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11.09 07:13최종 업데이트 22.11.09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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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등급 1~2등급 상급종합병원도 1인당 환자 평균 12명...미국의 2배, 영국의 1.5배

간협·보건의료노조, 손잡고 간호인력 기준 압박...복지부, 내년까지 간호사 1인당 실제 환자 수로 간호등급 개편

사진=보건의료노조TV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대한간호협회와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의료인 정원 기준을 위반한 의료기관에 대한 처벌이 ‘송방망이 처벌’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하며 간호사 정원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개정하고 의료기관의 정원 충족 실태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그간 ‘간호법’ 제정을 놓고 의료단체와 부딪혔던 간호협회와 보건의료노조가 의료계의 약점을 저격한 것이다.

이 가운데 국회에는 이미 의료인 정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행정처분을 받은 의료기관을 공표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보건복지부도 간호사 1인당 실제 환자 수를 기준으로 한 간호등급제 개편을 준비 중으로 나타나 의료계에 대한 압박을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8일 대한간호협회와 전국보건의료노조가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의원과 함께 ‘법정의료인력기준 개선과 불법의료기관 근절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을 주제로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의료기관 간호사 정원 규정 모호…“간호사 1인당 실제 환자 수 기준으로 법 개정”

간호계는 올해 7월 6일부터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를 통해 ‘의료법 상 간호사 정원 기준 개정에 관한 청원’과 ‘의료인 등의 정원 기준 위반 의료기관 실태조사 실시에 관한 청원’을 실시했다. 그리고 두 건의 국민동의청원 모두 30일 동안 5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서 현재 국회 소관위원회로 회부된 상태다.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 김원일 활동가는 해당 국민동의청원에 대해 “현행 의료법 제36조 제5호는 구체적인 위임범위 없이 의료기관 종류에 따른 의료인 등의 정원 규정을 행정입법으로 위임했는데, 간호사 정원 기준이 불명확해 그 내용을 이해하거나 해석하기 어렵다”며 그 취지를 밝혔다.

실제로 의료법 시행규칙에서는 연평균 1일 입원환자를 2.5명으로 나눈 수, 외래환자 12명은 입원환자 1명으로 환산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행정업무 또는 PA업무 간호사도 간호사 정원 기준으로 산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해 해석상 논란이 있다.

김원일 활동가는 “불명확한 의료법상 간호사 정원 기준이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법률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함으로써 국민과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와 간호의 질 저하를 초래한다. 또 이는 국가와 지자체의 의료기관 관리책임 의무를 방기하는 원인이 된다”며 “국민과 간호사, 의료기관과 국가가 의료법상 간호사 정원 기준을 알기 쉽게 이해하고, 법적 안전성과 예측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 오선영 정책국장은 9.2 노정합의를 통해 간호서비스 질 향상과 간호인력 처우 개선을 위해 현 간호등급 차등제를 간호사 1인당 실제 환자 수 기준으로 상향 개편하기로 약속했다고 지적했다.

오 국장은 "간호등급이 1~2등급인 상급종합병원도 데이 근무에는 간호사가 1인당 평균 11.4명의 환자를, 나이트 근무에는 간호사 1인당 평균 12.5명의 환자를 보고 있고, 종합병원도 데이 근무에는 1인당 평균 12.6명, 나이트 근무에는 1인당 평균 13.6명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간호사 1인당 5.3명, 스위스는 7.9명, 영국은 8.6명으로 우리나라의 절반에 가깝다.

오 국장은 “현행 의료법 상 간호사 정원 기준은 의료기관에 소속된 간호사 면허 소지자 전체로 계산해, 환자를 직접 대면‧간호하는 병동 간호사뿐 아니라 진료지원 간호사, 수술보조 간호사, 연구 간호사, 행정 간호사, 보험심사 간호사, 총무, 구매 간호사까지 모두 포함돼 계산되고 있다”며 “직접 환자를 간호하는 간호사 1인 담당 환자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 국장은 “2020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 같은 인력 부족으로 간호사들은 노동강도가 강해져 사고위험에 노출되고, 부서내 불협화음과 갈등 등 ‘태움’이 발생하고 한다고 밝히고 있다”며 “환자에게도 의료와 안전사고 발생위험이 높아지고, 의료‧상담‧서비스 질이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특히 오 국장은 “의사 부족으로 인해 환자의 치료와 안전에 직결된 주요 업무가 간호사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간호사 정원은 실제 근무조별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를 기준으로 해야하며, 일반병동, 중환자실, 신생아실, 응급실, 수술실 등에서의 최소 인력 기준도 각각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간호계는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 환경 문제가 의료기관의 적정 간호사 인력 충원 미이행에 있다고 지적하며, 간호사가 의료현장을 떠나는 이유도 적은 인력으로 환자를 담당하면서 커진 근무량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이행 적발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신경림 회장 “미이행 의료기관 공표해야”
 
사진=보건의료노조TV

특히 이날 토론회에서는 의료기관이 법정 인력 정원을 위반하면 보건복지부 장관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시정명령을 할 수 있고, 의료기관이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업무정지 15일의 행정처분을 할 수 있음에도 복지부와 지자체가 간호사 정원 기준 미준수 기관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해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22년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6년간 간호사 법적 정원 기준 미준수 기관은 7353개소에 이르나, 보건복지부에서 제출한 행정처분 현황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년간 278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15개의 권역(미제출 권역 제외) 중 10개의 권역에서 간호사 정원 위반 의료기관이 지속적으로 적발됐으나 2회 이상 정원 기준을 중복해서 위반한 의료기관에 대해 시정명령만 반복할 뿐 영업정지 15일을 처분한 사례는 없었다.

이에 대한간호협회 신경림 회장은 “일본이나 선진국인 미국, 캐나다, 유럽은 간호사와 환자 수를 1:5, 1:4. 1:7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도 이렇게 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 간호사도 병원에서 내가 맡아야 할 환자는 7명인데, 나에게 9명을 주느냐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병원에서 간호사 법정 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간호사 1명의 1년 연봉을 벌금으로 내면 그 병원은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병원은 간호사를 채용할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간호사 7명을 더 채용해야 하는데 벌금은 간호사 1명의 연봉만 더 내면 된다. 그러면 누가 간호사를 채용하겠느냐”라며 현행 간호등급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신 회장은 “이런 모호한 법을 명료하게 해서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환자들도 간호사가 몇 명의 환자를 보길래 이렇게 나를 위한 시간이 부족한가에 대해 알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신경림 회장은 “우리나라는 간호사 법정 숫자도 안 지키고, 간호사가 아닌 사람을 간호사로 만드는 병원들이 있음에도 문을 닫는 병원을 본 적이 없다. 국민을 속이고 있지만, 국민들은 무엇을 속았는지도 모른다”며 “앞으로는 병원마다 홈페이지에 우리 병원 간호사가 몇 명이고, 간호사 1인당 환자 몇 명을 보는지를 게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협·병협 전면 불참...복지부 "적정 인력기준 연구용역, 개선안 검토" 

사실 의료기관 내 의료인 정원 기준 위반에 대한 논의는 의료계의 ‘아킬레스 건’으로, 간호계는 물론 국회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수 차례 진행돼왔다.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이 같은 문제 의식 아래 의료인 정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의료업 정지 등 행정처분을 받은 의료기관의 명칭 주소, 위반행위, 처분내용 등을 공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간호인력의 부족 문제는 의료기관의 종별에 따라 임금, 복지 등 다양한 이유로 파생되고 있고, 지방으로 갈수록 간호인력 수급의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간호인력을 고용하고 싶어도 충원할 수 없는 의료기관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도외시한 채 의료기관으로서의 신뢰회복이 불가능할 수 있는 제재적 성격의 공표를 행정편의적으로 무분별하게 도입하려는 부당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간호인력 수급에 관하여 의료인력이 지방 의료기관 및 중소의료기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정책적, 재정적 지원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병원협회도 “지방·중소병원의 채용난은 지속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인 정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여 행정처분을 받은 의료기관의 명칭 등을 공표할 경우, 의료인 쏠림현상이 심화로 인력난 가중이 우려된다”며 “현재 간호인력 수급 상황을 고려하여 의료기관 종별 간호 요구도에 따라 의료법상 간호인력 기준을 재검토해야 하며, 인력투입에 대한 적정 보상방안도 함께 강구돼야 한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 의료계 측 패널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박민아 과장은 “복지부도 직종별 인력 기준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함을 인지하고 이미 보건 의료 인력에 대한 직무조사 관련 연구 용역이 직종별로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의료기관 내 간호사의 배치 수준을 강화하기 위해서 간호사 1인당 실제 환자 수를 기준으로 할 수 있도록 간호등급제 개편을 내년까지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이미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력 수급의 문제는 근무 환경이나 지역별 불균형 등 복합적 요인을 감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향후 적정 인력 기준에 관한 연구 용역 결과를 토대로 보건 당국에서도 개선안을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전해 의료계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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