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6.28 16:50최종 업데이트 22.06.2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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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사 63% 폭행 경험, 처벌은 10%에 그쳐…응급실 폭력 이대로는 안돼

전문가들, 의료인에게 범죄 대응 책임 지울 수 없다는 입장…의협은 반의사불벌죄 폐지 주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최근 연이어 의료기관 내 보복성 범죄가 발생하면서 의료계가 불안에 떨고 있다. 

앞서 지난 15일엔 용인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 70대 여성 환자가 이미 심정지 사망 상태로 왔지만 보호자인 75대 남성은 불만을 품고, 미리 준비한 낫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뒷목을 찍었다.

24일엔 60대 남성인 환자 보호자가 부산대병원 응급실 입구에 방화를 시도하는 일도 벌어졌다. 환자는 음주 상태로 응급의학과 의료진에 폭언과 폭행을 해 진료를 거부한 상태에서 2차 가해로 방화를 저지른 것이다.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의료계는 격분했다. 특히 범죄와 상관없이 현장에서 계속 진료를 봐야하는 의료진들을 위해 실효성 있는 방지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큰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변호사협회는 오는 7월 1일 보복성 폭령행위 방지대책을 위한 긴급토론회 개최까지 자청하고 나선 상태다. 

응급의료인 63% 신체폭행 경험…김연희 변호사 "의료인에게 대응 책임 지울 수 없어"

응급실 내 폭언과 폭행 등 의료인 대상 범죄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2018년 대한응급의학회가 실시한 응급실 폭력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급의료인의 97%가 폭언을 경험했으며, 63%는 신체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급의료인은 이 같은 폭언이나 신체폭행을 한 두 번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한달에 한두 번 꼴로 겪고 있었으며, 특히 둘 중 한명인 55%에서 근무 중 실제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의료·법률 전문가들이 말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란 무엇일까. 우선 가정의학과 전문의 출신인 김연희 변호사(법무법인 의성)는 의료기관과 의료진에게 책임을 지우는 방식의 재발방지대책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봤다. 자신의 의지가 상관없이 계속 환자를 봐야하는 의료인 입장에서 스스로 범죄 상황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의료인은 환자에 대한 진료 거부를 법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의료인 스스로 어떤 행위를 통해 범죄에서 벗어나거나 적절히 대처한다는 것은 맞지 않고 그런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며 "범죄에 대한 강력 대응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료기관 특성상 환자를 봐주거나 하는 온정주의가 반복되선 범죄가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특히 이런 것들이 바뀌기 위해선 의사에 대한 범행이 의사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의사가 담당하고 있는 환자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것이라는 사회 전반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응급실은 고위험 공간, 가중처벌 보단 응급실 구조개선 시급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좀 더 구체적인 방안들을 내놨다. 우선 그는 응급실이 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 공간이라는 인식이 우선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목숨이 오고가는 위태로운 상황이 자주 연출되기 때문에 응급실을 오가는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 모두가 폭언과 폭행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의 생사가 갈린다는 특수성의 관점에서 이형민 회장은 병원 응급실을 변호사 사무실과 엮어서 같이 재발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응급실은 의료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폭력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 공간이다. 외국에선 이런 인식으로 인해 총기 소지나 의료진과 환자 사이를 방탄유리로 막고 출입시 흉기나 유해물질을 철저히 수색하는 등 대책이 시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번 토론회에서 아쉬운 점은 변호사와 응급실 의사를 묶어 같이 대책을 찾는다는 점"이라며 "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대안도 달라야 한다. 조만간 의사회 차원에서 별도 공청회를 준비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사건이 벌어진 뒤 사후대안 격인 가중처벌 등 논의보단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사전대책에 논의가 집중돼야 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그는 "10년 전부터 응급실 안전 관련 문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그 이유는 재정이 투입돼야 하지만 그에 따른 효과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러다 보니 계속 처벌만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미없는 논의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미 사건이 벌어진 뒤 다친 의사에게 가중처벌은 큰 의미가 없다. 특히 가중처벌 때문에 현장에선 오히려 응급의료법으로 처벌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며 "처벌이 강하기 때문에 중증이 아닌 사건에 대해선 기소해봤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 뻔하니 기소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 경증 상해 사건이 훨씬 많은데 이런 경우 아직도 합의가 종용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궁극적인 대안으론 의료진 안전을 위한 응급실 구조개선이 꼽혔다. 

이 회장은 "응급실 락다운 시스템을 통해 출입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나 공항처럼 검색제가 필요할 수 있다"며 "이외 지금과 같은 개방형 응급실 구조는 폭력과 감염 등에 취약하기 때문에 1인실 구조로 바꾸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 때려도 실제 처벌 비율은 10% 그쳐…의협, 반의사불벌죄 폐지 강력 주장

대한의사협회는 좀 더 강력한 재발방지 대책을 구상 중이다. 반의사불벌죄 폐지와 의료기관 보호인력 배치 시범사업이 그것이다. 또한 의협과 대한응급의학회 등은 의료기관 내 의료인 폭행 사건에 대한 가중처벌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우선 반의사불벌죄 폐지 주장은 의료기관 내 폭행 사건이 벌어져도 실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의협이 지난 2019년 약 2000명의 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료기관 내 폭행이나 폭언을 당해 경찰에 신고를 하더라도 실제 처벌에 이른 비율은 10%에 그쳤다.
 
그 원인은 신고 후 피의자나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 고소고발을 취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해당 사례는 약 70%로 가장 많았다.

이에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은 지난해 2월 의료인 등에 대한 폭행죄를 범한 경우 피해자와 합의 여부에 관계없이 형사처벌하도록 함으로써, 의료현장에서의 폭행을 엄벌할 수 있도록 한 일명 반의사불벌죄 폐지법(의료법개정안)을 내놨지만 해당 법안은 아직까지 상임위에 계류 중인 상태다.

의료기관 인력 배치 주장은 법원의 사례를 고려한 것으로 법원은 사법제도의 권위와 안전성 보장을 위해 사법경찰이 배치되고 금속탐지기를 입구에 설치해 흉기가 될 수 있는 우산이나 액체류도 반입이 금지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필수의료나 응급실 같은 의료기관은 공익적 성격을 인정해 최소한의 재정 지원이나 인력 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주장의 골자다. 

의협 전성훈 법제이사는 "성범죄 문제나 대중교통 운전자에 대한 폭행 사건에 있어 정부가 직접 나서 해당 사건이 국민들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을 강조해 관련 법안들이 나왔던 것 처럼 의료기관도 공익적 역할을 하는 만큼 폭행에 대한 엄중한 가중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 법제이사는 "전체 의원급까지 대상으로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필수의료나 응급실 등 공익적 성격이 짙은 곳을 대상으로 법원만큼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안전 보호를 위한 인력배치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이후 예비타당성 조사 이후 본사업 전환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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