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신재호 판사 "의료분쟁조정법에 '중과실 의료행위' 정의시 의사 책임감경 등 법원 판단 불가"
복지부, 12개 중과실 정의 빼거나 범위 좁히면 의료인 특혜로 비칠 수 있어
사진 왼쪽부터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어은경 응급의학과 교수, 복지부 신현두 의료기관정책과장, 서울고등법원 신재호 판사 모습.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현직 판사가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 대해 법률적 문제를 지적했다.
법안 내에 의료 중과실 정의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취지다. 심지어 법률에 중과실 의료행위가 명시되는 순간, 사법부가 소송 과정에서 책임 감경이나 과실 비율을 조정하기 어려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취지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12개 중과실의 범위를 너무 좁히게 되면 의료인에 대한 특혜가 심해질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염려했다.
서울고등법원 신재호 판사는 18일 오후 국회에서 개최된 '의료 민형사 소송 현황 비교분석 및 개선방안 모색 공청회'에서 "개정안은 중과실 의료행위에 대해 정의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걱정이 많다. 의료 행위에 대해 중과실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환자가 바뀌거나 잘못된 약을 처방할 때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해당 법안에 들어 있는 중과실 의료 행위 범위는 (지나치게) 넓다"고 지적했다.
신 판사는 "아무리 법을 추후에 수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법안에 중과실이라고 판단하는 의료 행위를 법으로 선언해버리면 향후 법원에서 달리 볼 수 없고, 바꾸기도 어렵다. 법원에서 의사 책임 감면이나 과실 비율 조정도 어려워 진다"며 "중과실을 법에서 정의했을 때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중과실 부분 정의는 교통사고 특례법 일부 조항을 인용한 것 같다. 다만 교통사고 특례법에서 부르는 12대 중과실과 이번 개정안에 나온 의료행위 중과실과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며 "예측가능한 상황임에도 적절한 모니터링의 필요성에 대해 나와 있는 점, 설명 의무에 대해 나와 있는 점 등 부분은 법원의 추가 판단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신 판사는 "중과실을 법으로 정의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법률로 바꿀 일이 아니다. 법안이 통과 단계에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 부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최소한 중과실이라는 내용은 빠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료계 역시 이 같은 견해에 공감했다.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어은경 응급의학과 교수는 "개정안 중과실 기준에 거의 모든 의료행위가 다 들어가 있다. 모든 환자 안전 이슈가 들어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법안 취지가 필수의료 의사가 편하게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법안 내용은 취지와 상충된다"고 말했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법안 취지를 고려해, 원안 대로 국회 통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신현두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정부에서는 양 당사자의 요구를 다 충족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범위를) 좁혀라, 환자단체 입장에서는 넓히라고 한다. 좁히게 되면 의료인들에 대한 특혜가 너무 심하다는 비판이 있어서 법을 통과시키기가 어렵다"며 "환자에게 치명적인 오류를 만들 수 있는 증과실에 대해선 의료인들이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과장은 "의료사고 설명 의무 부분은 의료행위 전에 설명하는 설명 의무와는 다른 것이다. 사전에 받는 동의하고 달리 의료사고가 발생하고 난 이후, 환자 측에게 의사가 사고가 왜 발생했고, 경과가 어떻게 될거다, 유감이다 등 사고 설명과 유감 표현을 할 수 있게 하고 사고나 유감 표현에 대해서는 증거로 활용할 수 없도록 한 것"이라며 "의료사고가 소송으로 발전하는 큰 이유가 의사와 환자간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와 관련해서도 다른 대부분의 나라가 채김보험 방식으로 배상을 하고 있다. 중과실이 아닌 경과실에 대해서도 자기 책임의 원칙이 있다"며 "본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 면책을 하게 되면 윤리적으로나 과실을 경미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해명했다.
의견이 상충되면서 새로운 대안도 제시됐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서종희 교수는 "고의나 중과실이 아닌 경과실에 대해선 형사 책임을 면제하고 민사 책임을 통해 환자의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의료진의 경과실에 대한 책임을 면제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의 일부 및 필수의료에 대해선 국가나 지자체가 부담하는 무과실 보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