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4.25 07:18최종 업데이트 23.05.0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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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응급환자, 응급실 수용능력 없어도 일단 받아라?…응급의학과 사지로 모는 법"

"모든 병원 수용곤란시 119가 병원 지정 가능, 응급의료기관에 환자 치료 책임 떠넘겨…의료소송 우려에 면책조항 필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보건복지부가 응급의료기관에 정당한 사유 없이 수용요청을 거부 또는 기피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응급의료법과 관련해 그 하위법령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해당 내용을 두고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응급환자가 길 위에서 목숨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정부의 의도에는 공감하지만, 정부가 응급의료기관이 환자를 받지 못하는 근본 원인에 대한 대책 없이 의료기관에 환자 수용을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일 근무 중인 '응급실 책임의사'가 수용곤란 고지 결정...모두 수용불가 시 위원회가 응급의료기관으로 환자 이송 가능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4월 21~22일 이틀간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응급의학괴 춘계학술대회 이후 2021년 12월 21일 개정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과 그 하위법령인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둘러싼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반발하고 있다.[관련 기사:응급실 '병실 부족, 인력 부족' 사유론 중증환자 수용 거부 불가…"의료기관 책임 과다" 우려]

개정된 응급의료법의 핵심은 응급의료기관의 장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할 수 없으며, 부득이 환자 수용을 거부할 경우 그 '정당한 사유'를 통보해야만 한다는 내용이다.
 

해당 법에 따라 복지부는 올해 1월 18일부터 1월 25일까지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응급의료기관이 응급환자 수용요청에 응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에 대한 기준 ▲수용곤란 통보 시 제공해야 할 정보 등이 담겨있으며 ▲수용곤란 고지 결정주체는 근무 중인 '응급실 책임의사'로 정하고 있다.

문제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할 시 징역 3년 이하, 벌금 3000만원 이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당일 근무 중인 응급실 책임의사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는 점이다.

실제로 응급의료센터는 반드시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전공의 3~4년 이상이 혼자 당직을 서는 경우도 있어 책임 의사가 야간 당직 중인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이것보다 두려워하는 조항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의료기관의 심정지환자 등 중증응급환자에 대해 제1항 단서에 따른 수용능력 확인에도 불구하고, 인근 모든 응급의료기관에서 수용이 곤란한 경우,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제10조의2에 따라 시·도 소방본부에 설치·운영되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는 응급환자의 상태 및 이송거리 등을 고려하여 이송할 응급의료기관을 선정하여 응급환자를 이송할 것임을 통보 후 이송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이송할 응급의료기관의 구체적인 선정 기준은 시·도응급의료위원회에서 마련해야 한다"

즉, 인근 모든 응급의료기관이 수용 곤란 고지를 했을 경우 119구급대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정한 응급의료기관으로 강제로 환자를 이송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응급의료기관 환자 수용곤란 근본 원인 해결 없이 일개 응급의료기관에 책임 떠넘겨

해당 시행규칙 개정령안의 내용이 학회를 통해 알려지자 의사 전용 커뮤니티와 SNS 등을 통해 해당 내용에 대한 젊은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불안과 걱정이 터져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의사협의체 교육위원장을 맡고 있는 일산동국대 응급의학과 이경민 임상조교수는 "학회가 끝나자마자 의사들끼리 모이면 그 이야기뿐이다"라며 "환자가 병원 안으로 오는 순간 환자에 대한 책임 소재가 의료기관에게 넘어간다. 최근 대구 17세 사망 사건은 환자가 ‘응급실’에 이송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됐으며, 국가적인 시스템의 문제로 연결됐다. 정부가 이 같은 문제의 책임을 병원과 개인에게 떠넘기려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이번 대구시 17세 사망 사건과 같은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수도 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해당 환자가 몇 시간을 대기하든 결과적으로 응급실에 들어가게 되면 해당 사건은 결과에 상관없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 교수는 "하나의 사건, 문제를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이 환자를 일단 병원에 보내는 것인 만큼 정부의 의도에 의문이 생긴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덮고, 일개 병원에 책임을 지우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반발했다.

무엇보다 인근 모든 병원이 시설, 인력, 장비 등 가용 현황이 없어 환자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힌 상황에서 119 구급상황관리센터가 최종 이송병원을 선정해 반강제로 환자를 이송할 경우, 해당 중증응급환자의 생존율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물론 병원 전 단계에서 환자가 병원 밖에 있는 것보다 병원 안에 있을 때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수용 곤란 고지된 병원에 중증응급환자가 이송될 경우 그 병원은 평상시와 같은 최상의 진료를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며 이는 악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대한응급의학회 김원영 정책이사(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도 학술대회를 통해 "응급의료기관이 환자 수용 곤란을 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수용해야 하는 응급의료기관도 최선을 다해 치료를 제공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의료소송 발생 가능성도 높다. 이럴 경우 의료기관에 대한 면책조항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종합병원 응급의학과 봉직의 A씨는 "전공의 커뮤니티에서는 상식적이지 않은 법령이 나온 데 대해 의사들이 분개하고 있다"라며 "정부의 말도 안 되는 법령이라고 생각하며, 소신껏 진료하는 의사들을 보호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커녕 응급의학과 의사들을 사지로 모는 법이다"라고 비판했다.

A씨는 "최근 사건들도 모두 응급의료기관, 응급실 의사의 잘못으로 매도되고 있는데, 그러한 시스템을 수년간 방치한 정부는 어떤 책임을 지는지 궁금하다. 환자를 외면하는 의사는 없다. 그럼에도 사건이 발생하면 특정 병원, 특정 의사에게 모든 죄를 묻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며 "응급의료기관이 수용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에 대한 대책은 없이 환자를 알아서 책임지라는 법이다. 앞으로 응급의학과를 선택하겠다는 전공의가 있다면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전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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