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임신중지 의약품 ‘미프진’ 도입 검토 지시 이후 산부인과를 중심으로 의료계의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의료계는 불법 유통되는 임신중지약을 제도권 안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임신중지 허용 주수와 처방 기준, 사전검사, 사후관리 및 응급대응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판단을 의사 재량에 맡기면 여성의 건강과 의료진의 법적 안전 모두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6일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와 바른의료연구소는 잇따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허가를 서두르기보다 관련 법 개정과 국가 표준 진료지침, 응급의료 전달체계, 의료진 보호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대통령 “해외서 몰래 구해 사고…안전한 약이면 적정 투약 허용해야”
미프진 도입 논쟁은 지난 14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내에 정식 허가되지 않은 임신중지약을 여성들이 해외 등에서 구해 복용하다 사고가 발생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적정한 투약이 가능하도록 관련 방안을 검토하라고 주문하면서 본격화됐다.
관련 법률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약물적 임신중지를 계속 제도 밖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대통령 발언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도 보건복지부와 성평등 관련 부처 등 관계부처와 관련 제도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 임신중지 허용 시기와 방법을 명시할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효능·효과와 위해성 관리계획 등 일부 허가자료를 확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현대약품이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복합제인 ‘미프지미소’ 도입을 추진해 왔다. 2021년 처음 품목허가를 신청했지만 자료 보완 과정에서 자진 취하했고, 2023년 재신청 이후에는 관련 법 개정을 기다리며 허가심사가 잠정 중지된 상태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시민사회단체는 이 대통령의 임신중지약 도입 지시를 환영했다.
이들은 안전성이 검증된 임신중지약이 세계 여러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음에도 국내 허가가 지연되면서 여성들이 불법 유통이나 해외 구매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약물적 임신중지를 계속 제도 밖에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신속한 의약품 도입과 의료정보 제공, 건강보험 적용 등을 통해 안전한 의료서비스로 보장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찬성 측은 정식 허가가 이뤄져야 의료기관에서 임신 주수를 확인하고 자궁외임신과 금기사항을 진단한 뒤 처방할 수 있으며, 투약 후 이상반응과 임신중지 완료 여부도 추적 관리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와 같이 제도적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 오히려 검증되지 않은 약물 복용과 의료기관 방문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선제 산부인과개원의사회 “입법 공백 속 의사 재량은 책임 전가”
의료계의 반발도 거세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15일 성명을 통해 불법 유통 경로로 검증되지 않은 약물이 거래되는 현실을 개선하고, 약물적 임신중지를 제도권 안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소한의 법적·제도적 장치 없이 임신 주수와 처방 여부를 의사 재량에 맡기는 방식은 실용적 해법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을 의료진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임신 주수가 약물적 임신중지의 안전성과 성공률을 좌우하는 기본 기준인 만큼 국가가 명확한 사용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미프진은 단순히 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치료가 끝나는 의약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투약 전 초음파검사를 통해 자궁 내 임신 여부와 임신 주수를 확인하고 자궁외임신을 배제해야 하며, 투약 후에는 대량 출혈과 감염, 불완전 임신중지 등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경우 응급수술로 즉시 전환할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도 필수라고 밝혔다.
의사회는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심각한 출혈이나 감염, 불완전 임신중지, 자궁외임신 지연 진단 등이 발생한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의료행위의 적절성과 법적 책임을 판단할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에 ▲약물적 임신중지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 ▲임신 주수와 적응증·금기사항·사전검사·사후관리·응급대응을 포함한 국가 표준 진료지침 ▲응급의료 전달체계와 추적관리 시스템 ▲의료진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 ▲충분한 사회적·윤리적 논의를 요구했다.
바른의료연구소 “안전성 검증·법 개정 없는 조기 허용 철회해야”
바른의료연구소도 16일 성명을 내고 안전성 검증과 사회적 합의,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미프진 조기 허용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미프진을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고위험 전문의약품으로 규정하고, 투약 전 산부인과 전문의의 진찰과 초음파검사를 통한 자궁외임신 배제, 정확한 임신 주수 확진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투약 후에도 대량 출혈과 감염, 불완전 유산 여부를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하며,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응급수술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입 여부와 기준 역시 행정부가 먼저 방향을 정해 추진할 것이 아니라 산부인과 전문의를 비롯한 전문가 검토와 폭넓은 사회적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소는 특히 "모자보건법 개정 등 허용 주수와 처방 기준을 명시한 법률적 테두리 없이 판단을 의사 재량에 맡기는 것은 국가와 국회가 해결해야 할 제도 정비 책임을 의료현장에 떠넘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여성의 선택권을 존중하되, 저출산 상황에서 미프진 도입이 인구·가족정책에 미칠 영향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의학에 무지한 정치 논리만으로 함부로 의료에 개입하고 결정하려 하는 것은 국민 건강권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지므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며 "안전성 검증과 법 개정이 누락된 미프진 조기 허용 방침의 철회를 요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