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원장 "미국은 환자 있는 곳 헬기 직행, 한국은 병원 전전…문제는 '프로토콜' 부재"
겉만 번질번질한 의료, 기준부터 세워야… 인력 최소 기준·패널티, 이송·전시 대응 등 가이드라인 마련 필요
국군대전병원 이국종 원장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한국 의료는 허울뿐인 외형으로 운영되고 있어 인력·이송·전시 대응을 포함한 프로토콜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표준화된 지침을 마련해야 현 의료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군대전병원 이국종 원장은 28일 대구 엑스포에서 열린 한국의료질향상학회 학술대회에서 'Making progress, Moving forward'를 주제로 발표하며, 한국 의료가 외형적 성과와 달리 심각한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그는 한국 의료는 겉만 번지르하지만, 속은 미흡한 재투자나 인력 부재로 붕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먼저 이 원장은 한국의 인력·운영 구조 문제를 짚었다. 그는 "미국 간호사는 1.3명이 환자 한명을 보는데 우리는 간호사 한명이 3~4명을 맡는다"며, 의료의 지속 가능성이 개인의 체력과 희생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담 간호사 한 명을 채용하기 위해 공문에 1~10까지 항목을 기재해야 하는 비효율적 절차를 언급하며 "전문간호사라도 빠르게 충원해야 임상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호소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퀄리티 임프로먼트(질 향상) 프로그램의 프로토콜과 가이드라인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인력을 얼마 이상 안 뽑으면 병원 평가 등에 불이익이 간다는 등의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 현재는 대충해도 다 올려주는 시스템으로, 겉만 번질번질한 상황"이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학회는 글로벌 스탠다드 데이터베이스를 보건복지부에 제공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평시뿐 아니라 재난·전시 상황에서의 의료 대응 공백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연평도 포격 당시 의료진이 출동하지 못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북한군이 한나절 내내 쏘았는데 대한민국 의료진은 단 한 명도 출동하지 않았다. 그 당시 해병대원은 부상을 입고도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승리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비참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그는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 의료 시스템을 비판했다. 이 원장은 미국 메릴랜드 쇼크 트라우마 센터의 외상·항공의료 시스템을 언급하며 "미국 도심에서는 헬리콥터가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고 설명했다.
쇼크 트라우마 센터는 주 정부의 재정 지원을 기반으로 수익성과 관계없이 운영되며, 이송·도착 시간 관리와 프로토콜이 일관되게 작동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환자가 여러 병원을 거부당하며 전전하는 '응급실 뺑뺑이'가 반복되고 있다. 이 원장은 "한국처럼 병원 경영진이 환자 수용 여부를 지시하는 구조는 필리핀은 물론 OECD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외국은 일단 환자가 오면 치료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 원장은 질 향상 기반의 표준화된 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중간에서 땜빵하고 버텨야 후배들이 산다"며 "표준화된 지침과 기록을 남겨야 후세의 의료진이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는다. 프로토콜을 만들어 남기고, 이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과 군 의료에는 바운더리가 없다"며 위기 상황에서 군과 민간이 하나의 체계로 움직일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드는 것이 결국 다음 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길이라고 설명했다.