서는 “1년에 최대 20억회 정도의 진료행위 중 민사소송 제기되는 것도 800건 수준에 불과하다”며 “확률이 0.1%라도 내가 걸리면 전과자가 된다는 위기감을 갖는다고 하는데 그건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순간 갖는 필연적 의무다. 그걸 면제시켜주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전 헌재 헌법연구관 "중과실 아닌 의료사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될 우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인 장시원 변호사는 헌법적 관점에서 평등권과 피해자 권리 문제를 함께 짚었다.
그는 “의료 과실로 사망한 경우와 다른 업무상 과실로 사망한 경우를 비교했을 때, 사망이라는 결과의 중대성은 동일하다”며 “과실의 유형에 따라 유족의 권리 보장이 달라지는 것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형사특례가 의사들로 하여금 중과실이 아닌 의료사고를 상대적으로 여기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봤다.
그는 “보험 가입만 해 놓으면 혹은 병원에서 배상하면 그거 다 해결되는 거 아닌가라는 부분이 아예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라며 “중대하지 않은 과실로 인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을 의료인의 경우에도 상대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가 있는 이유 자체가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보건의료인에 대해 책임을 면해 주자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고 했다.
또 “보건의료인에게만 특례를 두는 구조는 특정 직역을 특별한 사회적 신분처럼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형사 특례? 의료사고 입증책임 전환 등 반대 급부 필요
형사특례 도입의 근거로 제시된 ‘의료인 사법리스크’ 주장에 대해서도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박호균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는 “사법 리스크라는 것이 객관적 자료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며 “보건복지부 연구를 보면 실제 형사기소는 연 34건 정도가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서 제시한 연 700건대 수치는 기소된 게 아니라 입건된 피의자 수”라며 “입건된”라고 지적했다.
또 “복지부 관계자에게 근거를 물었지만 의사들 대상 설문조사나 의사들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 정도의 설명만 있었다”며 “의사들의 심리적인 부분까지 배려할 정도면서 왜 국민들이 느끼는 법 감정은 중요하게 다루지 않나”라고 했다.
이인재 변호사(전 의료변호사협회 회장)는 형사특례 논의가 피해자 보호 장치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형사특례를 도입하려면 입증 책임 전환과 과실 추정 같은 반대급부가 전제돼야 한다. 이런 부분은 빠진 채 형사특례만 논의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현재 구조에서는 피해자가 소송까지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큰데, 이런 문제는 그대로 둔 채 형사특례만 이야기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했다.
또 “실무적으로 보면 형사특례는 이미 경찰·검찰·법원 단계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소된 사건 중 무죄가 가장 높은 게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라며 “언론에 보도되는 예외적 사건들이 일반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사법 리스크 근거 약해…필수의료 위기는 '경제적' 혜택으로 풀어야
법조인들은 무리한 형사 특례 대신 경제적 혜택을 강화하는 게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방안이라고도 제안했다.
박호균 변호사는 “실제 기소된 사건을 전문과목별로 살펴보면 정형외과와 성형외과가 가장 높다. 사법 리스크가 객관적으로 가장 높은 과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공의들이 선호하는 인기과”라며 “필수의료 의사 부족 문제가 결국은 경제적 문제와 깊이 연관돼 있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결국 비급여, 비필수 의료 영역에서 많은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있는 의료인들에 대해 철저히 관리하고 반면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보건의료인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해소해야 한다”며 “근거도 없는 사법 리스크 문제를 붙잡고 엉뚱한 법을 만들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장시원 변호사는 “필수의료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시장 논리에만 맡겨 놓을 게 아니라 국가가 재정을 더 투입해야 한다”며 “공공의료, 필수의료를 하는 소중한 분들에게 엄청난 보상을 하고 명예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런 조치 없이 (법 개정을 통해 의료사고) 당사자들 간의 책임을 조정하는 문제는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실제 사법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반론도 나왔다.
용인세브란스병원 김학주 흉부외과 교수는 “의료의 특수성을 고려해줬으면 한다”며 “심장·대동맥 수술은 응급으로 진행하면 사망률이 5~10% 수준이라 1년에 100례를 하면 5~10명은 필연적으로 사망이 발생한다”고 했다.
이어 “항상 사건에 연루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현장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며 “개인적으로도 민사소송이 걸려 있는 사건도 있고,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진행 중인 사안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선 의료진이 방어진료를 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합병증이 예상되거나 결과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환자는 수술을 기피하게 되고, 그 피해는 결국 환자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