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0.12.29 06:40최종 업데이트 20.12.29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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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는 해로운 새이다…국민 건강권·의사 진료권 침해하는 입원 제한 고시변경 철회하라"

[칼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전라남도의사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곡식이 익어가는 가을하늘을 날아다니는 참새는 고개를 숙인 벼를 좇아 농민들에게 해를 입힌다. 참새를 쫓기 위해 허수아비를 세워두거나 반사 테이프를 붙여놓지만, 더 근본적인 방법은 참새를 모두 잡아버린다면 그런 수고조차 할 필요가 없다. 1955년 마오쩌뚱은 실제로 중국의 모든 참새를 잡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결과는 별로 아름답지 않았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심사투명화'를 위해 고시 개정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 입원료 산정원칙이 담긴 요양급여 적용기준 고시를 입법예고했다. 이에 따라 병원들은 임상적‧의학적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입원료를 산정할 수 있으며, 외래에서 시행 가능한 검사(영상진단 포함)나 처치, 수술만을 위한 입원료 산정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이번 고시는 입원에 관한 기준을 제시해 불필요한 입원을 줄이고 심사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진료 현장의 의사들에게는 많은 문제들을 일으켜 혼란에 빠지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오쩌뚱이 참새를 해롭다고 규정하고 잡아야 한다고 결정한 것은 선한 의도에서 시작됐다. 필자는 이번 고시도 선한의도에서 시작됐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입원에 대해 대법원은 2009년 판결을 통해(2008도4665) ‘환자의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낮거나 투여되는 약물이 가져오는 부작용 혹은 부수효과와 관련해 의료진의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경우, 영양상태 및 섭취음식물에 대한 관리가 필요한 경우, 약물투여·처치 등이 계속적으로 이루어 질 필요가 있어 환자의 통원이 오히려 치료에 불편함을 끼치는 경우 또는 환자의 상태가 통원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경우나 감염의 위험이 있는 경우 등에 환자가 병원 내에 체류하면서 치료를 받는 것  으로 정의했다.

대법원 판례는 입원환자의 범위를 폭넓게 규정하고 있으며 의사들의 진료권을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개정되는 고시는 이런 진료권을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
 
입원은 의료기관과 관련한 복잡한 과정으로 치료에 전념하는 단계로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의료 현실을 반영하는 지표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의 가장 큰 문제는 환자들의 막강한 선택권에 비해 의사들의 선택권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의사들은 진료를 거부할 권리가 없다. 저렴한 의료비와 낮은 수가는 환자들의 입원 욕구를 부추기고, 입원을 해야만 인정되는 실비 보험의 해당요건 역시 환자들에게 입원에 대한 동기를 자극한다.

입원의 목적은 치료라고 할 수 있으나, 치료의 과정보다 중요한 것은 진단의 과정이고, 진단은 치료를 위한 필수 요건이다. 이에 진단과 치료는 분리할 수 없다. 이번 개정 고시는 진단과 치료를 별개로 바라보는 커다란 우를 범하고 있다.
 
환자의 치료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된다면 ‘의사들의 판단에 따라’ 의료법 제3조에서 정한 의료기관에 입실해서 치료할 수 있다. 즉 입원을 결정할 수 있으며 이것은 진료의사의 고유 권한이다.

질병 치료중 합병증이나 발생하거나 새로운 병변이 추가 발견된다면 입원은 필요할 수 있으며, 진단되지 않은 미상의 질병에 대해서도 심각한 증상이라면 입원해 검진이 필요할 수 있다. 차후 질병이 확인됐을 때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입원과 동일하게 인정될 수 있다. 이번 입원에 대한 고시는 포괄적인 진료권과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편타당하지 않고,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 배치된다. 큰 틀에서 수진자들의 접근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개정되는 고시안은 수진자들과 의사들에게는 매우 불편하겠지만, 누군가는 이를 통해 수익을 얻게 된다. 심사 투명화라는 명분에 기댄 고시 개정은 ‘입원을 정의하는, 동시에 제한하는 법적 근거’로 이용될 것이며, 민간 실손 보험사들에게 그럴듯한 명분을 제공해 의료이용을 제한하는 근거로 악용될 것이다. 실손 보험이라는 경제적 이용 동기를 가진 환자들에게 입원을 공식적으로 제한하는 근거로 사용돼 진료 현장의 다툼을 유발할 것이다. 이에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입원에 한정되는 실손 보상을 외래 진료에도 확대하는 방법론을 동시에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일방적인 개정안은 분명히 수진자들을 지금보다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수진자들이 얻어야하는 이익이 다른 누군가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갈 것은 자명하다.
 
1955년 마오쩌뚱은 실제로 중국의 모든 참새를 잡았지만, 결과는 별로 아름답지 않았다. 권력의 정점을 찍는 권력자에 대한 비난은 있을 수 없지만, 세월은 비켜갈 수 없으며 결국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참새가 해롭다고 주장한 이는 결국 큰 길을 건너는 쥐(過街老鼠)가 되어 조롱을 받는 것이 세상사인 것이다.

이번 고시 개정을 통해 복지부와 심평원의 모습에서 참새를 해롭다고 주장하는 1955년이 겹쳐지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의사의 진료권을 제한하는 복지부와 심평원의 입원료 적용기준의 고시변경안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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