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연구팀, 주요 6개국 RWE 기반 급여관리 제도 고찰…“국내는 재정기반 위험분담 중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희귀질환 치료제의 환자 접근성 향상을 위해 신속등재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등재 속도 단축과 함께 실제 치료 성과를 반영한 사후관리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임상적 근거가 제한적인 상태에서 허가·급여되는 희귀·중증질환 고가 신약이 늘어나는 만큼, 급여 이후 실제 진료현장 데이터(real-world data, RWD)를 수집하고 실제근거(real-world evidence, RWE)를 기반으로 급여 유지, 약가 조정, 급여 범위 변경, 급여 중단 여부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평가연구실 변지혜 연구위원, 희귀·중증질환성과평가실 강라원·김지혜·신지혜·박재은 연구원, 약제관리실 최현웅 연구원, 희귀·중증질환성과평가실 윤혜선 연구원은 최근 HIRA Research에 ‘주요국의 희귀·중증질환 고가 약제에 대한 실제근거 활용 및 급여 관리 제도 고찰’ 논문을 게재하고 이같이 밝혔다.
희귀질환 신속등재 추진 속 사후관리 공백 우려
최근 국내외에서는 희귀·중증질환 신약의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신속심사, 조건부 허가, 가속 승인 등 예외적 허가 경로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도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해 허가 후 급여 등재까지 걸리는 기간을 100일 이내로 줄이는 신속등재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앞서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신속등재 추진방향 공청회’에서는 “속도 단축을 이유로 임상적 유용성이나 비용효과성 평가 자체를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학계 우려도 제기된 바 있다.
연구팀은 “국내에서도 등재 신약 중 희귀·중증질환 약제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으나, 관리형 급여계약에 해당하는 위험분담제는 여전히 단순 재정기반 계약에 집중돼 있다”며 “성과기반 관리형 급여계약은 전체 계약의 2.1%에 불과해 임상 성과 및 안전성 데이터와 연계한 사후관리 체계는 미흡하다”고 밝혔다.
가속승인 후 철수·안전성 문제도…제한된 근거의 불확실성
예외적 허가 경로를 통해 허가되는 약제는 환자 수가 적은 희귀질환 특성상 1/2상 또는 2상 임상시험 결과만으로 허가되거나, 비교 약제 없이 단일군으로 설계된 임상시험, 짧은 추적 기간, 대리지표 중심 근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허가 당시 임상적 유용성과 안전성에 구조적 불확실성이 남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해외 사례를 통해 이 같은 불확실성이 실제 급여관리의 쟁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가속승인을 받은 46개 적응증을 5년 이상 추적한 결과, 15%는 임상적 유익성을 입증하기 위한 확증 임상시험을 최대 9년 동안 진행 중이었고, 22%는 시장에서 철수했다.
엘레비디스주 사례도 제시됐다. 엘레비디스주는 비보행 듀시엔느 근이영양증 환자에 대해 대리지표를 근거로 가속승인을 받았지만, 이후 급성 간 부전으로 인한 사망 사례가 보고되면서 FDA가 해당 적응증 허가를 취소하고 박스형 경고를 추가했다.
연구팀은 “엘레비디스주 사례는 예외적 허가 경로에서 임상적 치료 효과와 환자 안전성 검증에 구조적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급여관리 제도가 단순한 재정관리 모형에서 벗어나 신약의 임상적 치료 효과와 환자 안전성을 연계한 급여관리 모형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주요국, 급여 후 RWE로 약가·급여 유지 여부 재평가
이에 주요국은 고가 희귀·중증질환 약제에 대해 근거생산 조건부 급여(coverage with evidence development, CED)나 성과기반 관리형 급여계약(managed entry agreement, MEA)을 활용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영국 NICE, 네덜란드 ZIN, 프랑스 HAS, 독일 IQWiG, 이탈리아 AIFA, 캐나다 CDA-AMC 등 6개국 제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주요국은 모두 임상적 유용성이나 비용효과성에 불확실성이 큰 약제에 대해 일정 기간 급여 접근을 허용하되, 이후 실제 진료현장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급여 유지, 급여 범위 조정, 약가 인하, 급여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주요국의 제도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운영됐다. 영국과 프랑스는 임시급여 후 재평가 방식이다. 영국은 항암제 특별기금(CDF)과 혁신의약품 기금(IMF)을 통해 환자 접근성을 보장한 뒤 NICE가 재평가하고, 프랑스는 조기 접근 제도(AAP)를 통해 일정 기간 접근성을 보장한 뒤 HAS 재평가를 거쳐 정규급여 여부를 판단한다.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는 조건부 등재 후 재평가 방식이다. 이들 국가는 조건부 급여, 사용 중 자료 수집, 모니터링 레지스트리, 한시적 급여 권고 등을 통해 조기 접근성과 추가 근거 생성을 연계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이들 국가의 공통점으로 등재 시점부터 사후관리 조건을 명확히 정한다는 점을 꼽았다. 급여 등재 전 제약사와 보건당국이 어떤 데이터를 수집할지, 어떤 지표로 평가할지, 평가 주기는 어떻게 할지, 결과에 따라 약가를 조정할지 급여를 중단할지 등을 사전에 합의한다는 것이다.
RWD 수집에는 공공 플랫폼과 레지스트리가 핵심 역할을 했다. 영국은 전신항암제 자료를, 이탈리아는 AIFA 모니터링 레지스트리를 활용했다. 프랑스는 추적관찰 프로토콜에 따라 RWD를 의무적으로 수집하고, 독일은 기존 질환 레지스트리 활용을 권장한다. 자료 입력은 주로 요양기관이 담당하고, 비용은 제약사가 부담하는 구조였다.
연구팀은 한국이 이미 단일 건강보험 체계와 심평원 청구·심사 자료라는 공공 데이터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네덜란드, 프랑스, DARWIN-EU 기관 방문과 영국 전문가 인터뷰 과정에서도 해외 전문가들은 전국민 단일 보험체계와 개별 요양기관 전수 자료를 연계할 수 있는 심평원 체계를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모델로 평가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PMS·RMP 안전성 중심 한계…RWD 수집 법적 근거 필요”
다만 국내 제도는 아직 한계가 뚜렷하다. 현재 약제 단위 성과평가에서는 제약사의 시판 후 조사(PMS)나 위해성 관리계획(RMP) 서식을 활용하고 있지만, 1차 평가지표가 안전성 중심으로 제한돼 있어 임상적 유용성 평가라는 급여관리 목적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또한 제약사의 RWD 수집 의무에 대한 법적 근거도 미흡해 자료 수집에 어려움이 있다.
연구팀은 “국내에서도 약제 단위 성과평가가 예상되는 경우 PMS·RMP와 성과평가 제출 서식을 일원화하고, 규제기관과 심평원, 제약사가 사전에 협의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현재 허가-급여 병행 시범사업 과정에서 우선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재평가 이후 환자 보호 장치도 필요하다고 봤다. 해외에서는 재평가 결과 급여가 조정되거나 중단되더라도 기존 CED 대상 환자의 치료가 갑자기 중단되지 않도록 제약사의 약제 공급 책임을 법적 근거 또는 사전 계약 조건으로 명시하고 있었다. 반면 국내에서는 급여 중단 이후 기존 투약 환자에 대한 제약사의 약제 공급 의무가 명확하지 않아 치료 중단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제도 개선 방향으로 “RWE 연계 급여 조정이 가능하도록 법령 및 고시의 근거를 명확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실제 진료 현장에서 표준화된 RWD 수집이 가능하도록 공공 RWD 수집 인프라와 요양기관의 의무 입력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급여 등재 이전에 제약사와 평가 지표, 평가 주기, 결과 활용에 대해 사전 합의를 체결함으로써 예측 가능하고 효율적인 CED 운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CED 대상 환자가 급여 조정 이후에도 치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제약사의 약제 공급 책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