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06.29 17:51최종 업데이트 25.06.2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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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의사회 "사과 주체는 전공의 아닌 정부…정책 실패 인정하고 해결 앞장서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해체·복지부 장관 조속 인선 촉구…"응급실 과밀화·사법리스크 해결 논의체 구성해야"

(왼쪽부터) 김재혁 정책이사, 이형민 회장, 이강의 대외이사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2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부가 의료 파행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정책 실패 인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이와 함께 의료파행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며 새 정부에 조속한 해결을 당부했다.

이날 이형민 회장을 비롯한 응급의학의사회 임원진은 현재 의료 파행의 책임이 정부에 있음을 지적하며, ▲의사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해체와 보건의료위기 심각단계 해제 ▲정책추진 책임자 문책과 사죄 ▲보건복지부 장관 즉시 지명 ▲응급실 과밀화, 인프라 개선, 사법리스크 면책 등 해결을 촉구했다.

이형민 회장은 "의료계가 가장 분노했던 것 중 하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존재"라며 "조규홍 장관과 박민수 차관이 반복적으로 의료계를 자극했다. 위기단계만 '심각'으로 유지하고, 실질적인 조치는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회장은 "전공의 사직 사태는 전공의의 책임이 아니라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며, 정부가 먼저 사과해야 한다"라며 "정책을 잘못 설계하고 밀어붙인 정부가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사과 없이 정책만 바꾸려 한다면 의료계는 더 이상 정부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며, 진정성 있는 사과가 사태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응급실 현장은 이미 붕괴 직전이며, 응급의학과는 지속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현재의 뉴노멀은 고비용·저효율의 민영화로 향하고 있고, 이대로 가면 필수의료는 소멸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정책마다 판단 주체 달라…의료행위는 전문가가 결정해야”

이형민 회장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예산이나 제도 문제를 넘어서, 의료 정책을 구성하는 ‘판단 주체’에 대한 오해와 왜곡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응급의료 정책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과 전문가가 판단해야 할 영역이 구분돼야 한다"며 “예를 들어 응급실을 모두에게 개방할지, 중증 환자 중심으로 제한할지는 사회적 합의로 결정할 문제지만, 환자를 수용할지 말지, 어떤 처치를 할지는 의료 전문가의 임상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응급실은 응급처치를 제공하는 곳이지 최종 치료를 책임지는 곳은 아니다"라며 "과거에 나온 응급의료 개선 계획과 필수의료 대책을 살펴보면, 중증응급의료센터가 중증응급환자의 최종치료를 책임진다고 명시됐다. 이들의 치료가 끝나지 않으면, 한 달이라도 응급실에서 데리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성형외과, 피부과, 산부인과 등 의료진이 모두 있어야 한다"며 "결국 응급 치료를 제공해야 하는 응급실에 책임을 정부가 떠넘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만약 사회적 합의가 '응급실에서 모든 환자의 최종 치료까지 책임지라'는 것이라면, 의료진은 그 책임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인력과 인프라, 재정 지원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책 방향이 정해졌다면, 정부는 그에 맞는 책임을 지고 실행에 나서야 한다"며 "의료행위 자체까지 법이나 제도로 강제하려는 시도는 응급의료 체계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회장은 "정부가 모든 사안을 사회적 합의로 미루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 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에서 필요한 건 합의가 아니라 결단"이라며 "정책 방향이 정해졌다면 정부는 책임을 지고 실행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김재혁 정책이사, 이형민 회장, 이강의 대외이사, 김찬규 대변인

응급의학의사회 "의료파행의 책임, 정부가 져야 한다"

김재혁 정책이사는 성명문 낭독을 통해 "100차례가 넘는 회의가 있었지만,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며 "지금은 회의가 아닌 해결과 결정이 필요한 때다. 더 이상의 시간·세금 낭비를 줄이고, 실질적인 해결이 가능하도록 행정부의 결정권자와 전공의, 의대생을 포함한 논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공의 사직 초기, 억지스러운 위법적인 강제명령들을 남발하면서 끝까지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던 결과가 오늘까지 이어진 갈등의 원인"이라며 "때로는 협박하고 때로는 회유하며 불리할 때마다 달라지는 정부의 말로 의료계와 정부의 신뢰는 철저히 망가졌다. 책임을 지겠다고 한 장·차관은 책임을 져야 하며, 잘못된 정책시행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보건복지부 장관 인선을 둘러싼 정부의 지연 행보를 비판하며, 신속한 임명과 갈등 해소를 촉구했다.

김 정책이사는 "새 정부 출범 이후 1달이 지나도록 사태 해결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차관의 인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회복에 필요한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빠른 지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책 전문성과 소통 능력을 갖춘 인물이 복지부 장관이 돼야 하며,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의료적 근거에 따라 정책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이 회장은 복지부와 보건부의 기능 분리와 미국의 '서전 제너럴(Surgeon General)'과 같은 독립적인 보건 국장 임명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응급의료 개혁을 위한 핵심 과제도 제시됐다. 김 정책이사는 "응급의료 해결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을 주장해왔지만 지금까지 해결된 건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응급실 강제수용이나 단순 체계 개편과 같은 비합리적인 조치는 응급의료의 문제를 개선할 수 없다. 현장의 의견이 반영된 시스템과 논의체 구성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강의 대외이사는 "작년에는 정부와 언론의 자제 요청 덕분에 응급실 환자 수가 일시적으로 줄었지만, 지금은 환자가 다시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력은 그대로다. 현장의 피로도는 점점 누적되고 있다"며 "일선의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해결책이 조속히 제시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법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김찬규 대변인은 "젊은 의사는 언제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며 "과정 중심의 판단과 법적 면책이 병행돼야 한다. 미국의 EMTALA(응급의료법) 같은 제도는 의료진과 국민 모두에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끝으로 이 회장은 "새로운 의료인을 수급하지 않고 전문의 중심 체계만을 논의하는 것은 기득권의 욕심"이라며 "젊은 의사가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만이 유기적 응급의료체계 유지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밝혔다.

이지원 기자 (jwlee@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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